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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Nov 25. 2016

우울증 환자의 연인으로 지내는 방법

고마움을 전하며

1.

겨울이 왔고, 우울증도 왔다.

이번이 네 번째다.

이번 겨울의 우울증은 어느 월요일,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증상으로 시작되었다.

연달아 이틀을 출근하지 못했고, 나머지 3일 중 이틀도 매우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겨우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전주에 갑자기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는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큰 일은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만큼만 스트레스받고, 슬플 만큼만 슬프고, 아플 만큼만 아프면 정상이다.

우울증은 그 범위를 넘어서 스트레스받고,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진다.

기본적인 일 - 침대에서 벗어나는 일, 씻는 일, 집 문을 나서는 일, 물을 마시는 일 등 -을 하기가 힘들다.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하면, 따뜻한 분들은 어떻게든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주기 위해 자신에게 있었던 가장 무기력했던 또는 좌절했던 순간을 나누어주지만, 때로는 그런 위로가 나를 더 작아지게 만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좌절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주저앉기 때문에, 우울증 환자다.


2.

그리고 이런 나를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이가 있다.

그는 게임을 좋아하고, 세상을 별다른 걱정 없이 살아간다.

그는 분명 나의 우울증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우울증일 때 어떤 증상이 생기는지, 그리고 나에게 어떤 존재로 곁에 있어야 하는지는 잘 안다.


3.

그와 사귀기 시작하고 2주째에 두 번째 우울증이 찾아왔다.

오랜만에 찾아온 사랑에 무척 행복했던 때라 정말이지 당황스러웠고, 더없이 좌절스러웠다.

아, 정말 말도 안 되는 때에도 찾아오는구나,라고 생각했다.


2주 동안 발랄한 모습만 보던 나의 모습에 그는 정말 당황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최대한 나를 웃겨주려 노력했다.

당황한 게 티가 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연한 척하는 게 보였다.


때로 약속을 깨고, 때로 데이트 중에 갑자기 돌아가고 싶다고 해도 그는 탓하지 않고 나를 보내줬다.

물론 그도 사람인지라 짜증한 번 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전반적으로 그는 보살이었다.

그 역시 자신의 관점으로 내 우울증을 판단하려 시도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내가 그러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곧 학습해나갔다.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우울증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는 이제 내가 출근하지 못하는 것에 놀라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저녁에 우리 동네로 놀러 와서 차 한잔을 마시고 간다.


저번 주, 오후 두 시에 출근하면서 자괴감에 절어있는 나에게,


지금 충분히 힘내고 있고 노력하고 있다고,

충분히 멋있으니깐, 자책하거나 그러지 말라고,

난 노력하는 네가 좋다고,


그렇게 그 순간 가장 필요한 말을 해주었다.


4.

이렇게 나름 완벽하게(?) 우울증에 걸린 여자의 남자 친구 역할을 소화하고 있는 그가 가장 힘들다고 느낄 때는,

그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느낄 때라고 한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때로는 정말로 그러하다.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처럼,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은 존재한다.


그냥 나만이 오롯이 견뎌야 하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터널을 나왔을 때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앞으로 지나야 하는 또 다른 터널을 대비하게 해준다.


앤드류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사랑은, 우울증을 예방하진 못하지만 마음의 충격을 완화하는 장치가 되어 마음을 보호해 준다. (23p)


우울증 환자의 연, 가, 친구는 환자의 우울증에 자신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무기력함을 느끼기 쉽다.

하지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들의 사랑은 분명 마음의 충격을 완화하는 장치라는 것을.


5.

나의 두 번째 우울증이자, 그가 본 첫 번째 우울증이 발병하고

그는 나에게 한 노래를 들려주었다.


나 그대의 외로움
모두 알아줄 순 없지만
그저 아무 말 없이 안아
안아 줄 수 있다면
아무 말 없이 안아준다면

잠들 수 없는 쓸쓸한 밤엔
그대 곁에 있어주고
참을 수 없는 눈물 흘리는
그대 두 눈 닦아 준다면

그대 그 모든 말들
이해할 순 없어도 늘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들어준다면

나 그대의 괴로움
모두 헤아릴 순 없지만
그저 아무 말 없이 안아
안아 줄 수 있다면

이유조차 모르는
아픔과 슬픔 그 속에도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안아준다면

- 어반자카파, <위로>


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의 마음이 느껴져, 항상 눈물이 난다.

내가 받은 가장 겸손하고 따뜻한 위로였기 때문에.



<끝>



글/김명선

- 에세이 <리지의 블루스> 독립출판

- lizzyblues0330@gmail.com / 인스타그램 @bookstore_lizzy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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