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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Oct 12. 2017

D-18. 상처 입은 치료자

Wounded Healer 

1.

오전에 리딩큐어 수업을 들었고, 

오후에 상담을 했고, 

저녁에 청첩 모임을 했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멀미가 났다. 

광역버스를 오랜만에 타서 그랬는지, 저녁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건지 이유는 알 수 없다. 

다행히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는 참을 만했는데, 내린 다음에 참지 못하고 토했다. 


토하고 나니 메슥거리는 느낌은 덜해졌지만 여전히 몸은 좋지 않다.

덩달아 기분도 우울하다. 

안 좋은 생각이 먹구름처럼 밀려온다. 


2.

지금까지 7명의 내담자를 만나 8회 동안 12시간 상담했다.

결혼 전까지 8회의 상담이 더 예정되어 있다. 

파일럿 상담 프로그램 진행이 절반 정도 지났다.

 

3.

아직까지는 좋은 피드백을 받고 있다. 

만족도도 높은 편이고, 시간당 지불 희망 금액(Willing to pay)도 3만 원이 넘는다.

상담 프로그램도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가닥이 잡힌다. 

내가 어떤 부분을 도와줄 수 있을지, 또 어떤 부분에서는 도움이 안 되는 지도 알아가고 있다. 


이렇게 쓰고 나니 모든 게 잘 풀려가고 있는 것 같지만, 30분 전만 해도 축 쳐져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누워 있었다. 

내가 과연 누군가를 상담할 자격이 있을까. 

내 서점에 손님이 오기는 할까. 


4.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는, 구체적으로 내가 두려워하는 상황을 그려보고 직면해보는 게 좋다.(나도 내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걸 알고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상황을 꼽아보니 다음의 2가지다. 


1) 내가 심리상담/책 추천을 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 욕을 먹는 것

- 누군가가 "심리학을 제대로 공부한 적도, 관련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면서 심리상담을 하는 게 말이 되나요?"라고 할 것만 같다. 책 추천 역시, "출판업계나 서점에서 일해본 적도 없으면서, 책을 얼마나 안다고 추천을 해요?"라는 소리를 들을 것만 같다. 

- 두렵다. 이런 욕을 듣는 게. 누군가 악플을 달 것만 같다. 


2) 서점 계약기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것

- 2번째 회사를 3개월 만에 도망치듯 그만두었다. 호기롭게 회사 근처에 얻었던 자취방도 몇십만 원을 날리며 빼야 했다. 그런 상황이 닥칠까 봐 두렵다. 

- 내 서점을 아무도 찾아주지 않고, 나는 아무런 가치도 창출하지 못하고, 나는 좌절하고, 결국 또다시 포기해버리고 실패자가 되는 것이 두렵다. 


5.

남자 친구에게 이 두려움을 털어놓았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 빠졌을 때는 내 안에서 답을 찾지 말고 나를 아끼는 타인에게 답을 찾아야 한다. 


남자 친구는 두 번째 걱정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힘들 것 같다고 얘기했다. 한 가지 일을 끈기 있게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내가 뭔가를 그만둘 때 항상 한번 더 생각해보라고, 조금만 더 버텨보라고 하는 사람다운 대답이다. 

원하던(?) 따뜻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건 내가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걱정에 대해서는 자기가 대신 욕해주겠다고 했다. 어차피 내가 전문 심리상담사만큼 비싼 비용을 받으면서 하는 것도 아니고, 학위나 자격증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걸 한다는 이유만으로 욕을 하는 사람들까지 이해시킬 필요는 없다고 했다. 세상에는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있을 거라고 했다. 

원하던 따뜻한 대답이었다. 바보같이 든든해졌다. 


6.

심리상담 서점이 아이디어로만 머물던 시절, 이 얘기를 간호학과 출신의 후배에게 말하니 '상처 입은 치료자(Wounded Healer)'라는 개념을 소개해 주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개념은 칼 융(Carl Jung)이 만든 것으로, (심리) 분석자가 환자를 치료하는 이유는 그 분석자가 "상처받았기" 때문이다. 리서치에 따르면 73.9%의 카운슬러나 심리치료사가 한 번 이상의 상처 경험을 가지고 있고, 이 경험이 현재의 직업에 이르게 만들었다고 한다. 


7.

오늘처럼 우울한 기분이 들 때나, 누군가를 이유 없이 싫어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등, 인지/정서/행동적으로 "완벽하지"않은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면 '내가 상담자가 될 자격이 있나?'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하지만 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은 내담자들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분명 때때로 우울해지고, 자신을 싫어하고, 부정적 생각의 늪에 빠진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나는 포기하지 않고, 희망차고, 누군가를 도와줄 에너지가 있다. 


내 이름은 밝을 명(明)에 베풀 선(宣)을 쓴다. 

내 밝음은 어둠을 이겨낸 밝음이다. 

그리고 난 이 밝음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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