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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Dec 20. 2017

프롤로그. 결말이 없는 이야기

누군가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되기를  

1.

2016년 7월, 나는 내가 우울증 환자라는 사실을 SNS를 통해 공개했다. 

누군가는 이를 '커밍아웃'이라 칭하기도 했다. 

진짜 커밍아웃에 비할 바가 되겠냐마는, 나도 용기가 필요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세 번째 회사에 입사하기 직전, 혼자서 통영에 내려가 머물던 게스트하우스에서 눈물 줄줄 흘리면서 썼다. 


왜 눈물이 났는지는 모른다. 

울만하니까 울었겠지, 뭐.


1년 반 전의 일이라 왜 내가 이 일을 저질렀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추측컨대, 9할은 나를 위한 것이고 1할은 남을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내 치부를 드러내는 게 왜 나를 위한 것이냐고 한다면, 역시 잘 모르겠다.

별로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굳이 적어보자면, 

고통을 글로 적어버리면 그건 딱 그 글만큼의 고통이 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더도 덜도 없이, 그 글만큼.


나는 이 '만큼'을 지키지 못해 우울하다. 

딱 그 '만큼'만 우울하면 되는데, 그럼 병이 아닌데, 그 '만큼'을 벗어나서 한없이 우울해져서 병이다.


그런데 글로 적고 나면, 일시적이나마 그 당시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락앤락 통에 담아버리는 것 같다. 

그래서 난 글을 쓴다.

정리하는 걸 좋아해서.


2.

나머지 1할은 누군가를 위해 쓴다.

대상을 딱히 정해놓지는 않는다. 

한 때 업으로 해 먹고살던 게 타깃 리서치였는데, 팀장님이 항상 '누구를 위해서'가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는데, 글 쓸 때는 타깃 따위 없다. 

그래서 내 글은 팔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분명 내 글을 읽는다. 

내 찌질하고 약한 글을 읽는다. 


그리고 일부에게는 어떤 '작용'을 할 것이다.

그 '작용' 중 일부는 '위로'일 수도 있다.


분명 있다.

실제로도 만났으니까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난 쓴다.

찌질하고 약한 나에 대해 쓴다.


3.

난 누군가의 약한 이야기가 또 다른 약한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내 서점을 찾는 내담자 분들께 옵션을 드렸다.

상담을 비밀이 철저히 보장되는 '오프 더 레코드'로 하실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공유될 수 있는 '온 더 레코드'로 하실지.

그리고 왜 내가 당신의 아픈 이야기를 글로 써서 누군가에게 공유하려 하는지 짧게 설명을 드렸다. 

사실 이런 경우 내가 돈을 드려야 맞지만, 월세 내기도 빠듯한 편이라 2회 차 상담을 무료로 해드린다고. (원래 내 상담은 1회 차가 무료여서, 2회 차도 무료로 해드린다고 했다)

>> 2018년 2월 1일부로 무료 상담 이벤트를 끝냈기 때문에, 온더레코드 옵션을 선택한 분께는 책 한권을 선물로 드립니다. 



그동안 오신 분들이 모두 '오프 더 레코드'를 고르셔서 아예 옵션을 빼야 하나, 싶었지만 드디어 오늘 온 더 레코드를 신청하신 분이 나타났다. 

너무도 쿨하게, 상관없다고.


4.

그분 덕분에 이 매거진은 시작될 수 있었다.

앞으로 또 다른 분이 나타날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은 시작하고 본다. 


프롤로그가 너무 거창해진 것 같아 걱정도 되지만, 출사표를 제대로 던져야 쪽팔려서라도 열심히 나아갈 것 같다.


아마도 누군가가 우울증을 겪는 이야기, 

아마도 누군가가 외로움을 느끼는 이야기, 

아마도 누군가가 무기력해하는 이야기.


심리상담서점 리지블루스에 찾아온 내담자 분들 중 철저하게 상담 내용의 기록 및 공유에 동의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익명화해서 적어봅니다.


아마 이야기에 결말은 없을 거예요. 

그분의 삶은 이야기 후에도 계속될 테니까요. 



고맙습니다.



<끝> 




글/ 김명선

- 수원에서 심리상담서점 <리지블루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인스타그램 @bookstore_lizzy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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