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 솔로 1집 <섀도우 오브 유어 스마일>
1.
CD로 음악을 듣는 게 언젠가부터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에 가까운 일이 되어버렸다.
용돈을 받기 시작한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 좋아하는 가수의 CD를 사모으는 걸 취미로 즐기던 나였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스트리밍 서비스를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다.
작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새로운 오디오 역시, 폰과 블루투스로 연결해 거대한 블루투스 스피커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잦지만... 오랜만에 CD 음악이 듣고 싶어 김윤아의 솔로 1집 <섀도우 오브 유어 스마일(Shadow of your smile)>을 듣게 되었다.
2.
사실 이 경험의 핵심은 CD로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한 가수의 앨범을 창작자가 설정한 노래의 순서까지 지켜가면서 오롯이 듣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들으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만 골라서 파편적으로 듣는 것과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오랜만에 이렇게 들으면서, 하나의 앨범은 하나의 이야기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물론 모든 앨범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이 앨범의 많은 노래는 '소통'에 대한 이야기였다.
3.
앨범에 실린 노래 중에 가장 유명한 노래는 보너스 트랙인 '봄날은 간다'이지만, 타이틀곡은 '담'이라는 노래다.
수록곡 중 가장 직접적으로 앨범의 메시지를 전하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노래의 시작부터 무척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
내가 하는 말이 당신에겐 가 닿지 않아요
우리 사이엔 담이 있다. 그 담은 높지 않아서 우리의 소통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메시지)이 닿지 않는다.
내가 말하려 했던 것들을 당신이 들었더라면
당신이 말할 수 없던 것들을 내가 알았더라면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
부서진 내 맘도 당신에겐 보이지 않아요
나의 깊은 상처를 당신이 보았더라면
당신 어깨에 앉은 긴 한숨을 내가 보았더라면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
서로의 진실을 안을 수가 없어요
노래는 끊임없이 '~했더라면' 식의 헛된 가정을 되풀이하며 소통되지 않는 마음의 아픔을 토로한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마음의 상처
서로 사랑하고 있다 해도 이젠 소용없어요
절정이자 되풀이되는 후렴구에서는 서로 사랑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미 소통의 부재로 인한 상처는 돌이킬 수 없다고 한다.
가사를 찬찬히 읽다 보면 헤어짐을 앞둔 연인(또는 이혼을 앞둔 부부)이 그동안의 과거를 회상하며 짙은 후회와 아쉬움을 나누는 장면이 상상된다.
누구의 일방적인 잘못이 아니다. 둘 사이에는 낮은 담이 있었고, 그것이 미리 알아차려야 했을 많은 것들을 가로막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시점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가진 뒤라는 게 먹먹하다.
4.
사람 사이의 소통, 그중에서도 특히 연인 간의 소통의 어려움에 대한 메시지는 다른 노래의 가사 곳곳에서도 발견된다.
There is one thing i have to say to you
한 가지 당신에게 말해야 하는 게 있어요
I`d never meant to let you cry
당신을 울리려고 했던 건 절대 아니에요
<Regrets> 중
그대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잖아요
무슨 생각 어떤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건가요
나는 지쳐버렸어요.
<블루 크리스마스> 중
세 번째 수록곡인 <Tango of 2>는 남녀 듀엣곡인데, 여자의 말은 한국어로, 남자의 말은 스페인어로 표현해 둘 사이에 존재하는 소통의 장벽을 표현한다.
5.
소통의 어려움이 어찌 연인 사이에만 존재할까.
하지만 연인이나 가족처럼 가깝고 중요한 사람과의 소통이 더 어려울 때가 많기도 하다.
너무 사랑하고 아끼니까.
그리고 그 사람을 안다고 착각할 때가 많으니까.
6.
'그럴려던 게 아닌데'라는 말은 어디까지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우리 사이에는 '낮은 담'이 있다는 걸 항상 인지해야 한다.
완전한 소통에 대해 꿈꾸기보다는,
낮은 담 너머로 나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지금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게 어떨는지.
서로의 진실을 온전히 안을 수는 없을지라도,
담이 완전히 허물어질 수는 없더라도.
울리기 전에,
지쳐버리기 전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받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