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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Lizzy Jun 29. 2016

우울증에 대하여

김동영/김병수, <당신이라는 안정제>

1.

<당신이라는 안정제>는 불안, 우울, 공황을 겪었던, 또 지금도 겪고 있을지 모르는 작가 김동영과 그가 7년 동안 진료를 받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전문의 김병수의 대화를 정리한 글이다.

인터뷰 형식의 글은 아니고, 어떤 주제에 대해 환자 입장에서 쓴 김동영의 글과 의사 입장에서 쓴 김병수의 글이 40개가 조금 넘는 꼭지별로 정리되어 있다.


우울, 불안, 공황은 사람마다 증상이 매우 다양해서 김동영의 글을 읽으며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공감할 수는 없더라도, 그가 그 상황으로부터 느꼈던 감정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었다.

김병수의 글은 대체로 참 따뜻했다. 긍정적이지만, 대책없이 긍정적이지도 희망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2.

인상깊었던 구절을 몇 가지 소개한다. 모든 인용구는 <당신이라는 안정제(김동영/김병수 지음, 달 출판사)>에서 인용했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나의 생각을 조금 덧붙였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절망하는 것은, 끝없이 고통스럽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느 순간 마음이 다시 아플 것이라는 숙명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 김병수, 13p

햇수로 약 4년째 앓고 있는 나의 우울증은 특정한 주기 없이 괜찮아졌다가 심해지곤 했다. 주로 겨울에 2~3달 안 좋은 기간이 있고, 그 기간 내에서도 괜찮은 순간을 왔다갔다 한다. 어제는 출근도 못하고, 밥도 못 먹을만큼 미치게 우울했는데 오늘은 또 멀쩡하다. 그리고 다시 우울해진다. 정말이지 얄궂다. 지금은 우울증의 완치를 딱히 기대하지 않는다.(내가 기대하지 않는 것일뿐, 우울증이 완치가 불가능한 병은 아니라고 들었다.)


나는 모든 행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것이라고 믿어요. 불안하고 우울하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울해서 죽을 것 같아도 행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 김병수, 14p

이 문장에 대해 논하려면 그놈의 '행복'이 도대체 뭔지 먼저 정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마음이 이끄는 삶' 꼭지에서 김병수는 "행복이란 실체가 없는 관념의 영역에 있는 것"이라 "우리는 행복이 아니라 언제 좋은 느낌이 드는지"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했다. 행복에 구체적 실체가 없다는 점에 십분 동의한다.

김병수는 자신이 행복할 때는 '뿌듯한 느낌'이 들 때라고 했다. 내가 행복할 때는... 아직 잘 모르겠다. 여행지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시원한 바람을 맞을 때 행복하다고 느꼈는데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우울해서 죽을 것 같은 순간에도 행복할 수 있는지 역시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없었다.


나이가 들어도 성숙해지지 않는다고 자신을 탓할 필요 없다. 인간은 어차피 불량품이다. 나이가 든다고 불량이 고쳐지는 법도 없다. 그래도, 우리는 그럭저럭 잘 살아가게 마련이다.
- 김병수, 39p

원래도 별로 낙관적이진 않았지만, 우울증이 시작되고 나서는 '인생은 고통이다', '인간은 어차피 불량품이다'와 같은 비관적 문장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만 이상한 존재가 아닌 것 같다는 위로를 받은 느낌이랄까. 그래도 그럭저럭 살아간다. '잘' 사는지는 모르겠으나.

안타까운 건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게 마련'인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희망의 손을 잡지만 어떤 사람은 포기해버린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더 희망의 손을 잡도록, 어떤 도움이 필요하다.


그가 해준 조언과 내가 읽은 책들에서 그리고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내가 가진 고통을 완전히 녹여버리는 방법을 나는 알고 있다.

규칙적인 생활
가벼운 운동
담배 끊기
매일 해를 삼십 분 이상 보기
건강한 식단

(...) 난 저것들을 실천할 수가 없다.

(...) 언젠가는 변해야 하고 저 모든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러기에 나는 아직 의지력이 약하고 게으르다. 적당한 때가 온다면 모든 걸 하나하나 실천할 수 있을거라 믿는다. 그러길 바란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결국 나는 내 고통을 내버려두고 가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 김동영, 43-45p

내 우울증이 심해질 때마다 엄마가 반복적으로 부탁하는 것은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이다.(난 원래 담배를 피지 않고, 우울증이 심해질 때는 집에 박혀 있기 때문에 엄마가 해주는 건강한 식단을 먹게 된다.) 그리고 우울증 시기에 이 두 가지를 실천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사실 어렵다기보다 귀찮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텐데, 이 귀찮은 일을 해내야 하는 목표도 의지도 없다. 우울하던 기분이 30분 나가서 걷고 온다고 별로 나아지지도 않는다. 지속적으로 한다면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 괜찮아지리라는 희망으로 지속하기에는 의지가 박약하다.

기본적으로 몸이 건강하다고 해서 정신 역시 건강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정도 심각한 구렁텅이를 빠져나왔을 때는 굳이 운동이 아니더라도 뭔가를 해서 규칙을 만드는 게 도움이 된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일부터 공원 세바퀴씩 돌아야지-하고 마음 먹고 실천하는 일은 안 아픈 사람도 어려운 일이다. 돈주고 끊는 운동도 매일 가게 되지는 않았다. 내가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데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직장 생활이다. 웬만한 직장 생활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에 상태가 많이 안 좋을 때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직장에서 뭔가 배려를 해주거나, 일 자체가 난이도가 낮아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일을 할 수 있다면 돈도 벌고 규칙적인 생활도 할 수 있는 괜찮은 방법이다.


자기 자신에게 어떤 행동이 도움이 되는지, 이건 굳이 누군가 말로 하지 않아도 제 스스로 이미 다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그것이 얼마나 해로운지에 대해 다른 그 누구보다 자신이 제일 잘 압니다. (...) 그런데 여기다 한두 마디 더 보태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상담이라는 이름으로 제가 누군가를 향해 말을 던지는 행위는, 어쩌면 무모한 도전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 말이 담고 있는 진실보다는, 말을 통해 전달되는 관심과 애정으로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아주 작은 불꽃이라도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 김병수, 47-48p

우울할 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자', '운동하자' 같은 말은 다 잔소리로 들린다. 때로 더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그 말이 나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아니, 알아야 한다.


3.

이 책의 제목이 당신이라는 '안정제'이지, '치료제'가 아니어서 좋았다.

아무리 훌륭한 '당신'도 나에게 안정을 줄 수 있을 뿐 치료를 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의 따뜻한 '당신'들은 내가 가장 힘든 순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정제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치료는 온전히 내 몫이다.

그게 지금까지 내가 우울증을 겪으면서 내린 빌어먹을 결론이다.


4.

삶은 대체로 힘들고, 대체로 불행합니다. 삶이 가져다주는 고통은 누구도 피해 가지 못합니다. 그 사람의 실체와 이면에 숨겨진 진짜 삶을 들여다보면 고통의 총량은 누구에게나 항상 일정한 법입니다. 이것은 짧지 않은 정신과 의사 생활에서 확고하게 깨닫게 된 사실(저는 사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힘들었던 것이 조금씩 잦아들고, 불행은 서서히 흐려지고, 고통을 피하지는 못해도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아픔과 고통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죠. 우리는 이런 사실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 김병수, 137p

세상에 반드시라고 말할 수 있는게 얼마나 될까. 별로 동의는 못하겠지만 이 아저씨가 참 따뜻하고, 강한 사람이라는 건 알겠다. 세상은 낙관주의자보다는 비관주의자로 살아가는 게 훨씬 편하니까.

믿지는 않지만, 기다려본다.




글/김명선

- 에세이 <리지의 블루스> 독립출판

- 인스타그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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