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새댁 이풀잎 님의 이야기
얼마 전 결혼을 해서 친정과 떨어진 지방에서, 남편과 살고 있는 이풀잎(가명) 님의 이야기입니다.
제 20대는 전반적으로 우울했어요.
그때는 그게 우울증 인지도 몰랐죠.
그러다가 공황장애 증상이 왔어요. 그때 병원을 처음 갔고, 불안증과 우울증이 같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내가 우울증...? 이게 뭐지? 무섭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며칠 전 죽은 샤이니 종현의 유서에서 의사가 '니 성격 탓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는데, 저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거 말고도 '많이 움직여라, 햇빛 많이 쬐라...' 같은 소리들. 솔직히 도움이 안 되었어요. 털끝 하나도 움직이기 싫은데 어떻게 움직이고 햇빛을 쬐러 밖으로 나가나요.
심리상담 추천을 받아서 두어 번 가봤는데, 제 얘기만 하다 끝나서 그만뒀어요.
전 어차피 엄마랑 엄청 친해서 미주알고주알 다 털어놓는 편인데, 돈 주고 남한테 내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한참 안 좋았다가, 좀 괜찮아졌었는데 요즘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다시 우울증 증세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걱정이에요.
겨울이 힘들어요. 밤도 뭔가 더 깊은 것 같고...
사람들을 보다 보면 궁금해요.
왜 사는 걸까?
솔직히 열심히 일하는 남편을 보면서도 궁금해요.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그 돈 벌어서 뭐하려고 쓰는 걸까?
앞으로 살 날이 얼마 안 남으신 어른들을 봐도,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이런 게 궁금해요.
지금 신혼인데, 마냥 좋지는 않아요.
결혼식 3일 전에 남편이 그동안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동생이랑 같이 살고 있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친구랑 살고 있더라고요.
그냥 한 번만 그랬던 게 아니라, 연애하면서도 종종 '동생이랑 영화 보고 왔어', '동생이 어머님이 준 반찬 맛있대' 같은 이야기를 했거든요.
지금 짐작하는 이유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남편이 단란해 보이는 제 친정을 부러워해서 그런 거짓말을 한 게 아닌가 싶어요.
여자 문제로 그럴 사람은 아니라서 덮긴 했는데... 솔직히 제가 깡 있었으면 결혼 엎었을지도 몰라요.
거짓말을 했던 거나, 그 후의 대응 방식이 미덥지 않았거든요.
그뿐 아니라 결혼하고 나서 사람이 '변했다'는 인상을 많이 줘요.
저도 제가 예민하고, 잘 우울해하고, 히스테릭한 걸 알아요.
그래서 그걸 잘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고, 그런 사람이 남편이라고 생각해서 결혼한 거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 저를 위해 원래 성격을 많이 숨겼던 거더라고요.
신혼여행 다녀와서 신혼집에서 자게 된 첫날, 친정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어요.
그랬더니 '너 그렇게 울 거면 다시 친정으로 돌아갈래?'라고 하더라고요.
황당했어요.
제가 일주일이나 한 달을 그런 것도 아니고, 딱 하루 그런 건데 그 한 번을 위로해주지 못하고 저렇게 말하는 게 속상했어요.
나중에 미안하다고는 하더군요. 하지만 이미 제 마음은 닫혔죠.
이후로도 이런 패턴은 반복되었어요.
결혼 후 알게 된 남편은 자존심이 세고, 욱하는 성격이 있는 사람이더군요.
제가 속상한 걸 말하면 먼저 '그럼 나는?'이나 '넌 뭘 잘했다고' 같은 말이 먼저 나와요.
불같이 화내고, 나중에 미안하다고 싹싹 빌죠.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상처 줄 건 다 주고, 나중에 미안하다고 말한다고 끝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밤이 되면 남편 문제와 상관없이 마음이 이상해져요.
남편 직장이 지방에 있다 보니까, 기숙사에 살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은 보면서 생각해요. '일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뭐하실까?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살아가실까?' 궁금해져요.
전 요즘 사는 게 딱히 재미가 없어요.
그나마 시장 가는 게 유일한 낙이네요. 밥하는 건 조금 재밌는 것도 같고요.
취미를 가져보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는데, 손에 아토피가 심해서 한계가 많아요. 웬만한 취미는 다 손으로 해야 하더라고요.
제 우울증의 원인을 못 찾겠어요.
아토피도 거의 8년을 앓고 있는데 원인을 모르겠고요.
스님들의 책을 읽어보면, 다 놓고 살라는 메시지를 던지시더군요. 하지만 너무 어려워요. 제가 스님은 아니잖아요.
잠을 많이 자려고 노력해요. 잠을 많이 자면 하루가 짧아지니까... 또 컨디션 조절에도 중요하고요. 그런데 자면서도 벌떡벌떡 깨요. 지금 신혼집이 낯설어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해도 전 잡생각이 많아요. 내일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요.
내일은 뭐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몸을 움직여도 잡생각이 나요. 저도 이게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아요.
우울해지면 폭식을 하기도 해요. 먹고 토하고...
두통이나 신경성 위염은 거의 친구 같은 병이고요.
이유 없이 아픈 데가 참 많아요.
별생각 없이 살고 해맑은 사람들이 정말 부러워요.
그래도 엄마가 제게 많은 위안을 줘요.
속에 있는 얘기를 다 털어놓을 수 있거든요.
엄마는 괜찮다고, 다 그런 거 한 번씩은 느낀다고... 말해주세요.
풀잎님의 첫 번째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혹시나 염려가 되어 적자면, 저나 제 글에 대한 댓글에는 대응을 하겠지만 풀잎님에 대한 공격성 댓글은 무조건 삭제하겠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위로가 됩니다'
매거진 <온 더 레코드> 1화 마침.
글/ 김명선
- 수원에서 심리상담서점 <리지블루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인스타그램 @bookstore_lizzy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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