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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Dec 24. 2017

ep02. 아빠와 저는 공존할 수 없어요

20대 화장품 판매원 한준수 님의 이야기 

술을 마시면 가족들에게 폭언을 일삼는 아빠 때문에 독립을 준비하는 한준수(가명) 님의 이야기입니다.


가족들이랑 말을 안 해요


현재 춘천에서 부모님, 누나랑 같이 살고 있어요. 

그렇지만... 가족들이랑 거의 말을 안 해요.

요즘은 돈을 모아서 빨리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하는 것 같아요.


여성스러운 아들을 싫어했던 아버지


전 어릴 때부터 아빠랑 안 맞았어요. 

아빠가 바라는 아들은 스포츠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남자아이였지만, 저는 아니었거든요. 

저는 여성스럽고, 여자애들이랑 어울리는 게 더 즐거운 사람이었어요.

이런 저에게 아버지는 정말 어릴 때부터 대놓고 면박을 주고는 하셨고, 사이가 좋을 때가 없었어요. 


술을 마시면 가족들에게 욕을 하는 아버지


아빠는 술을 참 좋아하세요. 

술만 안 마시면 그래도 상식적인 사람인데, 술만 마시면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되죠. 

심한 욕을 하세요. 

대부분의 타깃은 엄마이지만, 누나나 제가 타깃이 될 때도 있죠. 

솔직히 엄마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어요. 좀 더 딱 부러지게 대응하셨더라면 아빠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지만 엄마가 대들면 더 난리가 나긴 해요. 물건이 날아다니고... 어릴 때 아빠가 식칼을 든 것도 본 적이 있어요. 

저랑 누나는 어렸고, 우리도 힘드니까 딱히 끼어들지 않았죠.


언젠가부터 아빠한테 곁을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4살 때부터인가, 아빠를 무시하기 시작했어요. 집에 들어와도 인사도 안 하고, 눈도 안 마주치고, 말을 아예 안 했어요. 

이런 제 태도에 대해 아빠는 섭섭해하기 시작했고, 화도 내셨죠. 

그래도 저는 제 태도를 바꾸지 않았어요.

 

전 이미 아빠에 대해 포기했거든요. 

사람은 안 바뀌어요. 


엄마는 자식 된 도리는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좀 살고 싶어요


엊그제 나름의 사건이 터졌어요.

저는 화장품 판매원으로 일하고 있고, 요새 자격증 준비하는 것도 있어서 방에 화장품이나 자격증 준비 관련 물건이 많이 쌓여 있어요. 나름 쇼핑백에 담아서 놓았는데, 아빠 눈에는 거슬렸나 봐요. 엄마 통해서 방을 치우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최근 제가 정말 사랑했던 강아지가 죽었어요.

저는 아픈 강아지 간호하랴, 죽고 나서는 슬퍼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제가 안 치우니까 어느 날 엄마가 어느 정도 치워놓으시긴 했어요. 

그런데 엊그제 아빠가 술 마시고 취해서는, 제 방에 들어와서 방 언제 치울 거냐- 저 쇼핑백들은 다 뭐냐- 갖다 버린다고 욕하면서 막 집어던지더라고요.

그동안도 이런 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번엔 화가 나서 저도 대들었어요.

나도 욕 못하는 거 아니다, 아빠한테 하도 욕을 들어서 나도 욕 잘한다, 그런데 난 당신이랑 똑같은 사람 되고 싶지 않아서 안 하는 거라고. 

그랬더니 이런 걸 자식이라고 키웠다고 집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뭐 그런 식으로 같은 말 계속 반복하셨어요. 저도 바락바락 대들었고요. 


아빠가 나가고, 나중에 엄마도 와서 저한테 한 소리 하시더라고요.

언제까지 아빠한테 그럴 거냐고. 

자식 된 도리가 있다고. 


저는 엄마한테 그랬어요.

나도 좀 살자고. 난 나를 방어할 뿐이라고. 내가 그동안 자라면서 이런 일 너무 많았는데, 내가 아빠한테 대든 건 다섯 손가락에 꼽는다고. 


그렇게 새벽 2시까지 난리를 치르고, 다음날 일하는 데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화도 나고, 명치도 아프고. 열이 올라오고. 

아빠한테 못해준 말도 생각나고요.


저는 제 그릇을 알아요


엄마는 제 진로에 대해서도 뭐라 하셨어요. 

네가 언제 "정상적인 일"을 한 적이 있냐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엄마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일은 사촌처럼 공무원 시험 준비해서 공무원이 되거나, 안정적인 회사에 취직하는 거겠죠. 


전 대학교를 자퇴했어요. 왜냐하면 대학교를 나와서 잘 될 거라는 비전도 없었고, 나중에 학자금 대출을 갚아나갈 자신도 없었거든요.

지금의 저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사회에서 자리 잡고 성실하게 저축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전 이게 제 그릇이라고 생각하고, 행복해지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변하지 않아요


아빠는 이제 저와 좋은 관계가 되길 바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바라는 건 서로 투명인간처럼 지내는 거예요.

사람은 변하지 않아요.

사람이 변한다면, 60대나 70대가 되어서 이혼하는 부부가 왜 있겠어요.


저는 가족 일만 아니면 행복해요. 

친구도 많고, 현재 일도 마음에 들고요.


저는 남자를 사랑합니다


저는 게이예요. 


정말 어릴 때부터 전 남자이지만 여성스러웠고, 아이들한테 놀림도 참 많이 받았어요. 

아이들은 철이 없죠. 그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도 어렸어요. 그걸 넘길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죠. 


처음에는 저를 바꿔보려고도 했어요. 다른 남자애들처럼 축구나 농구도 해보려고 했죠. 나 자신을 교정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중학생이 되고 알게 되었어요. 

저는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라는 걸. 

그런데 그 시기의 아이들한테 게이는 병신과 동의어였어요. 

교회를 다녔는데, 거기서도 무조건 안 되는 거라고 얘기하셨고요.


저도 정상적으로 학교 생활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본능적으로 남자한테 눈이 가더라고요.

고1 때는 결국 이런 저를 인정하게 되었어요.


학교 생활이 끝나서 행복해요. 

성인이 되고 나서는 아무도 제가 여성스럽다는 것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거든요.


지금은 저를 좋아해 주는 친구가 많아요. 

저 같은 사람도 세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아빠와 공존할 수 없어요


빨리 독립하고 싶어요. 

그런데 독립하고 나면, 아빠를 평생 안 볼 것 같아요.


아빠가 저를 사랑하는 건 알아요.

저도 안타까운 마음은 있고요.


하지만...

공존하기에 우린 너무 달라요. 




준수님의 첫 번째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혹시나 염려가 되어 적자면, 저나 제 글에 대한 댓글에는 대응을 하겠지만 준수님에 대한 공격성 댓글은 무조건 삭제하겠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위로가 됩니다' 

매거진 <온 더 레코드> 2화 마침. 



글/ 김명선

- 수원에서 심리상담서점 <리지블루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인스타그램 @bookstore_lizzy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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