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궁동이 있다
1.
초등학교 1학년 말에 수원으로 이사와 똑같은 집에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근 20년을 수원에 살았던 것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만나는 사람이 모두 수원에 사는 사람이라 내가 수원사람이라는 걸 느낄 새가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부터 내가 수원 사람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내가 다녀본 3개의 직장 중 2개가 서울에 있었고, 20대가 된 이후 맺은 인연의 대부분이 서울에 살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수원이 '서울에서 왕복 3시간 정도 걸리는 곳'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부모님이 살고 계셔서 무료 숙식이 가능한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느껴질 때도 있다.
2.
동시에 수원은, 내 고향이다.
아직도 동네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을 종종 마주칠 수 있다.
또 수원에는 내가 좋아하는 수원 화성이 있다.
굳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들먹거리지 않아도, 화성은 진짜 예쁘다.
그리고 수원에는 내가 좋아하는 '행궁동'이라는 동네가 있다.
행궁동은 수원 화성 내부의 성안 마을이다. 옛날에는 남문인 팔달문이 수원의 중심지로 엄청 번화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은 수원역에 왕좌를 빼앗겼다. 한창 번성하던 시절에는 성안에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동도 많았는데, 요즘에는 인구가 많이 줄어서 동을 통합해 '행궁동'이라는 법정동으로 합쳤다.
그렇게 쇠락의 길을 걷는가 했더니, 예쁜 카페와 멋스런 식당들이 생겨나면서 점점 수원의 핫플레이스가 되어가고 있다.
3.
내가 행궁동에서 애정하는 장소 7총사를 소개해본다.
1) 대안공간 눈/예술공간 봄
'우후죽순'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을만큼 요즘 행궁동은 한 달에 한 개씩 새로운 카페가 생기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행궁동이 이렇게 뜨기 훨씬 전부터 주거공간을 개조해 신진작가들의 작품 전시 및 갤러리 카페를 운영하는 대안공간 눈이 행궁동의 터줏대감이라고 생각이 든다. 카페는 정겨운 맛이 있다. 수제청으로 담근 전통차류가 특히 맛있다.
2) 쿨티 그라운드
대안공간눈에서 방화수류정 쪽으로 가다보면 마주하는 민트색 대문이 예쁜 카페 쿨티그라운드. 독일에서 예술 경영을 공부한 주인 언니의 감각이 돋보이고, 예술 심리치료사 혜윰님이 생각연구소라는 형태로 입주해 있어 그림검사, 성격검사 및 상담을 받기에 좋다.
3) 카페원모어
서문 쪽에 있는 카페로, 조각케이크와 에이드가 맛있다. 2층에 위치해있고, 루프탑 공간도 있다. 케이크가 다 팔리는 경우가 꽤 있어, 가기 전에 인스타그램을 확인하고 가면 좋다.
4) 플랑문
카페원모어에서 뒷골목으로 좀 가다보면 마주하는, 집을 개조한 카페다. 흔히 볼 수 없는 디저트인 키쉬와 크럼블 등을 판매한다.
5) 보영만두
북문 앞에 보영만두와 보용만두가 붙어서 원조 논쟁을 하고 있다. 둘 다 가본 사람 입장에서 말하자면, 둘 다 맛있다. 그런데 가게에 써있는 말을 잘 읽어보면 원조는 보영만두인 것 같다.(확실하지는 않다) 만두와 쫄면의 궁합이 일품이다.
6) 수원 통닭골목 - 용성통닭, 진미통닭
남문 쪽에 가까운 골목길에 치킨집이 밀집해있는 곳이 수원 통닭골목이다. 옛날통닭 느낌으로 후라이드/양념 치킨을 먹을 수 있다. 용성통닭과 진미통닭이 양대산맥으로 골목을 주름잡고 있는데(두 식당 모두 규모나 손님수가 어마어마하다), 개인적으로는 용성통닭이 쬐끔 더 맛있었다.(정말 개인의 취향이다)
7) 골목책방 브로콜리숲
정말 골목에 숨어 있는, 오픈한지 얼마 안된 따끈따끈한 골목책방이다. 푸근한 인상의 2명의 여자분이 운영하시며, 눈으로 보기에도 예쁘고 내용도 실한 좋은 책들이 많이 있었다.
4.
이외에도 행궁동에는 보석같은 장소들이 숨어있고, 계속 생겨나고 있다.
수원에 올 일이 있다면, 한 번쯤 둘러보고 가길 강력! 추천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