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직장인 주초롱 님의 이야기
<온 더 레코드>는 심리상담서점 리지블루스를 찾은 내담자들 중 철저히 동의하신 분에 한해 상담 내용을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익명화를 거쳐 이야기를 공유하는 매거진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서 이제 1년쯤 회사를 다닌 것 같아요.
지금은 괜찮은데... 과거의 제가 우울증이었던 건 아닌가 싶어 왔어요.
전 고등학교 때 학교를 한동안 안 나갔어요.
처음에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안 나갔고 이게 한 두 달 정도 지속되었어요.
호되게 혼나고 다시 잘 나가다가 고3이 되고 1~2주 연속으로 학교를 빠졌어요.
글쎄요. 왜였을까요.
학교에는 좋은 사람도 있었고, 재밌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뭔가 나를 압박하는 느낌과 시선이 있었어요.
그 시선은 대체로 선생님들로부터 또는 어떤 친구들로부터 받았어요.
고1 때는 공부를 잘했는데 고2 때부터 공부를 안 했어요.
선생님들은 걱정해주시고, 안타까워하기도 했지만 저를 이해 못하기도 하고, 압박도 하셨어요.
학교를 안 간다고 뭔가를 한 건 아니에요.
그냥 집에서 누워 있었어요.
사무치게 외로웠던 것 같아요.
친구도 많고 잘 어울리기도 했지만, 깊이 누군가의 마음에 공감하진 않았어요.
학교에서 소외된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어느 순간부터 수업을 못 따라가겠는데, 수업 시간에 딴 짓은 못해요.
결국 멍하니 선생님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죠.
부모님이 초등학교 때 이혼하셨어요.
처음에는 이혼하셨다는 것도 몰랐어요. 그냥 아빠가 멀리 돈 벌러 가신 줄 알았으니까요.
이혼 후보다는, 이혼하시는 과정에서 제가 받은 고통이 더 컸어요.
아빠는 좀 어린아이 같아요.
엄마도 그렇게 성숙한 어른은 아니고요.
부모님이 저를 좀 일찍 낳은 편이세요.
지금 생각하면, 연민의 감정이 들어요. 힘들었겠죠, 둘 다.
어릴 때는 외갓집에서 자랐어요.
친척들이 다 아빠 욕을 하니까 저도 아빠 원망을 많이 했어요.
크고 나서 지금까지 아빠랑 살고 있는데 그러고 나니 아빠 입장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보기엔 둘 다 똑같이 잘한 거 없어요. 어느 한쪽 때문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이혼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래도 원망하는 마음이 밑에서부터 올라올 때가 있어요.
머리로는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심장은 쿵쾅거리죠.
심리학 책을 많이 읽어요.
어릴 때 경험이 영향을 많이 준다는데, 전 극복하고 싶거든요.
노력은 하는데, 왜 이런 결함을 갖게 된 걸까... 원망이 커지기도 하죠.
전 외로움을 잘 못 견디는 편이에요.
혼자 있는 걸 정말 못 견뎌요.
어떻게든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데, 또 사람들 많이 만나고 나면 공허한 기분이 들어요.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들고. 행복하려고 사람을 만나는 건데, 이게 더 날 좀먹는 느낌이 있어요.
중학생 시절에는 맨날 울었어요.
아빠가 재혼하시기 전이어서 동생이랑 살았는데, 내가 모든 집안일과 돈 관리를 해야 했어요.
설거지나 빨래 같은 거요. 엄청 스트레스였어요.
다른 아이들은 이런 거 안 하는데 난 왜 해야 되나... 생각도 들고요.
중학교 때 전학이 잦았는데, 학교에 상담실이 있어서 꾸준히 받았어요.
선생님이랑은 깊은 얘기나 큰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유치원생 때 친척 오빠한테 성폭행을 당했어요.
엄청나게 큰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상황이 생생하게 기억나진 않는데, 옛날에 영화 본 것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지금은 좀 헷갈릴 때도 있어요.
이게 현실이 맞았던 걸까...
그런데 저만 당한 게 아니었더라고요. 가족 중에 당한 사람이 또 있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보고 지내요.
원망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이 마음을 눌러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촌오빠뿐만 아니라, 아빠한테도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어요.
용서하려고 노력하는데... 가끔 감정이 올라올 때가 있어요.
그런 날은 눈을 못 마주치겠어요.
두 달 전인가, 동생이 그러더군요.
누나처럼 안되고 싶어서라도 운동 열심히 해야겠대요.
지금 제가 월급도 얼마 못 받으면서 일하는 게 한심해 보였나 봐요.
아빠도 같이 있었는데 딱히 뭐라고 안 하더라고요.
다른 사람이 제 미래를 비참하다고 하니까, 참 비참해지더라고요.
그렇지만 저는 제가 비참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차피 완벽한 인생은 없잖아요.
적당히 먹고 싶은 거 먹고, 입고 싶은 거 입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날 수 있는 정도로 벌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냥... 내 속도에 맞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한테 상처 준 사람들을 용서를 못하는 제가 싫을 때도 있어요.
웃긴가요?
그런데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어쨌든 삶은 즐거워야 하니까요.
내 인생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아요.
한때는 원망하는 게 힘일 때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초롱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혹시나 염려가 되어 적자면, 저나 제 글에 대한 댓글에는 대응을 하겠지만 초롱님에 대한 공격성 댓글은 무조건 삭제하겠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위로가 됩니다'
매거진 <온 더 레코드> 4화 마침.
글/ 김명선
- 수원에서 심리상담서점 <리지블루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인스타그램 @bookstore_lizzy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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