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모예스, <미 비포 유>
(아주 중요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남자 주인공 윌 트레이너는 잘생겼고, 돈 많고, 능력 좋은, 소위 말하는 '잘난 놈'이었다.
그렇다고 신데렐라 스토리의 백마탄 왕자라기 보다는, 자기 급에 맞는 예쁜 여자를 만나고 세계를 지내면서 누릴 수 있는 온갖 좋은 구경과 경험을 다 하면서 살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오는 출근길 오토바이에 치여 사지마비 환자가 되었다.
첫 1년은 불굴의 의지로 재활훈련을 받지만 겨우 손가락 몇 개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이 된다.
그는 회복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스위스의 디그니타스 병원에서 스스로 선택한 죽음을 맞이하려 한다.
물론 그의 부모님은 반대한다.
하지만 윌은 그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튀어나온 못을 향해 휠체어를 앞뒤로 움직이는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피가 철철 흐르는 팔목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간절히 죽으려하는 사람을 막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결국 윌은 부모님에게 6개월의 유예 기간 후 생을 마감하기로 스스로 선택한다.
2.
윌의 어머니 카밀라 트레이너는 간병인을 고용한다. 이미 네이선이라는 의료 전문성을 지닌 남자를 고용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윌이 자살 시도를 하지 못하게 감시하는 동시에 윌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간병인으로, 6년간 카페에서 충실히 일하다 카페의 폐업과 함께 갑작스럽게 해고를 당했으며, 부모님과 할아버지, 미혼모의 누이동생과 조카 토마스까지 챙겨야 하는 - 요약해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 - 루이자 클라크가 고용된다.
루이자는 무례한 태도의 윌과 어딘지 모르게 위압감이 있는 카밀라 트레이너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수십번도 더 이 일을 그만두고 싶지만, 이 정도 급여의 다른 대안이 없기에, 그리고 그녀는 그 돈이 꼭 필요하기에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어느 날 여느때와 다름없는 윌의 무례한 말에 화가 난 루이자는 "개망나니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잖아요"라고 소리치고, 넌지시 해고할 수 있다는 윌의 말에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당신이 저를 고용한 건 아니잖아요. 전 당신 어머니가 고용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어머니께서 이젠 오지 말라고 하지 않는 이상 전 절대 안 나가요.
특별히 그쪽 걱정이 돼서도 아니고, 이 멍청한 일이 좋아서도 아니고, 그쪽 인생을 좌지우지하고 싶어서도 아니에요.
그냥 돈이 필요해서에요."
3.
신데렐라 소재의 단골 소재인 '내 뺨을 때린 건 니가 처음이야'와 같이,
장애인이 된 후로 자신이 아무리 안하무인으로 행동해도 모두가 참아주었던 윌은 이후로 루이자에게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요즘은 어떤 일상을 살아왔는지 등.
그러면서 그녀가 윌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평생을 시골 촌뜨기로의 삶만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된다.
자막이 있는 외국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런던에도 한 번 가보지 않는 등...
윌은 그런 루이자에게 아주 조금의 조롱과 점점 커지는 애정을 담아, 새로운 경험의 세계로 안내하며 둘은 친구가 되어간다.
4.
어느 날 루이자는 카밀라 트레이너가 윌의 동생과 이야기하는 것을 듣다가 윌의 6개월 계획을 알게 된다.
황망한 마음도 잠시, 루이자는 윌이 생의 의지를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한 계획을 짠다.
어떤 계획은 장애인에게 불친절한 여러가지 환경들로 끔찍한 실패로 돌아가고,
또 어떤 계획은 갑작스럽게 몸이 안 좋아진 윌 때문에 불가능해진다.
수많은 난관을 이겨내고, 루이자는 윌과 환상과도 같은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난 우리가 해낼 수 있다는 걸 알아요. 당신이 선택했을 만한 길은 아니지만, 내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걸 난 알아요. 그리고 나 이 말만은 할 수 있어요. 당신 덕분에... 덕분에 내가 꿈꿔보지도 못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당신이 아무리 지독하게 못되게 굴어도, 나 당신과 함께 있으면 행복해요. 당신은 자신이 초라하게 쭈그러들었다고 느낄지 몰라도, 난 세상 그 누구보다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일반적인 로맨스 소설이라면 여기서 윌이 눈물을 흘리며 루이자의 사랑에 감동해 6개월 계획 따위 던져버리고 그녀의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야겠지만, 우리의 윌 터너는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대답한다.
자신은 순응하는 부류의 남자가 아니라고, 더이상 끔찍한 폐렴도 지겨운 휠체어 신세도 견뎌낼 수 없다고. 당신이 날 정말 사랑한다면 내가 자살하러 가는 스위스에 같이 가달라고. 그렇게 엄청난 부탁을 하고, 루이자에게 "엿이나 먹어"라는 대답을 듣는다.
5.
윌은 예정대로 스위스에 가고, 우여곡절 끝에 루이자도 그의 마지막을 함께 한다.
뭐, 어찌 됐든 윌이 가는 마지막은 아름다웠다.
이야기는 그가 생전에 계획한 파리 여행을 떠난 루이자가 그의 편지를 읽어 보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 편지 안에서 윌은 담담하게 그의 사랑을 전한다.
"이 돈이 당신 인생을 아무리 바꾸어놓더라도, 내 인생은 당신으로 인해 훨씬 더 많이 바뀌었다는 걸 잊지 말아요.
내 생각은 너무 자주 하지 말아요. 당신이 감상에 빠져 질질 짜는 건 생각하기 싫어요.
그냥 잘 살아요. 그냥 살아요."
참 역설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살아달라는 여자를 냅두고 죽었으면서, 그 여자한테 마지막으로 보내는 편지의 마지막은 '그냥 살라'니.
이렇게 뻔뻔하고 이기적일수가 있나.
6.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윌 트레이너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했든지 간에, 소설 속에서 묘사되었던 윌에게 그것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비록 그게 얼마나 이기적인 선택이든 간에, 그는 그 자신을 위한 최선을 택했다.
그가 루이자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마지막 편지 속에서 그가 전하는 '그냥 살라'는 말은 차마 사랑한다는 말은 할 수 없었던 남자의 고백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루이자를 더 사랑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는 그 자신을 가장 사랑했다.
7.
세상에는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기적으로 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글을 종종 보곤 한다.
분명 누군가는 조금 더 이기적으로 사는 게 더 나아보인다. 다만 대부분 그 메시지에 반응하는 사람들은 원래도 이기적으로 살던 사람들이라는 게 문제이지만.
잘 모르겠는 건, 어디까지 이기적이고 뻔뻔해도 되는 건지, 그 경계이다.
결국 최후의 선택은 본인을 위한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그 선택이 너무 많은 사람을 아프게 한다면?
요즘 토요일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고 있는 그분처럼 말이다.
모르겠다.
이 소설은 마지막 남자 주인공의 선택이 팔할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고, 나는 그의 결정에 동의하는데, 왜 이렇게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글 속 모든 인용구는 <미 비포 유>(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살림 출판)에서 인용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