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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Oct 30. 2016

불행대비에 대한 이야기

언니네 이발관,  <인생은 금물>

1.

지난 주에 열렸던 2016 그랜드민트페스티벌(GMF)에서 언니네이발관의 공연을 보았다.

리더이자 보컬, 그리고 수필집을 2권이나 발표한 작가이기도 한 이석원의 가사는 분명한 메시지와 완성된 구조를 가진 시(詩)이자 이야기다.

수변공원의 원형극장에서 그의 노래를 듣는 건 음유시인의 이야기를 듣는 경험을 주었다. 중간중간 노래를 만들던 시기의 상황이나,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에 대해서 말해주었기 때문에 익숙한 노래의 가사도 다시금 곱씹어 보게 되었다.

그렇게 곱씹다 보니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 노래가 있는데, 8번 트랙인 <인생은 금물>이다.


2.

언젠가 우리
별이 되어 사라지겠죠
모두의 맘이 아파올걸 나는 알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그렇게 정해져 있는걸
세상을 만든 이에겐 아무 일도 아닐 테니까

인생은 금물 함부로 태어나지는 마
먼저 나온 사람의 말이 사랑 없는 재미없는 생을 살거나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네


이 노래가 수록된 5집 '보통의 존재'에서 수록곡의 인물은 대체로 작고, 평범하며, 세상에 영향을 주기 힘든 '보통의 존재'들이다. 이 노래의 시작 역시 우리는 모두 언젠가 사라지고, 그것은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운명이며, 저 위의 누군가에겐 하찮은 일이라는 전제로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태어나지 말라고, 괜히 태어나서 어떻게 비명횡사할지 모른다는 무서운 이야기를 참 산뜻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3.

그대는 나의 별이 되어준다 했나요
나의 긴 하루 책임질 수 있다고 했죠
그런데 어두워져도 별은 왜 뜨지 않을까요
한번 더 말해줄래요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사랑도 금물 함부로 빠져들지는 마
먼저 해본 사람의 말이 자유 없는 재미없는 생을 살거나
죽을 만큼 괴로울지도 몰라


길고 짧음의 시간차가 있을 뿐, 살다보면 누구나 인생의 허무와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공허함을 채워주는 가장 보편적인 것은 사랑이다.

나를 사랑하는 존재는 나의 공허함을 비춰주는 별이 되어주겠다고, 외롭고 재미없는 하루도 재밌게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막상 나의 별은 필요할 때 뜨지 않거나, 너무 오래 떠있어 내가 혼자 있을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기도 한다.


4.

인생은 금물이고, 사랑도 금물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나도 님도 그 누구도 아무도 모른다.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좋은 일은 반갑지만, 갑자기 찾아오는 불행은 삶을 파괴시켜버리기도 한다.


그 불행이 너무 두려워서, 언젠가부터 불행을 예상하고 대비하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 행동은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이 아프게 될 것을 대비해 돈을 저금하거나 보험에 드는 실질적인 준비일 때도 있지만,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나쁜 결과를 상상하는 소모적인 행동일 때도 있다.  

가장 안타까운 불행 대비는 사람에게 받을 상처에 대한 대비이다. 저 사람이 나를 언제 버릴지 몰라서, 앞으로는 웃으면서 뒤로는 욕할지 몰라서, 쉽게 을 주지 못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뭔가를 기대하게 되고, 기대는 실망을 가져온다.

실망할 바에야 좋아하지 말자고, 애초부터 실망할 가능성을 없애 버리기도 한다.

많은 순간 편하지만, 많은 즐거움도 사라진다.


5.

살아간다는 것은
별이 되어가는 것이라네

이번 GMF 공연에서 이석원은 이 노래의 주제가 이 구절에 있다고 했다.

삶의 의미는 누군가의 어둠을 비춰주는 별이 되어주는 것에 있다고.

상처받을 가능성이 있어도 사랑하고

재미없고 괴로운 일이 가득할 가능성이 높아도 희망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보라고.


하지 말라고 실컷 경고하다가 '그래도 넌 결국 하게 되어 있어~'라고 메롱을 날리는 느낌이면서,

동시에 불행에 상처받을 걸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같기도 하다.


그의 위로를 들으며 문득, 나의 불행 대비 레벨을 한 단계 낮춰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과연 불행이 준비한다고 정말 준비가 되는 건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6.

요즘의 세상을 보면 개인의 인생과 사랑은 물론,

나라 역시 금물이다.

믿기지 않는 일들이 사실로 밝혀지고, 애초에도 바닥이었던 믿음은 지하까지 파내야 할 정도로 내려앉는다.


친구와 세상을 한탄하면서,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가 그동안 실망을 너무 많이 해서, 어느 정도 수준의 뒤통수와 부패는 그 누가 주인공이어도 생기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웬만한 일은 늘상 있는 일이고 화도 나지 않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고.


7.

힘든 일이지만, 분노의 역치를 높히 두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을 한다.

분노할 일이 너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하는 것에 지쳐서는 안된다고,

그리고 언젠가 나타날 합리적이고 온전한 정신의 '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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