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아이 엄마 주원향 님의 이야기
<온 더 레코드>는 심리상담서점 리지블루스를 찾은 내담자들 중 철저히 동의하신 분에 한해 상담 내용을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익명화를 거쳐 이야기를 공유하는 매거진입니다.
저는 4살 아이의 엄마예요.
그런데 술을 좋아해요.
최근에도 콘서트에 갔다가 친구랑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택시를 타고 돌아왔어요.
신랑은 당연히 싫어하죠.
3년 연애했고, 결혼한 지는 4년 정도 되었어요.
술 때문에 신랑이랑 싸운 적이 많아요.
신랑은 화가 나면 입을 닫는 스타일이에요.
저는 그런 집에 함께 있는 게 숨이 막혀요.
제가 잘못한 건 알아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에 실패하면서 우울증이 왔어요.
고향은 지방인데, 학교는 서울에서 다녔어요.
부모님이 뒷바라지해주시느라 힘들어하셨죠.
겨우 계약직으로 취직해서 6개월 일했는데, 서울 생활을 유지하는 게 돈이 더 많이 들더라고요.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학원 강사일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직도 직업에 대한 열등감으로 남네요.
노력해봤자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화가 나고 기분이 나빠지면 술로 풀어요.
종교도 가지려고 노력해보고, 책도 읽어봤지만 일시적이에요.
살다 보면 무너져요.
신랑은 가끔 저를 술 쓰레기처럼 쳐다봐요.
직업에 대한 열등감, 노력을 충분히 못했다는 느낌을 해소하고 싶어서 늦었지만 토익책을 샀어요.
제가 영문학과를 나왔는데, 사실 원하던 학교도 과도 아니었어요.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재수하고 싶어서 방황을 했죠.
영어 잘하는 사람은 너무 많았고, 다들 어학연수 가는데 저는 어학연수를 갈 형편이 안되었어요.
그런데 영문학과 나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다 영어 잘하는 사람으로 봐요.
실제로는 토익 900점도 못 넘는데요.
결혼을 하고 신랑 직장 때문에 경기도로 이사 왔어요.
내 낮아진 자존감을 새로운 일을 하면서 높이고 싶은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일을 못 구하고 있어요.
요즘 신랑과의 사이가 안 좋아요.
올해 초 아버님이 돌아가신 일도 있었고, 이사 가야 하는데 집이 안 팔리거든요.
신랑이나 저나 예민해지다 보니, 싸움이 잦아졌어요.
신랑은 대기업에 다니지만, 집안 형편이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전셋집으로 겨우 시작했죠.
이른 나이에 결혼한 편인데, 이후에 결혼한 친구들이 더 좋은 조건으로 시집가는 걸 보면서 부러웠어요.
저희 시댁은 차도 없어요.
어디 가서 말하기도 쪽팔려요 가끔.
시누이랑은 동갑인데, 부자 남편이랑 결혼했어요.
딱히 걱정도 별로 없는 성격이 부러워요.
결혼하기 전으로 돌려놓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예쁘고 당당했던 그때로 말이죠.
저는 내향성과 외향성을 다 가지고 있어요.
조용히 혼자서 책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사람들이랑 술 마시면서 신나게 노는 것도 좋아하죠.
아가씨일 때는 그런 저의 양면성이 장점이 되었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외향적인 면, 술 좋아하는 면은 흠이 되었어요.
아이한테 뭘 해주는 것에 딱히 열정이 없어요.
반방목형으로 키우는데, 엄마로서 죄책감이 들기도 해요.
한 번씩 사는 게 재미없는 날이 생길 때마다,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열등감 없이 재미있게 살고 싶은데... 성격상 성취욕이 너무 강해요.
때로는 이런 제 성향 자체가 싫어요.
그냥 걱정 없이, 맘 편하게 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원향 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혹시나 염려가 되어 적자면, 저나 제 글에 대한 댓글에는 대응을 하겠지만 원향 님에 대한 공격성 댓글은 무조건 삭제하겠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위로가 됩니다'
매거진 <온 더 레코드> 11화 마침.
글/ 김명선
- 수원에서 심리상담서점 <리지블루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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