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디자이너 오소란 님의 이야기
<온 더 레코드>는 심리상담서점 리지블루스를 찾은 내담자들 중 철저히 동의하신 분에 한해 상담 내용을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익명화를 거쳐 이야기를 공유하는 매거진입니다.
우울증으로 처음 병원에 간 건 작년 12월이었어요.
그동안은 병이라고 인식도 못했어요.
디자이너 선배들 중에 똑똑하고, 멋있고, 자신감 있는 스타일이 많아요.
저만 자기관리를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자주 무단결근을 했고, 정해진 시간에 업무를 못 끝냈거든요.
예전부터 가끔 그랬던 것 같아요.
회피를 잘했죠.
다 미뤄놓고 피해버리는 방식이 제가 스트레스를 대하는 방식이에요.
제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잘 인식 안 하면서 살아왔어요.
남들보다 저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다가 한 번씩 터졌죠.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고, 회사에서는 죄인이었어요.
첫 번째 직장에서도 우울증 증세가 있었는데, 그때는 퇴사해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신입이었고, 다닌 지 1년도 안되었는데 향후 커리어를 생각했을 때 퇴사는 선택지가 아니었어요.
지금 회사는 제가 피해를 준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렇지만 저를 자르진 않아요.
잘리면 그만둬야지... 하고 생각해요.
지금 하는 일은 좋아해요. 할 수 있다면 계속하고 싶어요.
우울증 치료를 위해 정신과를 다니고 있어요.
약을 먹고 나니까 바로 좋아지더라고요. 생활할 수 있는 기운을 얻었어요.
그리고 회사에는 근무시간 조정을 요청했어요. 요즘 하루 6시간씩 근무해요.
상담 치료도 받고 있고, 운동도 하려고 노력하고, 책모임 같은 데 나가서 제 얘기를 하려고도 하고요.
나아지려고 참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스스로가 아픈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힘들어해도 나를 이해해주려고 해요.
너무 부담 갖지 않으려고 해요.
혼자 참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상황을 안 만들려고 해요.
제가 이렇게 노력하는 원동력은 직장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과 의무감이에요.
절 믿어주는 직장동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요.
현재 직장의 동료들은 기다려주고, 제가 사라졌다가 갑자기 나타났을 때도 "다음에는 그러지 마세요" 딱 한마디만 하고 말아요. 해고를 각오하고 나타났던 거라 좀 황당했죠.
불필요한 질문도 잘 안 해요. 대신 힘이 되는 그림이나 이야기를 공유해주기도 하고, 농담을 해서 저를 웃게 해요.
일은 일이고 회사는 회사지만, 전반적인 배려가 느껴진달까요.
언젠가 우울증이 다 나았구나-라고 느끼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계속 준비하고 있을 거예요.
내가 실수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시 그 상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할 거고, 지금은 괜찮아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 걱정이 되겠죠.
제가 생각하는 우울증의 원인은 자기비하예요.
내가 이것보다 더 잘해야 되는데 잘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스트레스받고 우울감이 심해져요.
제가 저를 좋아할 때는, 주변 사람들을 챙길 때에요.
최근에는 우울증 기미가 보이는 동료한테 상담소도 소개해주고 책도 추천해줬어요.
또, 이렇게 노력하면서 착실하게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스스로가 좋아요.
우울증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람은 상담 선생님과 친구들이에요.
답답한 제 얘기를 들어주고 같이 욕해주고, 재밌는 거 공유해주는 친구들이요.
남자 친구는 있는데 우울증을 잘 이해 못해요.
힘든 건 잘 극복해내면 된다-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타입이랄까요.
저 역시 큰 이해를 바라지는 않아요.
저는 모든 것에 대해 고민하는 걸 좋아해요.
제가 가진 자부심은, 저는 결국 답을 찾아내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어려움이 와도 언젠가는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울증에 완전히 지배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던 지난 2년간은 이런 생각을 안 했어요.
스스로가 너무 미웠으니까요.
이제는 자신감이 조금 생겼어요.
소란 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혹시나 염려가 되어 적자면, 저나 제 글에 대한 댓글에는 대응을 하겠지만 소란 님에 대한 공격성 댓글은 무조건 삭제하겠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위로가 됩니다'
매거진 <온 더 레코드> 6화 마침.
글/ 김명선
- 수원에서 심리상담서점 <리지블루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인스타그램 @bookstore_lizzy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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