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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Oct 09. 2017

D-20. 뚝심

1.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뚝심을 찾아보면 '굳세게 버티거나 감당하여 내는 힘'이라고 한다.

그런데 네이버에서 뚝심을 치면 웬 햄 사진들이 잔뜩 나온다.

뚝심갈비, 뚝심한우 같은 고깃집 리뷰도 많이 나온다.

뚝심은 소의 특정 부위를 의미한다. 질기고 단단해서 안 먹기도 하지만, 열심히 씹으면 씹히기 때문에 씹는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먹는다고 한다.

뭔가 검색은 제대로 안되지만, '뚝심있다'는 말이 여기서 연원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처음 알았다.


2.

부동산에서 서점 자리를 계약하고 왔다.

신혼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골목 안 10평이 안되는 상가로, 원래는 피부마사지샵이었다.

집주인과 계약금을 쓰고, 이전 세입자와 권리금 계약서를 쓰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막상 계약을 하고 나니, 기대도 되지만 불안감이 앞서기도 한다.

다음 세입자가 안나타나 권리금을 못 받을까봐 겁이 나고,

손님 한 명 오지 않는 나날이 계속되면 어떡하나 겁이 난다.

예상치 못한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아 다시 우울증이 도지고, 1년도 안되어 도중에 서점을 접는 것도 무섭다.


그렇게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와서, 부모님께 계약했다고 말씀드렸는데, 타박이 이어진다.

돈 까먹을 게 뻔한데 왜 하냐고.

장사 안된다고 우울해 하지 말라고.


부모님 입장에서는 걱정이 되어서 하신 말이겠지만, 불난 집에 부채질당한 느낌이다.

안 그러셔도 불안한데, 굳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셔야 할까.


3.

서점 뿐만 아니라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한 소리 하셨다.


나는 현재 수입이 한 푼도 없지만, 모아놓은 돈은 조금 있다.

서점도 내 돈으로 진행할거고, 앞으로 결혼하고 나서도 생활비를 낼 생각이다.

그게 내가 독립적인 주체로 대접받기 위한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마 내년에는 제대로된 수입이 없으니 해외 여행을 안갈 거라고 남자친구에게 말했고, 그걸 남자친구가 어제 부모님을 만난 자리에서 이야기했다.


부모님은 그걸 서운해 하셨다.

남자친구는 여행을 갈 거면서 나는 돈을 못 버니까 여행을 안 간다고 한게.

아빠는 남자가 가정을 부양해야 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하셨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자가 무조건 경제권을 쥐는 게 맞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가정을 부양할 의무는 남녀 모두에게 있다.

나는 내 선택으로 현재 돈을 벌고 있지 않은 것이고, 그에 대한 대가로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줄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비를 남친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을 것이다.

적더라도 내가 낼 수 있는 만큼은 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4.

이렇게 나름 확고한 생각으로 남자친구와 결혼 후 돈관리 계획에 대한 1차 합의를 끝냈는데, 부모님의 한소리에 기분은 롤러코스터를 탄다.

부모님은 무조건 내가 더 편하고, 물질적으로 대우받길 바라신다.

하지만 난 무임승차자가 될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공격을 받으면 내 가치관은 흔들린다.

내가 이상한건가? 라는 생각도 든다.


뚝심이 흔들린다.


5.

뚝심을 지키지 못하고 흔들리는 내가 싫어서 화가 났는데, 엉뚱하게 남친한테 풀어버렸다.

이런 내가 한심하지만, 또 이런 반응은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타인의 가치관 공격에 쿨하고 시크하게 '전 제 생각대로 잘 살거에요'라고 말은 할 수 있지만, 방문을 닫고 혼자 눈물을 흘린다.


이게 내 뚝심의 현주소다.


뚝심을 많이 먹으면 뚝심이 강해지나.

개소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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