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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Nov 29. 2016

글쓰기에 대하여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1.

언제부터 글쓰기가 나에게 진지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 리포트 쓰기는 꽤나 공포스러웠는데 말이다.

브런치라는 멋진 공간을 만나면서 구체화되긴 했지만, 그전부터 나에게 쓰고자 하는 욕망은 계속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 야자를 땡땡이치고 PC방에 가서 분노의 블로그 쓰기를 한적도 있었고,

한동안 거의 매일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올리기도 했었다.


요즘 내가 생각하는 나의 정체성은 "관점에 영향을 주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콘텐츠는 일차적으로 텍스트이다. 영상 콘텐츠, 이미지 콘텐츠에도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내가 가장 쉽게 다룰 수 있는 건 아직 텍스트밖에 없어서이기도 하다.


글쓰기가 진지해지면서 글쓰기를 더 진지하게 하는 분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통영의 독립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났을 때도, 서론에 담긴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치열한 생각을 접하고 바로 구매를 결정해버렸다.


책을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좋은 문장에는 플래그형 포스트잇을 붙이면서 책을 읽는 습관이 있는데, 이 책에는 붙일 데가 너무 많았다.

좋은 책은 많이 멈추게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독에 집착하고 다 읽은 책을 리스트로 기록하며 매해 읽은 양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던 걸 몇 년 전부터 그만두었다.

많이 읽는 것보다 중요한 건 많이 생각하는 것이다.


2.

저자가 이야기하는 '글쓰기'는 단순한 생각의 기술이라기보다는 현실을 직면하고, 고통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내가 되는 가능성을 만드는 일이었다. 글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되는 결과보다는, 글을 씀으로 인해 글쓴이가 변화하는 것에 더 주목을 했다. 저자가 책과 동명의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며 얻은 생생한 깨달음을 따라가며, 글쓰기가 소수 사람의 취미가 아닌, 익혀두면 운전이나 요리처럼 참으로 유용한 일상의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이 견딜만한 고통이 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일임을. 혼란스러운 현실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지, 덮어두거나 제거하는 일이 아님을... (9페이지)
<글쓰기의 최전선>은 목적에 갇히지 않는 글쓰기 수업이었다. 자기 삶을 자기 시대 안에서 읽어내고 사유하고 시도하는 '삶의 방편이자 기예'로서 글쓰기라는 포괄적인 의미를 표방했다. (...) 나 자신에 대해, 그 삶에 대해, 이 세상에 대해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면서 조금씩 불편해지며 깨어있는 게 목표라면 목표였다. (31페이지)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정체성의 재확인이 아니라 '다른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가고 발견하는 시간'이 되길 희망했다. (74페이지)
글쓰기를 한다는 일은 마음껏 슬퍼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슬퍼한다는 것은 온전한 내가 되는 일 같다. 나의 슬픔과 기쁨을 후련하게 말하기. 기쁨을 내밀듯이 슬픔을 꺼내놓는, 존재의 편안한 열림을 글쓰기가 돕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열어젖혀진 존재 위로 또 다른 말들과 생각들이 날아들 것이다. (269페이지)


3.

글쓰기가 가지는 좋은 점은 많지만, 분명 글쓰기는 피곤한 일이다. 나 역시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생각만큼 글을 많이 쓰지는 못하는데 이런 게으름에 저자는 촌철살인을 날린다.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다. 하나는 기분이 삼삼해지는 일이고 하나는 몸이 축나는 일이다. 주변에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글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피곤하고 바쁘다며 '집필 유예'의 근거를 댄다. (...) 글을 쓰고 싶은데 글을 수년간 한 편도 안 쓰는 사람은 주변에서 종종 본다.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을 즐기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55-56페이지)


4.

하지만 글을 원하는 만큼 쓰지 못하는 이유가 단순 게으름만은 아닐 것이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흰 종이와 흰 화면의 공포, 글을 쓰면 쓸수록 느껴지는 내 글의 보잘것없음은 힘들게 낸 용기를 꺾어버린다. 그런 사람들에게 저자는 '일단 쓰라'라고 얘기한다. "글쓰기 초기 과정은 '질'보다 '양'이라"며.


일단 쓸 것. 써야 쓴다.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 문장을 쓰고 그걸 다듬어서 문단을 만들고 그 문단의 힘으로 한 페이지 글을 완성할 수 있다.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서 영감을 기다리고 지적 자극을 위해 벤야민을 읽고 벤야민을 읽다 보면 마르크스가 궁금하고 마르크스를 공부하려면 '자본론'을 펴야 하고... 무능력에서 출발하면 글은 영원히 쓸 수 없다. (57페이지)
하얀 화면을 글로 메우다 보면 '응시'의 힘이 생긴다. 그리고 똑바로 볼 수 있다는 건 더는 두렵지 않다는 뜻이다. 나를 따라오는 게 귀신인지 사람인지 승냥이인지 형체가 모호할 때 훨씬 두렵다. (64페이지)


5.

그렇게 글쓰기의 두려움을 넘어서 막상 쓰다 보면 궁금해지는 질문. 좋은 글은 어떤 글일까?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 참 어려운 질문인데, 이에 대해 다음의 문장들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에세이, 칼럼, 논문 등 모든 글에는 하나의 메시지, 하나의 질문이 담겨 있어야 한다. 문제의식이 없는 글은 요란한 빈수레와 다름없다. (...) 글이란 또 다른 생각(글)을 불러오는 대화와 소통 수단이어야 한다. 울림이 없는 글은 누군가에게 가닿지 못한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어야 좋은 글이다. (129페이지)
사실은 없다. 해석된 사실만이 존재한다. 내가 만약 어떤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괴롭히는 대상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가는 보편적 관점을 변화시키고, 알고 있는 것의 지평을 변화시키고, 약간 옆으로 비켜서 보는 사람이어야 한다. (132페이지)
'남'의 글에서 억눌러놓은 '나를 보았을 때, 미처 몰랐던 자기의 욕망을 알아차렸을 때, 사람들은 그 글을 좋은 글이라고 느낀다. 고마워한다. 내가 게을러서 혹은 두려워서 아니면 막막해서 미처 들쳐보지 못한 마음의 자리를 누군가 살뜰히 드러내 주면 덩달아 후련해지기 때문이다. (137페이지)


그리고 저자는 자신이 귀찮고 피곤해도 글을 쓰게 했던 원동력으로 '감응력'을 꼽는다.


감응. 어떤 느낌을 받아 마음이 따라 움직임. (...) 감동이 가슴 안에서 솟구치는 느낌이라면 감응은 가슴 밖으로 뛰쳐나가 다른 것과 만나서 다시 내 안으로 들어오는 '변신'의 과정까지 아우른다. (...) 무엇에든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자가 어디에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법이다. (18페이지)
작가는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고 수전 손택은 말했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원래부터 작가라서 지식인의 본분으로 세상에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세상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작가라는 뜻으로. 그래서 작가가 되기는 쉬워도 작가로 살기는 어렵다. (22페이지)


6.

요즘의 나는 글을 쓰기 전에는 귀찮고, 막상 쓰다 보면 재밌고, 다 쓰고 세상에 공개를 하고 나면 떨린다. 누군가 시켜서 쓰는 것도 아니고 돈을 받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저 온전히 나를 위해서 쓰고 있다.

예상보다 널리 퍼지는 글에 신기해하기도 하고,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을 때는 소심해지기도 한다.


때로 깨어 있는 동안의 가장 많은 시간을 글쓰기에 쓰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힐 때도 있지만, 한 시간 정도만 써도 그건 정말이지 무척 힘든 일일 것이라는 게 자명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쓰고, 쓰고 또 써보려 한다.

스스로 목표한 양에 다다르면 멈춰서 자문해볼 것이다.

과연 글쓰기가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 일일지. 내가 쓰는 글은 좋은 글인지. 나는 왜 글을 쓰는지.

내 감응력은 얼마나 쓸만한지. 내 글은 과연 누군가의 감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뚜벅뚜벅, 써 나가 보려 한다.

나의 최전선을 만날 때까지.


*이 글의 모든 인용구는 <글쓰기의 최전선>(은유 지음, 메멘토 출판사)에서 인용되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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