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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Lizzy Feb 09. 2018

책방의 처음과 마지막에 대하여

송은정,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2016년 8월 31일 수요일. 
여행책방 일단멈춤이 문을 닫았다. 

나는 실패한 것일까.


1.

영화같은 인트로로 책은 시작된다.

여행책방 <일단멈춤>은 2014년 11월 29일에 문을 열어 2016년 8월 31일에 문을 닫았다. 

꼬박 1년 9개월, 21개월의 시간 동안 송은정 작가가 온몸으로 경험했던 책방에 대한 이야기가 담담하게 담겨있다. 


처음에는 마냥 재밌게 읽었다.

서점 이름을 짓고, 가게 위치를 찾아다니는 것,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 등...

하지만 점점 노동시간만큼 보상을 되돌려 주지 않는 책방 운영의 야속함이 무겁게 다가왔다. 

후반부는 마음으로 울면서 읽었다.

다 읽고는 책을 꼭 안아주었다. 


남사스럽지만, 정말이다.

책을 직접 안아준 건 아마 처음인 것 같다. 


책방 운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만한 책이다.

하지만 당신이 책방 주인이라면... 어쩌면 이 책은 예언서다. 


2. #용기

퇴사 이후 이직이 아닌 독립을 선택한 나를 두고 주변에서는 한결같이 '용기'에 관해 이야기했다. 너의 용기 있는 결정을 응원하다는 격려의 메시지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물론 그 메시지 속에는 미처 말하지 못한 우려와 안타까움도 담겨 있었을 테다. 모든 걱정거리는 용기라는 멋진 포장지로 적당히 감춰졌다. - 17페이지

나도 책방을 열 때 '대단하다'는 얘기를 꽤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면 이게 꼭 대단한 결정인지, 잘 모르겠다.

위험도가 높아서 대단한 건가? 서점 운영은 거의 확실하게 돈이 안된다. 그리고 초기 투자비용도 안 들이려면 안 들일 수 있다.(나는 오픈하는데 280만 원을 썼다. 가구 구입, 부동산 수수료를 포함한 금액이다) 

돈이 안될 걸 뻔히 알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기회비용을 버리면서도 해보고 싶은 일을 해서 대단한 건가? 

그러면 대단한 거긴 한데... 여전히 뭔가 석연치 않다.


3. #책방이름짓기

투표 결과는 기대를 크게 벗어났다. 내 맘이 꼭 네 맘 같진 않다는 것을 절감한 순간이었다. 지인들은 '프롬, 투'에 호감을 보였다. (...) 쭈뼛대던 나는 결국 일단멈춤을 향한 애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의견을 되물었다. 안타깝게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준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차라리 묻지 않는 편이 나을 뻔했다. - 25페이지

책방을 계획하면서 '리지블루스'라는 이름이 막연히 좋았다. 논리적으로는 별로 좋은 이름이 아니었다. 책방 콘셉트가 드러나지 않는 모호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쉽게 기억되는 이름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냥 나는 이 이름이 좋았다. 그래서 별로 주위에 물어보지 않았다. 지금 돌아봐도 이건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4. #좋아요와팔로워의덧없음

온라인상에서 '좋아요'를 누르는 마음과 시간을 내 책방을 찾는 행동이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44페이지

책방을 연 지 3달째. 리지블루스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500명이 좀 넘는다. 지금은 성장속도가 많이 둔화되었지만, 첫 달에 거의 300명을 찍으면서 급성장했다. 그렇지만 온라인상의 응원은 대체로 온라인으로 끝난다. 팔로워의 10% 정도가 좋아요를 누르는 것 같고, 5% 보다 적은 수의 사람이 실제로 찾아오는 것 같다. 오프라인 손님 수만 중요하게 생각하면 온라인 지표는 참 덧없다. 하지만 온라인 지표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냥... 기분이 좋다, 아직까지는. 


5. #재고떠안기

최후의 순간까지 제 주인을 만나지 못한 책들이 비좁은 내 방 책장으로 옮겨지는 상황에서도 겸허히 웃을 수 있을까. 아직까지 대답은 예스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매출이 보장되는 책을 일단멈춤에 들여놓는 데 골몰했을 것이다. 판매가 저조할 게 눈에 선한 책들을 내 욕심껏 사들일 수 있었던 것 역시 함께 집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다진 덕분이었다. - 60페이지

책 매입 방식은 선매입과 위탁 매입,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선매입은 돈을 미리 주고 책을 사 오는 것이고, 위탁 매입은 책을 일단 받아온 뒤 책이 팔릴 경우 정산을 하는 것이다. 서점 입장에서는 위탁 매입이 더 안전한 편이다. 재고 떠맡기의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이건 폐업의 경우에 그런 것이고, 서점이 계속 유지된다면 책 공간이 점점 부족해지기 때문에 위탁 매입도 재고의 부담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독립출판물은 대개 위탁 매입이 가능한 경우가 많지만, 기성 출판물을 작은 책방에서 들여올 때는 선매입 방식을 취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책을 매입할 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라야 2권, 나도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은 1권만 주문한다. 언제 책방 문을 닫을지 모르고, 책방 문을 닫는다면 이 책들은 대부분 우리 집으로 같이 가야 할 테니까. 


6. #화장실

간혹 책방에서 화장실을 찾는 손님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도보 5분 거리의 이대역으로 가시면 됩니다"라고 태연히 안내했다. (...) 사실 화장실이 없지는 않다. (...) 주인 할아버지가 처음 이곳을 보여줬을 때 속으로 크게 실망했다. 곳곳에 늘어진 거미줄은 그렇다 쳐도 바가지로 물을 퍼 용변을 흘려보내야 하는 건 도무지 참기 어려웠다. - 82페이지

나는 책방 위치를 찾으면서 부동산을 딱 두 곳 찾아갔다. 네이버 부동산에서 매물 검색은 많이 했지만, 어차피 내 조건에 맞는 매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책방을 빨리 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기다리고 싶지도 않았다. 최종 후보는 두 곳 있었는데, 두 곳 모두 화장실이 구렸다. 둘 다 물 내리는 방식이 호스로 물을 흘려보내야 하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웬만하면 참았다가 저녁 시간이 되어서 집에 갈 때 화장실을 갔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집이 있었지만, 화장실 한 번 가는데 왕복 20분은 너무 멀었다. 

나는 그냥 이 화장실에 적응했다. 안타까운 건 밖에 있어서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는 얼어서 못 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XX플라자 화장실을 몰래 쓴다. 손님들에게도 그곳을 안내해준다. 불편하다. 날씨가 빨리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화장실은 정말 중요한 문제다.


7. #이대로도괜찮을까

도전과 다름없던 책방 운영이 어느덧 생활의 일부가 되자 나는 또다시 저곳을 그리워했다.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상상 속의 그곳을. - 125페이지


책방을 준비하며 페인트칠을 할 때는 빨리 책방 구색을 갖춰 안정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안정이 되니 슬금슬금 다른 흥밋거리를 찾아 나서고 싶어 진다. 처음 독서모임을 열 때는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효율적으로 준비할 궁리를 한다. 

고작 3개월도 안되어 그런지, 아직은 이대로도 괜찮다. 하지만 동시에 '이대로'를 조금씩 더 좋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내가 찾은 방법들이 서점에 집중하는 방향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점에 매여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서점을 닫는 시간이 늘어난다. 실체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미안해진다. 


이렇게 서점을 내 맘대로 운영해도 괜찮을까.

고민은 계속된다. 


*이 글의 모든 인용구는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송은정, 효형출판)에서 인용했습니다.


<끝>



글/ 김명선

- 수원에서 심리상담서점 <리지블루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인스타그램 @bookstore_lizzy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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