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있는 그대를 위한 가이드
1.
세상에는 떳떳한 병과 그렇지 않은 병이 있다.
남에게 쉽게 말할 수 있고 위로와 배려를 받을 수 있는 병이 있고, 가능한 숨겨야 하고 때로는 거짓말까지 해야 하는 병도 있다.
정신질환이 후자에 속하는 대표적인 병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내가 우울증을 앓는다는 걸 모르면 '아직도 모르셨어요?'하는 반응을 할 수 있을만큼, 스스로 환자임을 널리 알리고 있는 나지만, 처음 우울증을 앓을 때만 해도 정신과에 다닌다는 걸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조마조마했다.
정신질환은 특수한 면이 있지만 큰 범위에서는 결국 전문 의료진에게 진료를 받아야 하는 병이고, 정신과 역시 그 이미지가 어떻든 병원이다.
입원병동이 없는 동네의원의 경우 정말 일반 내과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의 생김새를 가지고 있고, 사람들이 정신과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클리닉' 등의 이름을 쓰는 경우도 많다.
이 글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병원을 가는 시기를 놓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고 혹시나 가지고 있을 막연한 두려움을 걷어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적어본다.
내가 앓아본 정신질환이 우울증밖에 없고,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 일개 환자이기 때문에 글 속의 내용은 오롯이 한 개인의 경험에만 기반해 쓰여졌다.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꼭 참고해주시길 바란다.
2.
정신과 진료를 받기 전에 걱정되는 점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사람들의 부정적 시선, 진료비용, 그리고 이후 남을 기록이다.
1) 부정적 시선
가장 어려우면서도 또 어찌 보면 가장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타인의 부정적 시선이 두렵다면 말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누구나 비밀은 가지고 있고, 의료 기록은 법으로도 보장되는 가장 내밀한 기록이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말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머리를 좀 잘 써서 적당한 구실을 찾아내야 한다. 진료가 정기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진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진료를 일상 생활에 지장받지 않는 토요일에 잡는 것이 좋다. 평일 중 근무 시간을 이용해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면, 척추 물리치료, 갑상선 질환 등 변명이 되면서도 장기간/정기적 치료를 받는 질병으로 둘러대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물론 무엇보다 좋은 것은 믿을 수 있는 팀장/동료들이 있어 솔직하게 털어놓고 당당하게 병원을 다니는 것이다. 지금까지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었던 행운 덕분도 있었겠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우울증에 걸린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고통을 위로해 주었으며, 때때로 자신도 앓아보았노라고 해주기도 했다.
사실 더 어려운 문제는 타인의 부정적 시선보다 스스로의 부정적 시선이다. 내가 정신과 환자! 라는 사실은 결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이 사실이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글을 써보려 한다.
2) 진료비용
정신과 진료비용이 엄청 비싸다는 건 정말 대표적인 오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기본 진료비용은 크게 검사비/진료비/약값으로 나뉠 수 있다. 검사비는 대부분 초기에 병을 진단하기 위해 시행하는 다양한 심리검사(병원마다 정말 다양함. 그냥 종이로 체크만 하는 경우도 있고,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특수 장비를 이용해 스트레스 정도나 집중력을 진단하기도 함)에 소요되는 비용이다. 난 지금까지 5곳의 병원(4곳의 개인병원, 1곳의 대학병원)에 다녀보았고, 3곳에서 검사를 받았다.(나머지 두 곳은 이전 병원에서 소견서를 받아갔기 때문에 별다른 검사를 받지 않았음) 3곳 중 2곳은 엄마와 함께 가서 내가 수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용을 알 수가 없고, 1곳(개인병원)은 시간은 1시간 정도, 비용은 약 15만원 정도가 소요되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비싸게 받는 곳은 40만원 정도까지 받는 곳도 있다고 하니, 가기 전에 전화를 해서 꼭 물어보는 게 좋다.
명심해야 할 것은, 정신과는 '초진'이라는 과정이 있고, 초진은 대개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반드시 예약을 하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갔던 병원은 무턱대고 찾아갔더니 초진 예약을 잡지 않았다고 진료를 해주지 않아 그냥 돌아오기도 했었다.
병원은 지인에게 추천을 받거나(후기를 찾아볼 수 있으면 당연히 좋음), 집이나 직장에서 가까운 곳이 좋다고 생각하는데(장기간 다녀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갈 곳을 정했으면 꼭 먼저 전화를 해서 예약 및 초진 검사비에 대해 문의를 하길 바란다.
이후 진료비와 약값은 보험 적용시 일반 병원비와 큰 차이가 없다. 진료비에 대해서 3천원~만원 정도가 청구되고, 약값으로 3천원~2만원 정도가 청구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약값은 약의 종류와 조제량(처음에는 맞는 약을 테스트하느라 종류와 복용량이 바뀌는데, 이후에는 일정한 종류의 약을 일정한 양으로 복용하게 됨. 매주 병원 가기 귀찮으면 3주-1달 정도 약을 한꺼번에 처방받기도 함)에 따라 달라진다. 비보험 적용과 관련해서는 진료 기록에 대한 부분에서 설명하겠다.
3) 진료 기록
정신과 치료 기록이 줄 수 있는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역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내가 가장 확실히 말해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 여기저기를 검색하면서 알아보았는데, 일단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내가 동의하기 전에는 아무도 함부로 기록을 열람할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진료 선택시 보험 적용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데(병원마다 옵션이 없을 수도 있지만 세번째 다녔던 병원은 옵션 선택을 하게 해주었다), 비보험 적용을 선택할 경우 진료 기록이 병원에만 보관되고 국세청이나 보험 공단에 신고가 안되는 걸로 알고 있다. 이에 따라 진료비가 2배 정도로 비싸지고 연말 세액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지만, 혹시나 다른 사람이 연말 정산을 위해 기록을 떼어야 할 경우 알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보험 가입에 대한 불이익 역시 중요한 부분인데, 기본적으로는 정신 질환 때문에 보험 가입에 차별을 받지 않게 되어 있다. 하지만 분명 보험 가입 과정에서 이에 대해 물어보는 항목이 있고, 솔직하게 대답할 경우 이로 인해 가입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민원 처리 등을 통해서 정당하게 따지면 괜찮을 수 있겠지만 꽤 수고로운 과정이 예상된다.
진료 기록과 관련해서는 네이버 지식백과의 글을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보험 가입 거절시 대처 요령'에 대한 링크도 있다.
3.
정보성 글인데도 불구하고 두서없이 적은 부분이 많지만, 나 역시 이 글을 쓰기까지 꽤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일단 발행하고 이후 조금씩 수정해보려 한다. 정신과 문턱을 넘기 위해 용기를 낸 누군가가 부디 정보 부족으로 쓸데없는 두려움과 불편함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끝>
글/김명선
- 에세이 <리지의 블루스> 독립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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