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지 Lizzy Dec 05. 2015

프레이밍(Framing)에 대한 이야기

영화 <나를 찾아줘> by 데이비드 핀처

1.

처음에 나는 <나를 찾아줘>가 저 포스터 속 한 남자의 자아 찾기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원제목인 <Gone girl>을 모른 상태에서, 한국어 제목과 포스터만 보고 추측했을 때는 그랬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완벽히 스릴러에, 보고 나면 '소오름'이라는 생각과 함께 심약한 사람한테는 밤에 잘 때 약간 무서워질 수도 있는 영화다.

귀신 따위는 등장도 안한다. 하지만 귀신보다 무서운 인간이 등장한다.


2.

귀신조차도 유혹해서 맘대로 부릴 것 같은 인간, 에이미(로즈먼드 파이크).

영화의 전개를 무시하고 결과순으로 이야기를 적어보자면, 불행한 결혼 생활과 더이상 자기 마음대로 조종되지 않는 남편 닉에 대한 앙심(과연 이 단어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을 품은 에이미는 철두철미한 계획을 세워 닉을 자신을 살해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유유히 잠적한다.

그녀가 한 대표적인 행동은

- 자신의 피를 다량 뽑아 부엌에 뿌려놓고 대충 닦아 놓아 살인범이 은폐한 것처럼 만들기

- 남편 카드로 온갖 사치품을 구매해서 낭비벽이 심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기

- TV보는 중에 대충 싸인받아 자신이 죽을 경우 남편이 받게 되는 사망보험 금액 올려놓기

- 동네 임신부 여자와 의도적으로 친구가 된 뒤 그녀의 오줌을 훔쳐 자신이 임산부였던 것으로 만들기

- 자신의 행복했던 연애시절(진실)과 불행했던 결혼 생활(진실+가짜), 그리고 '남편이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로 끝나는 일기장 숨겨놓기

등이 있다.

내게 그녀가 진짜 무서운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자신의 피를 뽑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중에는 마음이 바뀌지만) 언젠가 죽어버려 더욱 계획을 완벽하게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목숨을 담보로, 남편의 사회적 매장 과정을 모두 지켜본 뒤 제도를 이용해 사형시키려는 사람이라니. 으으 소오름!


3.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하는 점은 닉 역시 훌륭한 인간은 아니라는 점이다.

- 그는 실직을 한 뒤로 게을러지고 괜찮은 남편이 되는 것을 포기했다.

- 무일푼으로 에이미를 자신의 고향동네에 데려왔다.

- 열 살도 넘게 어린 제자와 불륜을 저질렀다.


위에 에이미의 의도적 악행을 적어놓은 뒤, 디테일이 없는 요약문으로 닉에 대해 적으니 더 자명해 보인다.

그는 분명 에이미에게 나쁜 남편이었다. 사회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온 국민한테 욕을 들어야 할 만한 짓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정말 임산부인 아내를 사망보험금을 노리고 살해한게 아니라면 말이다.


4.

에이미는  어메이징하게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그녀의 나레이션이 자주 등장하는데, 남자를 유혹하는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사실 우리 존재는 있지도 않았어.
닉은 내가 연기한 여자를 사랑했으니까.
쿨한 여자(Cool girl), 남자들은 이걸 최고의 찬사처럼 말한다.
쿨한 여자는 섹시하고 똑똑하고 재미있으며,
남자에게 절대로 화를 내지 않는다
(...)
나 역시 닉을 위해 기꺼이 노력했다.
캔 맥주를 마시고 아담 샌들러 영화(주로 생각없이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를 봤다.
냉동 피자를 먹었고 사이즈2(우리나라 44 사이즈)를 유지했다.


상대가 원하는 걸 알아내고, 그대로 자신을 연기했다.

그녀가 그의 이상형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5.

에이미는 이 능력을 남자의 환심을 사는데 사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녀를 불행하게 만든 남자를 파괴하기 위해, 온 국민이 자기를 미국에서 가장 가련한 여자로 보게, 그녀를 위해 닉을 혐오하도록 만든다.

유명 동화의 실재 모델에, 임산부였던 자기를

어린 여자와 바람을 폈고, 낭비벽이 심한 남편이 살해하고,

이를 누군가에게 납치당해서 실종당한 것처럼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만들어놓은 정교한 프레임에서 닉을 바라본다.

그가 하는 말은 믿지 않는다.

에이미가 쳐놓은 덫이 진실인지 - 그녀가 정말 임신했는지, 혹시 그녀가 남편의 카드로 물건을 사고 덤탱이를 씌우는 건 아닌지 등 - 에 대해 1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가 싸이코패스일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관점은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하고 상식적이다.


6.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발표한 프레임 이론(Frame theory)에서 프레임이란 현대인들이 정치ㆍ사회적 의제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본질과 의미, 사건과 사실 사이의 관계를 정하는 직관적 틀을 뜻한다.
프레임 이론에 따르면, 전략적으로 짜인 틀을 제시해 대중의 사고 틀을 먼저 규정하는 쪽이 정치적으로 승리하며, 이를 반박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프레임을 강화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 출처 : 위키피디아

닉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전문 변호사를 고용해 언론 플레이를 펼치며 사람들에게 자신을 '선량하지 않은 행동을 했지만 절대 아내를 살해하지 않았으며 아내가 돌아오길(에이미는 기본적으로 실종 상태이다) 기다리는 남편'으로 이미지 메이킹하려 한다.

에이미와 닉의 지극히 개인적이었던 결혼 생활은, 어느 순간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지며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고민하게 하는 결혼이 되었다.

그들이 싸움은 고수들이 펼치는 프레임 대 프레임의 싸움이었다.

놀아나는 쪽은 언론이 보여주는 프레임에 맞춰 사고하는 사람들이었다.


7.

요새 이슈가 되는 사시 존치 사태를 지켜보며, 이 역시 프레임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타까운 건, 이미 한 쪽에 대한 사람들의 프레임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의 프레임이 아니라 여러 개의 프레임이 섞여서 문제의 본질이 자꾸 흐려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본질이냐 자체를 규정하는 것 역시 프레임이다.

쉽지 않은 싸움일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