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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Nov 01. 2015

좋아하지 않는 마음을 숨길 자유에 대한 이야기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

1.

난 어렸을 때부터 만화가 천계영의 팬이었다.

천계역 입덕의 계기가 된 작품 <오디션>의 경우, 만화책 구매는 물론 메이킹북 구매와 영화 관람까지 했었고, <Talent>, <언플러그드 보이>를 뒤늦게 사모으고 소설 <The클럽>도 열심히 봤다.

하지만 <DVD> 때부터 그림체가 점점 변하고 컨셉이 원래 내가 좋아하던 방향과는 많이 달라져 <하이힐을 신은 소녀>, <예쁜 남자>는 거의 보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다음 웹툰에서 <스타일 코드>라는 '옷 입는 법'에 대한 옴니버스 웹툰을 시작했을 때, '웹툰으로 넘어오셨구나'를 인지했고, 요즘 연재 중인 <좋아하면 울리는>을 매우 집중해서 보고 있는 중이다.

덕후라고 하기에는 덕질을 꾸준히 못했지만, 항상 우리나라 만화가 중 가장 좋아하고, 가장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만화가라고 생각한다.


2.

<좋아하면 울리는>은 기본적으로 조조, 선오, 혜영이라는 세 남녀(조조가 여자다)의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제0의 주인공으로 '좋알람'이라는 앱이 있다.

기능은 아주 단순하지만 어마무시한데, 바로 10m 반경 안에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알려준다. 반대로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10m 반경 안에 있으면 그 사람의 좋알람이 울리게 된다.

이 알람은 좋아하는 마음을 알리고, 알게 되는 앱이다.

출처 : <좋아하면 울리는>, 1화

허무맹랑한 설정이지만, 천계영 작가는 좋알람이 작동하는 근거를 제외하고는(이건 뭐 설명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빈틈없이 설정을 해놓았다. 이런 작가의 명확함이 <좋아하면 울리는>을 황당한 이야기가 아닌,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만들어준다.


3.

좋알람이 출시되고 나서 세상은 변한다.

좋알람 덕분에 행복하고 간편하게 서로의 좋아하는 마음을 알게 되고, 행복해지는 사람도 있다.

좋다고 따라다녔지만 자꾸 돈을 꿔달라던 남자의 진심을 알게 되는 여자도 있다.

하지만 '좋알람'은 이혼율을 증가시켰다. (이건 너무 당연할 것 같아서 슬프다 ㅠㅠ)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출처 : <좋아하면 울리는>, 1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그 사람 앞에서는 설레고 떨려서 실수하게 되고, 숨기려고 해도 애정 어린 눈빛을 들키고야 마는

그런 촌스러운 방식은 사라진다.

그냥 서로 좋알람을 켜놓고 10m 안에만 있으면 된다.


4.

좋알람은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알릴 자유를 얻은 대신, 숨길 자유를 잃었다.

좋아하는 마음도, 좋아하지 않는 마음도.


5.

좋알람의 작동근거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았지만, 추측컨대(가상의 설정에 추측을 하는 게 웃기긴 하지만), 꽤 짧은 일정 시간 동안의 마음 상태를 판단으로 할 것이다.

결국 그 마음은 한 '시점'에서의 상태라는 건데, 과연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을 시점으로 판단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출처 : <좋아하면 울리는>, 3화

물론 '지금'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무척 중요한 일이다.

좋알람은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니까, 단순히 이 순간 설레지 않거나 가슴이 뛰지 않는다고 해서 좋알람이 안 울리진 않을 것이다.


5.

그렇지만, 어떤 시점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과연 그 사랑의 끝일까?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하나의 시점이 아니라 과정이다. 어떤 시기에는 스스로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맞나?'라고 강하게 의심하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의심한 대로 마음이 점점 식어버릴 수도 있지만, 다시 좋아하게 될 수도 있다.

좋알람의 맹점은, 언제나 과거와 현재의 데이터만을 바탕으로 판단할 뿐, 미래의 변화까지 예측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바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때로 거짓을 말하고, 거짓으로 행동한다.

거짓말은 나쁜 것이라고 항상 배우지만, 때로는 거짓이 필요한 순간도 있지 않을까?

특히 그것이 실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연애감정에 대한 것이라면 말이다.


6.

좋알람이 있는 세상에선,

열렬히 좋아하고 있는데도 '정말 나 좋아하는 게 맞아?'와 같은 의심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

좋아하는데 그 마음을 알리고 싶지 않다면 그냥 그 사람한테 가까이 가지 않거나, 항상 무리 지어 다니면 된다.

하지만 이미 연인이 된 상태라면, 상대가 원할 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지 않을 자유는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연인이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느낄 때, 좋알람을 켜보자고 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그 결과는 얼마나 많은 커플을 결별로 몰아갈까.


7.

<좋아하면 울리는>에서 주인공 조조는 좋알람 개발자로부터 '방패를 받게 된다.

'방패'는 조조에게 자신의 좋아하는 마음을 상대에게 들키지 않을 자유

좋아하면서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조조는 방패를 이용해, 좋아하면서도 헤어져야 하는 연인에게 차가운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는 이후 어떤 연애도 하지 못하고, 여전히 좋아하는 옛 연인에 대해 짙은 후회를 가진다.

출처 : <좋아하면 울리는> 38화


8.

좋아하는 마음도,

좋아하지 않는 마음도,

내 자유의지에 의해 표현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인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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