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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Dec 21. 2017

ep01. 왜 사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30대 새댁 이풀잎 님의 이야기 

얼마 전 결혼을 해서 친정과 떨어진 지방에서, 남편과 살고 있는 이풀잎(가명) 님의 이야기입니다.


햇빛 쬐라는 말은 도움이 안 되어요


제 20대는 전반적으로 우울했어요.

그때는 그게 우울증 인지도 몰랐죠. 

그러다가 공황장애 증상이 왔어요. 그때 병원을 처음 갔고, 불안증과 우울증이 같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내가 우울증...? 이게 뭐지? 무섭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며칠 전 죽은 샤이니 종현의 유서에서 의사가 '니 성격 탓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는데, 저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거 말고도 '많이 움직여라, 햇빛 많이 쬐라...' 같은 소리들. 솔직히 도움이 안 되었어요. 털끝 하나도 움직이기 싫은데 어떻게 움직이고 햇빛을 쬐러 밖으로 나가나요. 


심리상담 추천을 받아서 두어 번 가봤는데, 제 얘기만 하다 끝나서 그만뒀어요. 

전 어차피 엄마랑 엄청 친해서 미주알고주알 다 털어놓는 편인데, 돈 주고 남한테 내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겨울의 밤이 깊다


한참 안 좋았다가, 좀 괜찮아졌었는데 요즘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다시 우울증 증세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걱정이에요. 

겨울이 힘들어요. 밤도 뭔가 더 깊은 것 같고...


궁금해요...


사람들을 보다 보면 궁금해요. 

왜 사는 걸까?


솔직히 열심히 일하는 남편을 보면서도 궁금해요.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그 돈 벌어서 뭐하려고 쓰는 걸까?


앞으로 살 날이 얼마 안 남으신 어른들을 봐도,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이런 게 궁금해요.


남편의 거짓말


지금 신혼인데, 마냥 좋지는 않아요. 

결혼식 3일 전에 남편이 그동안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동생이랑 같이 살고 있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친구랑 살고 있더라고요.

그냥 한 번만 그랬던 게 아니라, 연애하면서도 종종 '동생이랑 영화 보고 왔어', '동생이 어머님이 준 반찬 맛있대' 같은 이야기를 했거든요. 


지금 짐작하는 이유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남편이 단란해 보이는 제 친정을 부러워해서 그런 거짓말을 한 게 아닌가 싶어요. 

여자 문제로 그럴 사람은 아니라서 덮긴 했는데... 솔직히 제가 깡 있었으면 결혼 엎었을지도 몰라요.

거짓말을 했던 거나, 그 후의 대응 방식이 미덥지 않았거든요.


그뿐 아니라 결혼하고 나서 사람이 '변했다'는 인상을 많이 줘요.

저도 제가 예민하고, 잘 우울해하고, 히스테릭한 걸 알아요.

그래서 그걸 잘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고, 그런 사람이 남편이라고 생각해서 결혼한 거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 저를 위해 원래 성격을 많이 숨겼던 거더라고요. 


신혼여행 다녀와서 신혼집에서 자게 된 첫날, 친정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어요.

그랬더니 '너 그렇게 울 거면 다시 친정으로 돌아갈래?'라고 하더라고요. 

황당했어요.

제가 일주일이나 한 달을 그런 것도 아니고, 딱 하루 그런 건데 그 한 번을 위로해주지 못하고 저렇게 말하는 게 속상했어요.

나중에 미안하다고는 하더군요. 하지만 이미 제 마음은 닫혔죠.


이후로도 이런 패턴은 반복되었어요.

결혼 후 알게 된 남편은 자존심이 세고, 욱하는 성격이 있는 사람이더군요.

제가 속상한 걸 말하면 먼저 '그럼 나는?'이나 '넌 뭘 잘했다고' 같은 말이 먼저 나와요. 

불같이 화내고, 나중에 미안하다고 싹싹 빌죠.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상처 줄 건 다 주고, 나중에 미안하다고 말한다고 끝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들 무슨 재미로 살아가세요?


밤이 되면 남편 문제와 상관없이 마음이 이상해져요.

남편 직장이 지방에 있다 보니까, 기숙사에 살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은 보면서 생각해요. '일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뭐하실까?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살아가실까?' 궁금해져요.


전 요즘 사는 게 딱히 재미가 없어요. 

그나마 시장 가는 게 유일한 낙이네요. 밥하는 건 조금 재밌는 것도 같고요.


취미를 가져보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는데, 손에 아토피가 심해서 한계가 많아요. 웬만한 취미는 다 손으로 해야 하더라고요.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아요


제 우울증의 원인을 못 찾겠어요.

아토피도 거의 8년을 앓고 있는데 원인을 모르겠고요.


스님들의 책을 읽어보면, 다 놓고 살라는 메시지를 던지시더군요. 하지만 너무 어려워요. 제가 스님은 아니잖아요. 


잠을 많이 자려고 노력해요. 잠을 많이 자면 하루가 짧아지니까... 또 컨디션 조절에도 중요하고요. 그런데 자면서도 벌떡벌떡 깨요. 지금 신혼집이 낯설어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해도 전 잡생각이 많아요. 내일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요. 

내일은 뭐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몸을 움직여도 잡생각이 나요. 저도 이게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아요.


우울해지면 폭식을 하기도 해요. 먹고 토하고... 

두통이나 신경성 위염은 거의 친구 같은 병이고요. 

이유 없이 아픈 데가 참 많아요.


별생각 없이 살고 해맑은 사람들이 정말 부러워요. 


괜찮다, 다 그런 거 한 번씩은 느낀다...


그래도 엄마가 제게 많은 위안을 줘요. 

속에 있는 얘기를 다 털어놓을 수 있거든요.

엄마는 괜찮다고, 다 그런 거 한 번씩은 느낀다고... 말해주세요.





풀잎님의 첫 번째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혹시나 염려가 되어 적자면, 저나 제 글에 대한 댓글에는 대응을 하겠지만 풀잎님에 대한 공격성 댓글은 무조건 삭제하겠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위로가 됩니다' 

매거진 <온 더 레코드> 1화 마침. 




글/ 김명선

- 수원에서 심리상담서점 <리지블루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인스타그램 @bookstore_lizzy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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