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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Dec 12. 2017

이 서점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혼자서 우두커니

1.

서점을 연지 열흘이 지났다.

두 번째 정기휴일을 맞아 오늘은 서점 문을 열지 않았다.

침대에서 오후 5시까지 나오지 않았다.

배가 고팠다.

목도 말랐다.

하지만 밥 먹기도, 물 마시기도 너무 귀찮았다.

그냥 몇 발자국 나가면 다 있는데.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우울했다.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냥 시간을 흘려보냈다.


2.

어제는 일요일이었다.

하지만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았다.

화요일에도 그랬다. 그나마 그날은 택배 기사님이라도 왔는데.

어제는 정말, 아무도, 서점의 문을 열지 않았다.


주말이라서 조금 기대했었다.

그런데 토요일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친한 친구 1명이 오랜 시간 있어줬고, 모르는 손님인 줄 알았던 한 분이 다녀가셨는데 알고 보니 남편의 지인이었다.


3.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기대하지 말자고.

차라리 손님이 안 온다고 생각하자고.

그냥 여긴 내 작업실이라고.

내가 책 읽고, 글 쓰고, 음악 듣는 나만의 공간.


젠장.

그럴 거면 집에나 있지.

카페나 가지.


지난번에도 썼지만 책이 안 팔리는 건 괜찮다.

그런데 아무도 오지 않는 서점을 우두커니 지키는 건, 정말이지 서글프다.


4.

토요일 밤에는 누군가가 심리상담 문의를 했다.

아예 모르는 분이었고, 친구를 통해 소개받았다고 했다.

나는 내가 상담 관련 자격증이 없다는 사실부터 밝혔다.

이후로 그분은 답장이 없었다.


5.

이해할 수는 있다.

나라도 제대로 상담을 배운 사람이 아니라면 일단 쉽게 신뢰하기는 힘들 거니까.


그러고 보면 파일럿 상담으로 아홉 분이나 만날 수 있었던 게 신기하다.

무료 상담이라서 가능했던 일일까.

아니면 내 서점의 위치가 너무 외진 걸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서점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나'하는 생각으로까지 발전해버린다.

역시, 유리 멘탈 어디 안 간다.

고작 열흘 만에, 지치기 시작했으니.


6.

남편을 부여잡고 하소연을 한다.

남편은 다독이다가도, 냉철한 조언을 한다.

"시간을 좀 가지고 기다려. 이제 고작 열흘이잖아"

"그렇게 외진 장소에 문 열 때부터 지나가는 손님이 들어올 걸 기대하진 않았잖아."

"타깃에 대해 분명히 해봐. 어떤 사람을 위한 서점인 건데?"


마지막 말에 정신이 번쩍 뜨였다.

그래, 이 서점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거지?

나는 누구한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 걸까?


7.

난 첫 직장을 다니기 직전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퇴사할 뻔했다.

그때 나에게 손을 내밀었던 팀장님이 그러셨다.

네가 참, 강도 맞은 사람처럼 보여서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고.


그 팀장님과 6개월 뒤인가, 함께 교육을 하는 팀을 꾸렸었고 그때 우리의 초기 타깃 중 하나가 "삶의 의욕을 강도 맞은 사람들"이었다.


서점의 타깃에 대해 생각하다 다시 이 말이 생각났다.

삶의 의욕을 강도 맞은 사람들.


우울증에 의해서.

회사에 의해서.

가족에 의해서.

이별에 의해서.


삶의 의욕을 앗아가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리지블루스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려 한다.


어려운 점은, 아직 내가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책"과 "상담"이 주요 키워드라고는 생각하는데, 구체적 그림이 안 잡힌다.

그래도 이건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뭐, 이리저리 파다 보면 방법이 보이겠지.  


8.

사실 어제 손님이 정말 한 명도 없었던 건 아니다.

오프라인 서점을 찾았던 분은 한 명도 없었지만, 누군가 메일로 나에게 상담을 청했다.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그분은 어릴 때부터 겪은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으며, 현재 상황에 대한 실낱같은 도움이라도 청했다.


나는 답장을 보냈고, 곧이어 너무 고맙다고,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답장을 다시 받았다.

나도 다시 답장을 보냈다.


당신은 오늘 손님이 없었던 내 서점의 유일한 손님이었다고.

당신의 방문이 나에게도 큰 위안이 되었다고.


9.

상담 프로그램의 방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려 한다.

전문 상담 교육을 받지 않은 내가 그런 분들의 심리상담을 하려고 해봤자 그저 흉내에 그칠 뿐이다.

적어도 내년 2월까지는 돈 벌려는 마음을 정말 접고,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겠다.

내가 상대적으로 강점을 가진 분야(인터뷰, 글쓰기, 책 등)를 잘 조합해서 나만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가장 눈 앞에 둔 목표는 일단 내일부터 일요일까지 무사히 서점 문을 잘 여는 것.

당장 손님이 오지 않더라도 언젠가 문을 열고 들어올 누군가를 위해 내 강점을 잘 키우는 것.


힘냅시다.

아자.


<끝>


글쓴이 김명선

- 수원에서 심리상담서점 리지블루스를 운영합니다.

- lizzyblues03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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