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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Lizzy Oct 08. 2017

D-22. 매일 매일의 글쓰기

축적의 힘

0.

어제부터 내일까지 3일간 하루에 2편씩 쓰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밀린 것과 카운팅 실수가 만회된다.

마음은 무겁다.

별 일은 일어나지 않고, 책 읽는 속도는 더디다.

글감은 쉽게 생성되지 않는다.


며칠 전부터는 일단 앉아서 글감을 생각해보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하루동안 틈틈히 생각해두면 소재가 생각나서 앉자마자 바로 쓰기 시작했는데.


1.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동안이 초심자의 행운 기간이었던 것 같다.

뭣도 모르면서, 별다른 노력 없이도 척척 글을 써내던.


어렵게 쓴다고 좋은 글이 나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애초에 나한테는 아직 좋은 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없다.

메시지가 명확한 글이 좋은 글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뭔가 분명하지 않다.


2.

매일 글을 쓰는 건 확실히 어려운 일이다.

혹자는 내가 그냥 일기를 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타인이 읽었을 때 의미있는 글을 쓰려고 고심한다.

에세이를 쓴다는 건 결국 통찰력이 관건인데, 글을 쓸수록 내 통찰의 폭이 매우 좁다는 걸 느낀다.

좋은 글쟁이가 되려면 감수성이 매우 민감해서 아주 작은 자극에도 큰 감정을 느낄 수 있거나, 애초부터 여행 같이 큰 자극이 있는 환경에 있는 게 자신을 노출시키는 게 필요하다.


3.

줄리아 카메론은 모든 사람은 원래 창조적이며, 내면에 있는 창조성을 일깨우기 위한 자신의 비법을 <아티스트웨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12주간 과제를 실천하며 따라가는 일종의 셀프 워크숍 책인데, 모든 과정 전에 기본 도구 중 하나로 '모닝페이지'를 제안한다.


그렇다면 모닝 페이지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매일 아침 의식의 흐름을 세 쪽 정도 적어가는 것이다. "어휴, 또 아침이 시작되었군. 정말 쓸 말이 없다. 참, 커튼을 빨아야지. 그건 그렇고 어제 세탁물을 찾아왔나? 어쩌고저쩌고..." 모닝 페이지는 저급하게 말하면 두뇌의 배수로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것이 모닝 페이지가 하는 커다란 역할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잘못 쓴 모닝 페이지란 없다. 매일 아침 쓰는 이 두서없는 이야기는 세상에 내놓을 작품이 아니다.
- 45페이지
무엇이든 생각나는 것을 세 쪽에 걸쳐 쓴다. 쓸 것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면 "쓸 만한 말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라고 쓴다. 세 쪽을 채울 때까지 이 말을 쓴다. 세 쪽을 가득 채울 때까지 무슨 말이든 쓰는 것이다.
- 49페이지

요약하자면, 모닝페이지는 아침에 일어나서 글로 아무말대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그것도 세 쪽이나 말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서 세 '쪽'이 어떤 크기인지 굳이 규격화하지는 않는데, 일반 수첩 사이즈라 해도 손으로 3페이지를 적으려면 적어도 20분은 걸릴 것이다.

그걸 매일 매일 해야 한다고 한다.

글을 쓰는 건 자기를 돌아보는 가장 좋은 도구 중의 하나다. 아무리 쓸데없는 생각이라도 매일 글로 옮겨적는 습관을 들인다면 분명 뭐라도 변화가 일어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일이며, 습관을 만드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중 하나다.

나는 애초부터 모닝페이지는 엄두를 내지 않았다. 요즘에야 백수이지만, 직장인일 때는 5분이라도 더 자는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대신 나이트페이지에 도전했다. 손으로 쓰는 게 싫었기 때문에 에버노트에 적었다. 대신 시간을 7분으로 정해놓았다.

나이트페이지 역시 쉽지 않았다. 결국 매일 쓰지는 못했지만, 일과 시간이나 자기 전에 7분 정도 짬이 나 보이면 뭐라도 적으려고 했다.


4.

매일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동시에 사소한 일이다.

하루 더 글을 쓴다고, 하루 글을 쓰지 않는다고 나한테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소한 행동만큼 축적되었을 때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것도 없다.

켜켜이 쌓여서 단단해진 힘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믿으면서, 때로는 똥글을 써서 부끄럽다고 느끼면서도 매일 쓰고 있다.

나중에 이 100편의 글을 모아서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별 다른 느낌이 들지 않을 것도 같지만.

심하게 부끄러워질 수도 있지만.


일단은 그 지점에 도달해보고 싶다.


*이 글 속 인용구는 모두 <아티스트웨이>(줄리아 카메론, 경당)에서 인용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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