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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Jan 31. 2018

ep05. 스페어타이어처럼 이용당했어요

두 아이의 엄마 노소미 님의 이야기 

<온 더 레코드>는 심리상담서점 리지블루스를 찾은 내담자들 중 철저히 동의하신 분에 한해 상담 내용을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익명화를 거쳐 이야기를 공유하는 매거진입니다. 


강박증처럼 생각나는 기억들 


별이 엄마를 알게 된 건 약 4년 전이었어요. 

3년을 정말 단짝처럼 지냈고, 1년 정도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고 있네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때 일들만 생각하면 화가 나요. 

신경 안 쓰고 없었던 일인 것처럼 지나가는 날도 있지만, 놀이터 같은 데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일주일 넘게 지속되기도 해요.


거짓 공감에 속아서 단짝이 되었어요


육아와 살림에만 전념하는 전업주부예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별이 엄마와는 아이를 같은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알게 되었죠.

제 아이한테 의료사고가 났던 적이 있었는데, 그걸 마치 자신의 일처럼 눈물 흘리며 들어주던 별이 엄마에게 마음을 많이 주게 되었어요. 

저는 정말 제 아이들보다도 때로는 별이 엄마 아이를 위하기도 하며 지냈는데... 

언젠가부터 저는 별이 엄마가 편할 때 보모처럼 쓸 수 있는 스페어타이어 같은 존재가 되어있더군요. 


남의 아이 돌보다가 내 아이가 아파했던 나날들


둘째가 아토피가 심해요. 밤에 긁어대느라 아이도 힘들어하고, 그런 아이를 지켜보는 제 마음도 피멍이 들죠. 

아이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먹는 것을 가려서 줘요. 

간식 같은 것도 옥수수나 고구마 같은, 합성화학료나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먹이려고 하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간식을 준비하는 건 제가 오전에 꼭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예요. 


어느 날 별이 엄마가 자기 첫째를 치과에 보내야 하는데 같이 가달라고 하더군요. 

전 제 아이 간식 준비 때문에 시간이 안될 것 같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제 거절을 무시하고 계속 매달리더군요. 

가달라고, 자기 혼자 가기 너무 무섭다고...


어쩔 수 없이 같이 갔어요. 

저는 별이 엄마의 둘째를 케어하고, 별이 엄마는 치료받는 별이를 봤죠. 

아이들에 특화된 치과라 그런지 별이는 뽀로로를 보면서 치료를 아주 잘 받더군요. 

제가 왜 필요했는지 이해가 안 되었어요. 


별이 엄마 치과를 같이 가주느라 저는 어린이집에 아이들 데리러 가는 것도 늦어졌고, 간식도 준비를 못했어요.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아이한테 어쩔 수 없이 밖에서 만든 빵을 먹였고, 그날 밤은 고통스러운 밤이었죠. 


내가 필요할 때는 사라졌던 별이 엄마


이런 식의 패턴이 별이 엄마와는 반복되었어요. 

더 화나는 건, 제가 뭔가를 요청하면 별이 엄마는 참 매몰차게 잘 거절했다는 거예요. 


한 번은 제가 근처에 사는 원이 엄마랑 셋이 맥주를 마시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어요. 

처음에 원이 엄마랑 둘이서 얘기를 했는데, 나중에 별이 엄마에게 얘기를 하니 굉장히 난처하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더군요.

맥주는 무슨 맥주냐고, 우리가 그렇게 할 말이 많냐고...

나중에 원이 엄마 통해 들으니, 별이 엄마가 자기 아이들은 너무 어려서 밖에 나가서 맥주를 마시지 못한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고 하네요.

조만간도 아니고, 먼 훗날... 아이들 키워놓고 맥주 한 잔 하자는 답을 들었어요. 


더 웃긴 건 제가 제안했던 날 다음날 원이 엄마네와 별이 엄마네가 가족끼리 캠핑을 갔다는 거였어요. 

결국 캠핑 가는 날 전날 놀기가 불편했던 거죠.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하지, 저만 그렇게 이상한 사람 만들어야 했는지 이해가 안 되어요.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왔던 바보 같던 나


이런 식으로 별이 엄마는 자기가 필요할 때는 누구보다 애처롭게 저를 찾으면서, 제가 필요할 때는 어떻게든 거절하는 패턴이 반복되었어요.

저도 사람인데 화가 났죠.

별이 엄마 전화번호를 수신 거부한 적도 있었어요.


이렇게 해서는 안될 것 같아 얘기를 하자고 했어요.

아이들도 평소보다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고, 수신거부했던 게 미안해서 다과도 준비해서 별이 엄마네 집에 갔어요.

먼저 같이 배달음식을 시켜서 점심을 먹는데, 별이 엄마 시부모님한테 전화가 오더군요.

갑자기 저는 투명인간이 되었어요. 제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아무런 일정 없다고, 시부모님과 점심 약속을 잡더군요. 

전화를 끊고 그때서야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안하게 됐다면서 다음에 만나자고 했어요.


온갖 정이 떨어져서 박차듯이 그 자리를 떠났고, 그제야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챈 별이 엄마는 지금 화난 거냐고 물어보더군요. 

그러고 그날 저녁부터 온갖 전화와 문자 공세가 시작되었어요. 

한 달 정도 관계를 끊었었는데, "이제야 언니와 깊은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었는데...."라는 문자에 마음이 동해서 다시 관계를 이어나갔죠. 


하지만 저를 하찮게 여기는 태도는 유지되었어요.

그리고 몇 달 뒤, 어린이집 운영위원을 하는 파워 센 엄마가 하는 그룹에 어떻게 끼게 되더니, 저를 모르는 사람 취급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서서히 멀어지다가 지금은 완전히 멀어진 상태가 되었네요.


어릴 때 못 가졌던 단짝을 아직까지 바랐던 걸까요


저는 초등학교 때 6년간 왕따였어요.

어릴 때 갖지 못했던 단짝을 이 나이 들어서 갖고 싶었나 봐요.


별이 엄마도 저를 하찮게 여기긴 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저도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지 않았나 싶어요.

남한테 그런 대우받아도 괜찮다고... 


이제는 나를 소중히 여기고, 나를 사랑하면서 살고 싶어요.





소미 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혹시나 염려가 되어 적자면, 저나 제 글에 대한 댓글에는 대응을 하겠지만 소미 님에 대한 공격성 댓글은 무조건 삭제하겠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위로가 됩니다' 

매거진 <온 더 레코드> 5화 마침. 



글/ 김명선

- 수원에서 심리상담서점 <리지블루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인스타그램 @bookstore_lizzy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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