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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Feb 19. 2018

제주도 이주에 대하여

브로드컬리,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 

1. 

독립서점의 주인이지만 독립출판물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리지블루스에 있는 책 중 독립출판물의 비중은 10%도 채 안된다. 

우리 책방에서 팔리는 책은 내가 추천하는 책을 사가는 비중이 꽤 높은데, 독립출판물 중에는 추천하고 싶은 책을 많이 못 만났다. 


그렇지만 매력있는 독립출판물은 분명 존재한다. 

일반 출판사가 책을 구성하는 관행을 깨고 '내 멋대로' 만들었는데 정말 멋있는 책들이 존재한다.

<로컬숍 연구 잡지 브로드컬리> 시리즈가 그 중 하나다. 

(비정기적으로 나오고, 2쇄부터는 책같은 형태를 띄어 잡지라고 부르는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본인들은 잡지라고 주장한다.)

 

2.

정말이지 정직한 인터뷰집이다. 

프롤로그도, 에필로그도 없다. 

흑백 프린트에, 철저히 폰트 중심으로 가독성 높게 편집했다. 


1호에서는 로컬 빵집을, 2-3호에서는 로컬 서점을, 4호에서는 제주 이주민들이 여는 7군데의 로컬숍을 인터뷰했다. 

이들의 인터뷰의 가장 큰 특징은 적나라한 숫자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자영업을 시작하기 전에 생기는 두려움은 대체로 얼마나 비용이 들어갈지 감을 못잡아서 생긴다. 

최근에 만난 후배는 내 서점의 오픈 비용 280만원(월세, 보증금, 권리금 제외)을 듣고는 '회사에서 보너스 한 번만 잘 받으면 열 수 있군요!'라는 놀라움을 표시했다. 


브로드컬리 4호를 읽고 나면 제주도 집의 월세, 카페/식당/서점 창업 비용, 월 매출 등을 대량 알 수 있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관련 주제의 자영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읽을 이유가 생긴다.(내가 3호를 망설임없이 산 이유이기도 하다) 


숫자 말고도 이 인터뷰집의 수려함은 적절한 인터뷰 대상의 선정, 딱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는 적절한 질문들 그리고 인간적이면서도 집요한 인터뷰 진행 등에서 드러난다.


많이 팔리고, 앞으로도 좋은 잡지 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3.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서 제주도 이주 후 자신만의 가게를 여는 것에 대하여 알게 된 건 다음과 같다. 


제주도살이 역시 서울살이 만큼이나 빡세다. 경쟁은 치열하고, 월세는 점점 비싸진다. 놀러오는 제주도가, 한달살이하는 제주도가, 진짜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제주도보다 낫다. 

관광객보다 단골 손님이 더 중요하다. (인터뷰한 이들이 단순히 돈 때문에 장사하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그럴 수 있다) 

제주도 이주를 말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을수록 좋고, 영원히 살겠다는 마음가짐이 없으면(=언제든지 다시 떠날 수도 있다) 더 좋다. 


4. 남기고 싶은 문장들 


1) 카페 그 곶 김기연, 조윤정 대표 (카페) 

김기연 : 상권 분석이 논리적일 것 같지만 어찌 보면 오히려 웃기는 작업이다. 건물 앞에 하루 종일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 수를 세고 연령대를 나눈다. 그럼 그게 정말로 의미가 있을까? 당신은 과연 평소에 다니던 길가의 카페만 들르나? - 21, 23페이지
김기연 : 35평 인테리어 공사와 커피 장비, 베이커리 설비까지 대략 7천만원 들었다. 아무래도 카페는 다른 업종에 비해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에스프레소 머신만 해도 1천만원 내외가 되니까. - 23페이지
(...) 오픈부터 마감까지 책 한권을 다 읽고 나가는 손님도 가끔 있다. 그런 날은 정말이지 뿌듯하다.
- 책 한 권을 다 읽고 가는 손님은 민폐 아닌가?
조윤정 : 제주도에 갈 곳이 얼마나 많은데? 소중한 휴가 내서 겨우 며칠 왔을 텐데, 하루를 여기서 보내준 게 아닌가? (...) 관광지의 한계일 수 있겠으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시간을 증명하는 공간으로 소비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순간들이 있다. 알려진 메뉴 몽땅 시켜 놓고, 사진만 찍고 가버린다. 한 입 먹고 버리는 거다. - 43페이지
- 이주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윤정 : 여행으로 오는 게 최고다(웃음). 제주도에 오면 숨만 쉬어도 행복할 것만 같겠지만, 삶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환상은 유효하지 않다. 은퇴하고 휴양으로 오는 거면 모를까, 생계를 꾸려야 하는 처지에서 현실은 어디까지 현실이다. - 63페이지


2) 바굥식당 박용 대표 (식당) 

- 제주도는 어쩌다가 오게 됐나? 
사람들 만나기가 싫었다. 아는 사람 없는 데로 왔다. 
- 사람들을 만나기가 왜 싫었나?
대학을 자퇴한 이후로 친구들과 공감대가 많지 않았다. 다들 졸업과 취업 얘기하는데 나로서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 나는 왠지 잘못 살고 있는 것만 같고, 매번 친구들과 술자리가 내 인생의 불안함을 확인하는 자리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 81페이지
- 장기적인 계획은 없나?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 애써 고민하지 않는다. 고민하면 뭐가 달라질까? 고민으로 해결될 문제라면 애초에 큰 문제도 아닐 거다. - 129페이지


3) 제주유랑 김대민 대표 (푸드트럭) 

가장 큰 아쉬움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없었다. 보고, 듣고, 만져봤어야 좋아하고 싫어하는 기호가 생길 텐데, 듣도 보도 못한 게 너무 많았다. 돈을 벌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데, 정작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모르겠더라. 돈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거지. - 195페이지
재료가 부족하면 아쉽고 말지만, 재료가 남으면 양심 버리기가 쉽다. 돈 주고 산 재료를 버리기가 싫으니까,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된다. 그러니 처음부터 재고를 아예 만들지 않는 편이 좋다. - 215페이지
초심이 변할 수 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한다. 상황이 변하는데 사람의 마음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위험한 일 아닐까. 오히려 꾸준함에 대한 집착이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다고 본다. (...)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변화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 또한 못지않게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 230~231페이지
객관적인 정보를 원한다면 예능이 아니라 다큐를 봐야지. 이주를 소재로 다루는 예능에서, 환상을 보여주지 무얼 보여주겠나? - 239페이지 


4) 엠에이치케이 김민호 대표 (카페)

- 직접 공사한 걸 후회하나?
과정 중엔 솔직히 후회가 많았다. 그래도 끝내 놓고 보니 잘한 결정인 거 같다. 돈 주고도 못 배울 걸 많이 배웠고, 무엇보다 공간의 이면을 보게 됐다. 남이 준비한 공간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기보다, 저마다의 노력에 박수를 먼저 보내게 되는 거 같다. - 275페이지
놀러 오는 제주도는 놀러 오니 좋은 거다. 서울도 생계를 꾸리려니 힘든 거지, 놀러 가보면 진짜 좋은 곳이다. - 297페이지


5) 북촌9길빵 김승희 대표 (빵집) 

조직에서 겪던 경쟁에 비하면 빵집은 훨씬 해볼 만하다. 개인의 영역에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과를 감당할 수 있다. 나 하나 망하면 되는 거다. 인간적인 스케일의 경쟁이라 할까? 실패가 허용되는 삶에 감사하다. - 321페이지
- 장사가 안되면 우울하지 않나?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다. 삶이란 게 일희일비 사는 게 아닐까. 일희일비 않겠다는 마음이 오히려 불행이고 집착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사가 안되면 물론 우울하지만, 우울한 날도 그것대로 좋다. - 331페이지
내가 눈을 뜨는 순간 세상이 시작되는 듯한 새벽의 느낌도 좋다. 도시에선 제아무리 아침 일찍 일어나도 세상이 한발 앞서 돌아가는 모습이, 눈으로 귀로 느껴지지 않나. 무엇에도 쫓기지 않고 차분하게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는 제주도의 새벽 시간이 참 좋다. - 351페이지


6) 미래책방 이나현 대표 (책방)

주어진 유동인구와 관계없이, 공간 자체가 매력적이되면 손님은 찾아올 거라 판단했다. 입지보다 공간이 중요하다고 본다. 사람들의 여행 패턴이 이미 그렇다. 선을 그리면서 둘러 보기보다, 취향에 들어맞는 개별 공간을 점을 찍듯 이동하며 여행한다. -386페이지 


*이 글의 인용구는 모두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 원했던 삶의 방식을 일궜는가?>(브로드컬리 편집부, 브로드컬리)에서 인용했습니다. 


<끝> 



글/ 김명선

- 수원에서 심리상담서점 <리지블루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인스타그램 @bookstore_lizzy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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