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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Nov 16. 2015

고전문학의 매력에 대한 이야기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

1.

최근 아주 열심히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었다. 회사 일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냥 읽은 것도 아니고, UX 방법론인 컨텍스추얼 모델링(Contextual modeling)을 활용해 책의 구조와 인물들 사이의 역학을 분석해보면서 정말 열심히 읽었다.

컨텍스추얼 인쿼리 방법론을 이용해 분석해본 파우스트

2.

보통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스토리라인이다.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나는지. 흔히 '기승전결' 또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고 하는 구조 말이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그렇게 읽으면 안 읽으니만 못한 책이었다.

기본 스토리 구조는 인류의 온갖 지식을 섭렵한 파우스트 박사가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담보로 한 계약을 맺고, 악마의 힘을 빌어 다양한 경험(젊음, 사랑, 쾌락 등)을 하는 내용이다.

좀 더 자세하게 적는다고 해도, 주요 사건들만 적으면 A4 1~2장이면 다 적을 수 있을 것이다.

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하지도, 연애소설처럼 설레지도 않는다.

처음 파우스트를 쭉- 읽었을 때는 뇌를 스쳐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분석을 하면서 읽고 나니 이야기의 구조, 인물 간의 관계, 문장에 숨겨진 의미 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펼칠 때마다 문장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3.

파우스트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기독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끊임없는 '발전'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되기도 한다.

나에게 파우스트는 '노력과 방황'이라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이 메시지를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은 '신(God)'의 대사 중에 있다.


4.

파우스트 박사는 법학, 신학, 철학, 의학 등을 두루 섭렵하고 민중과 학자들에게도 존경을 받는다.

하지만 스스로는 자신이 이룩한 학문의 쓸모없음에 좌절하고,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이 헛되다고 여긴다.

끊임없이 신에 가까운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노력해도 그의 방황은 멈추지 않는다.


파우스트 :

내 안에 살고 있는 신은
내 안에 깊은 격랑을 만들어놓으나,
나의 모든 힘을 관장하는 신은
아무런 행동도 만들어내지 못해.

- <파우스트>, 괴테, 85p(펭귄클래식코리아)


너무나 아름답고 고매한 괴테의 문장이지만,

나에게는 이렇게 다가왔다.


내 안의 계획이는
내 안에 꿈과 열정을 만들어내지만,
나의 실천을 관장하는 행동이는
귀차니즘에 빠져 움직이지 않는다.


아, 나는 정말이지 2백 년 전에 쓰인 작품에서,

그리고 고매하신 학자인 파우스트 박사의 대사에서

나의 귀차니즘에 대한 공감을 얻으리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5.

고전문학은 분명 쉽지 않다.

나 역시 자발적으로 즐겁게 읽은 건 아니었고, 앞으로도 다른 고전에 쉽게 손이 갈지는 모르겠다.

단시간에 이해하기 쉽게 읽을 수 있는 인문학 책들도 많고, 밤을 새워서 읽을 만큼 재밌는 책들도 많은 시대에 굳이 고전 문학을 읽어야 하나-에 대한 의문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고전문학에게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걸 이번에 발견했다.

파우스트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방대한 의미와 상징을 담고 있다. 그리고 괴테의 철학이 녹아들어 있다. 인문학은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고, 고전은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 '헛!!!!'하고 공감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은유와 상징이 가득 담긴 문장을 다양한 맥락에서 인용하는 것도 은근 꿀잼이다.


6.

예를 들어, 현재의 우리나라 상황은 다음의 문장을 인용해 표현하고 싶다.


파우스트, 메피스토, 도깨비불 (돌아가며 노래) :

우리는 나아가고 있는 걸까?
그 자리에 그냥 서 있는 듯해.
모든 게 빙빙 도는 것만 같다,
인상을 찌푸린 바위와 나무들,
그리고 점점 수가 늘어가면서
불어만 가는 도깨비들까지도.

- <파우스트>, 괴테, 224p(펭귄클래식코리아)


인상을 펼 수 없어 슬픈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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