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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Dec 11. 2016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

허5파6, <여중생A>

1.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 밥을 먹는 건 외롭지 않다.

아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 밥을 먹는 건 외롭다.


왕따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혼자 있는 것 자체를 못 견디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있는데 나만 혼자 있는 느낌을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2.

네이버 웹툰 <여중생A>의 주인공 미래는 언뜻 보면 평범한, 영화나 드라마 대본 속에서는 여중생1이나 여중생A 쯤으로 표기될 여자 중학생이지만, 사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에 폭언과 폭력을 일삼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로부터 미래를 지켜주지 못한다.

돈이 없어서 학교 준비물을 못 가져가기 일쑤고, 그 나이 또래 엄마의 챙김을 받지 못해 깔끔하게 다니지도 못한다.


미래는 특별하다.

안타까운 점은, 슬프게 특별한 학생이라는 점이다.


그런 미래에게도 친구가 있었지만 그 친구는 미래를 동정했다. 친구들 앞에서 미래의 안 좋은 가정환경을 까발리고, 친구가 아닌 적선의 대상으로 삼았다. 가난해도 자존심은 있던 미래는 이를 참지 않았다. 미래의 자존심을 이해하기에 중학생들은 너무 어렸고, 평범한 그들은 미래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했다.


미래는 동정을 받느니 혼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순탄하지는 않았다. 대놓고 괴롭히는 애도 있었고, 도와주는 척 이상하게 집착하고 질투하는 애도 있었다.


학교에서 미래가 슬퍼하는 것들은 언뜻 보면 사소하다.

소풍을 갈 때는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을 사람이 없는 것을 걱정한다.

머리에서 냄새가 난다는 동급생의 말에 화장실에서 눈물을 뚝뚝 흘릴 만큼 수치스러워한다.

스스로가 학교라는 먹이사슬 체계에서 어떤 계층으로 존재하는지 알기 때문에,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분수를 넘어서지는 않았는지 걱정하고 괴로워한다.


학교 생활이 힘들어 학교를 벗어나 보기도 하지만, 학교 밖 아이들은 "야생의 개처럼" 무서웠다.

첫사랑 남자아이에게는 고백 한 번 제대로 못한 채 배신당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학교 밖에서도 편히 쉴 수 없었던 미래가 유일하게 마음을 허락한 곳은 온라인 게임 "원더링 월드" 속 공간이었다.

이러한 미래의 심리는 흑백톤의 현실과, 컬러톤의 게임 속 세상으로 극명하게 대조되어 표현된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 역시 미래가 차갑고 냉혹한 현실을 견뎌낼 만큼의 힘을 주지는 못했다. 지쳐버린 미래는 현실과의 이별을 계획한다. 학교에서 겉도는, 아빠한테 맞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자신에게는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다. 학교는 지옥이지만 자신은 거기말고는 갈 곳이 없는 빌어먹을 중3일 뿐이기에, 미래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자살이라고 생각한다.


3.

그렇게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하던 어느 날, 사회 시간에서 우연히 모둠이 된 아이들 중 한 명이 미래를 구원한다.

그 아이는 뭔가 대단한 것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어렵지 않은 호의를 베풀고, 미래를 동정해야 할 존재도 무시해야 할 존재로도 보지 않았다.

무던하고 자연스럽게 미래에게 곁을 내주었다.


그 무던함이 얼마나 미래를 기쁘게 했는지 그 아이는 알까.

그렇게 미래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아이들이 생겼다.

더 이상 체육시간에 혼자 나가는 것을, 점심시간에 혼자 밥 먹는 것을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이를 넘어서서 부당하게 따돌림당하는 누군가를 도와주기도 한다.


4.

미래의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 결말이 어떻게 날지, 미래의 삶이 앞으로 더 나아질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말이지 많은 독자가, 제발 누군가가 미래의 거지 같은 인생을 구원하길 바랐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구원은 고작 평범한 한 사람이었다.

안경쓰고 통통한 만화를 잘 그리는 한 소녀였다.


5.

누구나 누군가에게 한 사람이 되어줄 수는 없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군가에게 한 사람이 되어주는 것은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노력만으로는 일주일에 적어도 30시간, 많게는 75시간(고등학교의 8-11 야자시간 기준)을 같이 보내야 하는 학창 시절의 한 사람이 되어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40명 남짓 되는 사람 중에 나의 한 사람이 없는 것은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만큼의 운이 없던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글은 그 한 사람을 만나지 못해 3년간 외로웠던 고등학생 시절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자신이 운이 없는 게 아니라 이상한 게 아닌지 자책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보내는 위로이다.


물론 당신이 정말 이상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타인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당신을 의도적으로 외롭게 만드는 집단 역시 이상하고, 비겁하다.


당신이 타인을 눈물 흘리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의 한 사람은 분명 어딘가 존재한다.

그저 그 교실 안에서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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