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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Dec 04. 2017

책을 안 사도 괜찮아요

초보 책방 주인의 초심 기록

1.

책방을 연지 3일이 지났다.

오늘은 정기휴일을 맞아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근무일보다 늦잠을 자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음식을 해 먹고, 운동 유튜브를 보며 몸을 움직여댔더니 벌써 5시가 되었다.


2.

3일간 서점 규모 치고는 많은 분이 다녀가셨다.

정확히 세어 보진 않았지만, 하루에 5건 정도의 책 구매가 있었다.

80%가 지인들이었지만, 아예 모르는 분들의 방문 및 구매도 있었다.

서점 선배님의 말로는 책방을 열고 한 달 동안 동네 주민이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하시던데, 그에 비하면 정말이지 고맙고 놀라운 성과다.


3.

3일을 돌이켜 보았을 때, 마음에 걸리는 손님이 두 팀 있다.

두 팀의 공통점은 오랜 시간 서점에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구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팀은 내 지인 1명이었고, 한 팀은 과제를 위해 찾아온 대학 새내기 3명이었다.

나는 지인에게 5권 정도의 책을 추천했다.

하지만 사지 않았다.

그리고 배웅하는 길에 조심스레 말했다.

"사고 싶었는데 아직 월급이 안 들어와서요..."


그녀가 책을 보며 멈칫거렸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내가 속도 모르고 신나게 책을 추천해댔구나.

미안했다.


4.

새내기 3명은 서점 앞에서 몇 분을 서성였다.

딱 봐도 우리 서점 손님 연령대(?)인데, 왜 안 들어오는지 궁금했다.

마침 개업선물로 준비한 호두과자도 마지막 하나가 남아 있었다.


내가 직접 문을 열고 나가서 호객했다.

"들어오시면 호두과자 드릴게요!"


알고 보니 그들은 독립 책방을 조사하는 과제를 하는 중이었고, 그 때문에 일부러 우리 서점을 찾아왔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왜 안 들어오고 있었냐고 물어보니, 내부에 사람들이 있어서 자신들이 방해가 되지 않을까 고민했단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그들에게 차를 내주고, 호두과자와 빵도 권했다.

그들은 싱그러운 대학 새내기답게 이것저것 재밌는 질문도 하고, 서점에 대한 칭찬도 정말 열심히 해줬다.

내부가 예쁘다, 향이 좋다, 차 맛이 좋다,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책을 사지 않았다.

한 명은 맘에 드는 책이 있었는지 끝까지 만지작 거리다 갔다.

 

그제야, 그들에게 서점에 선뜻 들어올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책을 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이번엔 미안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의도를 알아차렸고, 딱히 책을 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귀여웠고, 서점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고마운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이해도 되었다.

직장인에 비하면 한참 얇았던 대학생의 호주머니 사정도,

책 말고도 돈 써야 할 곳이 한참 많았던 그 시절도.


5.

작은 서점은 대형 서점에 비해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대형 서점에 비해 주인과 교류도 하고, 베스트셀러보다는 주인의 취향대로 큐레이션 된 책 목록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뭔가 책을 한 권쯤 사야 할 것 같은 압박 아닌 압박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카페를 겸하는 서점에서 앉아서 책을 보려니 "책은 사서 보셔야 되어요"라는 권고를 받은 적도 있다.

이해는 한다.

여러 사람의 손때를 묻으면 어느 순간 팔 수 없는 책이 되어버린다.

대형 서점의 경우 그런 파손 본을 서점이 아닌 출판사가 부담한다고 한다.

(서점이 책을 들여놓는 방식은 2가지가 있다. 매입과 위탁인데, 매입의 경우 서점이 책 판매와 상관없이 책을 들여놓을 때 대금을 지급하는 경우고, 위탁은 책이 팔리면 대금을 지급하는 형태다)

 

하지만 작은 서점의 경우 서점이 파손 본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손님에게 싫은 말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은 서점 손님들에게도 책을 구매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본다.

다른 서점은 몰라도 리지블루스의 서점 운영 방침은 그렇게 하려 한다.


책 구매는 분명 가성비가 좋은 일이다.

2만 원이 안 되는 값으로 꽤 긴 시간을 지적/정서적 유희를 맛볼 수 있으니.


하지만 동시에, 읽지도 않고 서가에 처박혀있는 책들이 많다.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하면 무료배송에, 10% 할인에, 굿즈나 마일리지도 준다.

책보다는 영화 한 편이, 옷 한 벌이, 커피 한 잔이 좀 더 확실한 효용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다면 무료로 책을 볼 수도 있다.

월급날이 다가오면 2만 원은커녕, 1만 원 소비에도 고민이 깊어진다.


서점을 열기 전에도 나는 도서관 헤비유저였지, 서점 헤비유저는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서점은 Heavy Visitor였다.


그런 나였기에, 책을 사지 않는 마음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런 분들에게도 기꺼이 따뜻한 차 한잔을 무료로 내어주는 서점이 되고 싶다.


7.

분명히 말하지만, 나도 책을 많이 팔고 싶긴 하다.

그렇지만 책을 구매하지 않는 사람도 손님은 손님이다.

골목 어귀에 생뚱맞게 존재하는, 심리상담서점이라는 생소한 슬로건을 내건 서점 문을 용감히 열고 들어온 손님.


덧붙여, 어차피 안 살 사람은 안 산다.

그래도 들어오실 거다.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모든 손님에게 따뜻한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기록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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