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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Sep 29. 2016

외모에 대하여

나는 왜 성형을 하지 않는가

0.

일 때문에 외숙모댁에서 잤는데 파우치를 안 가져왔다. 수분크림만 겨우 빌려 바르고, 정말 오랜만에 완전 쌩얼로 하루를 살았다.

다행히(?) 원래 화장을 별로 안하는지라 그 누구도 '오늘 화장 안했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다 화장실에서 마주치는 내 얼굴은  민망했다.

게다가 어제의 리서치 데이터를 봐야해서 약 3시간 동안 얼굴을 포함한 내 상반신을 봐야했다.

촬영을 의식하지 않아서(의식하더라도 너무 긴 시간의 촬영이라 어쩔 수 없었을 듯) 무방비한 표정과 자세로 있는 나는, 후덕함이 온몸에 퍼져있었고 표정은 꼭 화난 사람 같았다.

새삼 "내가 참 못생겼구나"를 깨달은 하루였다.

못생긴 내 얼굴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괜시리 꿀꿀하고 뭔가 맘에 안드는 날이다.


1.

나는 못생겼다.

라고 쓰긴 싫고

나는 예쁘다.

는 높은 확률로 사실이 아니다.

물론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우리 할머니...? 엄마는 여러 번의 발언을 통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을 증명하심) 그렇게 생각해야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사람도 있다.(ex. 남자친구)


나는 외모에 한해서는 객관성이 무척 떨어지는 편인데, 그건 일단 내가 내 얼굴을 너무 오랜시간 봐와서 그럴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나태주, '풀꽃'


나는 나를 충분히 자세히 보았고, 오래 보아왔다.

나는 웃으면 상대적으로 예뻐지고, 무표정일 때 상대적으로 못생겨진다.(여기서 기준점은 어딘가 존재할 내 외모의 평균값)

거울을 통해서 나를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예뻐보일 수 있는 표정을 짓는 것 같다.

그래서 평소에는 굳이 내가 못생겼다는 생각은 안하고 산다.

하지만 충분히 대비하지 않은 채 찍힌 날것의 내 얼굴은 가끔 무척 당혹스럽다.


2.

나는 '아직' 성형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안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세상일은 모르니까.)

첫 직장이 성형의 메카 신사역에 위치해서 출퇴근할 때마다 지하철역 입구를 도배한 성형광고를 봐야 했고, 성형 수술을 막 끝내고 붕대를 감은 채 돌아다니는 분들도 많이 봤다. 여고를 나와서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성형을 한 친구들을 통해 생생한 후기를 접할 일이 많았고, 부모님도 나에게 성형을 권하기도 하셨다.


그래서 가끔 궁금했다.

왜 나는 성형을 안하지???

예쁘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인스타그램 보면 예쁜 여자들은 맨날 맛있는 것만 먹고 예쁜 옷만 입고 잘사는 것 같은데???


3.

그나마 생각나는 솔직한 이유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a. 결과의 불확실성
- 내가 성형을 해서 예뻐진다는 보장이 있나?? 성형해서 진짜 예뻐지는 사람이 그렇게 많진 않은 것 같은데???

b. 통증과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
- 겁나 아프다는데 ㅠㅠㅠㅠ 그리고 잘못했다가 망하면 어떡해 ㅠㅠㅠ

c. 희소성에 의한 반사이익 추구
- 모두가 성형을 하는 시기에 성형을 안하면 그 자체로 희소가치가 생기는 거 아닐까??? 자연'미인' 아니어도 자연'인'으로의 가치가 생기진 않을까?+_+

d. 세상의 기준에 대한 반항
- 성형을 하는 건 외모지상주의에 굴복하는 일! 나는 지지 않겠소-_-!!!

e. 오랜 시간 봐온 내 얼굴에 대한 정(情)
- 에휴 나라도 내 얼굴 좋아해줘야지 뭐


뭐가 가장 큰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5가지가 다 합쳐져서 아직 성형을 안하는 것 같다.


4.

노력하면 지금보다는 더 예뻐질 수 있을 것이다.

살도 좀 빼고, 화장도 좀 열심히 하고, 머리에도 좀 신경을 쓰고.

근데 너무 귀찮다.

살 빼느라 운동하고 맛있는 거 못 먹다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화장하고 머리 정리할 시간을 모으고 모아 5분이라도 더 자는게 행복하다.


마치 공부 하나도 안하고 시험은 잘보길 바라는 학생처럼

이렇게 살아도 예뻤으면 좋겠다.

근데 그러지 못해서

때때로 마주치는 차가운 현실 불행해진다.

정말이지 똥멍청이같다.


5.

내가 그동안 보고, 듣고, 알고 지낸 "옳은" 것들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 말한다.

뚱뚱해도 당당한 게 멋진 거라고.

세상의 잣대에 맞추지 말고 나답게 살라고.

나는 힘들게 노력할 생각도, 뼈를 깎을 아픔과 불확실성을 감내할 용의도 없기 때문에 아마 높은 확률로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그 "옳은" 가치들이 정말 "옳다"고 믿고 사는게 내 정신에 이로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세상은 예쁜 사람으로 사는게 너무너무 유리하고 좋은 세상이다.

뭐 어쩌다가 세상이 변해 c.희소성에 의한 반사이익 추구가 가능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럴 확률은 반토막난 내 주식이 10배로 뛸 가능성보다 낮아 보인다.


이게 27살의 가을에 내가 내리는 씁쓸한 결론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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