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지 Lizzy Oct 31. 2018

잉여 시간을 재밌게 보내는 방법에 대하여

아직 잘 모르겠지만 

1.

요즘 내 고민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살이 너무 쪘고, 여전히 찌고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남는 잉여 시간이 꽤 많은데 이 시간에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 


그리하여 최고의 해결책은 잉여 시간에 열심히 운동을 해서 살을 빼는 것일 텐데, 안타깝게도 난 그렇게 오래 운동을 하지 못한다. 아니, 하루에 10분 하는 것도 힘들다.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2.

나는 수원에서 작은 책방 리지블루스를 운영하고 있다. 

운영 시간은 화~토 1시부터 9시까지로, 중간에 6시-7시는 저녁을 먹기 위한 브레이크 타임을 가진다. 기본적으로 7시간 일하는 셈이지만, 오전에 독서모임을 열거나 밤늦게까지 심야책방을 여는 경우도 있어 간혹 야근을 하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대중이 없는데, 늦게 일어날 때는 12시 30분에도 일어나서 후다닥 씻고 겨우 출근을 하고(서점이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일찍 일어날 때는 8~9시에 일어나서 여유롭게 밥도 먹고 운동도 하고 집안일도 한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보통 밤 9시 15분 내외. 늦게 자는 편이라 보통 12시~2시 사이에 잔다. 대체로 나에게는 밤 3시간이 하루의 잉여 시간으로 주어진다.


3.

내가 이 시간을 '잉여 시간'이라고 칭하는 것부터가 삶에 대한 그리고 시간에 대한 내 관점을 보여준다. '잉여'라는 것 자체가 쓸데없이 남아도는-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일하지 않는 시간을 쓸데없다고 보는 것 같다. 실제로는 매우 중요한 재충전의 시간...이라고 머리로는 생각한다. 하지만 일상의 나에게는 자기 전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유통기간이 정해져 있는 고급 음식 재료 같다. 분명 귀중한 건 알겠는데, 저축은 못한다. 흘려보내자니 아깝지만, 막상 어떻게 잘 보내야 할지는 모르겠다. 


4.

이 고민은 상대적으로 꽤 편하게 일하고 있는 서점지기 생활 전, 그러니까 매일 최소 8시간을 일하고 3시간을 통근해야 했던 직장인 생활 때도 있었다는 걸 오늘 깨달았다. 야근을 하고 밤 10시쯤 퇴근하고 집(수원)에 오면 12시가 다 되던지라 씻고 자면 끝이었는데, 칼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씻고 10시쯤 되면 잠을 자는 12시까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고는 했다. 주로 핸드폰을 가지고 놀거나, 지금은 남편이 된 사람과 통화를 하거나, 책을 읽었다. 이 행동은 지금도 유지된다. 나는 10분에 한 번씩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접속하고, 혼자 게임하면서 잘 놀고 있는 남편 옆에 알짱거리면서 대화를 요청한다. 책은 잘 읽지 않는다. 서점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서점 근무 시간 동안 충분히 책을 읽는다. 집에 와서도 책을 읽을 만큼 열독가는 아니다.(가끔 읽긴 하는데 20분을 못 넘긴다)


5.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은 창조성을 일깨워주는 실천형 워크북 책이다. 서점에서 독서모임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거기서 내가 좋아하는 일 20가지를 적어보라는 미션을 주었다. 오늘은 이 일 중 내가 밤에 해볼 수 있는 일을 정리해봤다.


<좋아하고 밤에 할 수 있는 일>

- 책 읽기
- 모던 패밀리 보기 : 요즘 넷플릭스로 보고 있음. 한 에피소드당 20분 정도인데, 3편 보면 지겨워짐. 
- 글쓰기 
- 맛있는 것 먹기 : 심심하면 하는 일인데, 살이 찐다는 매우 큰 문제가 있음. 
- 쉬운 집안일하기 : 남편이랑 둘이 살아서 할 일이 별로 없음
-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기 : 과정은 재밌는데 결국 먹다 보니 살이 찜
- 웹툰 보기 : 연재를 따라가는 웹툰을 다 보는 데는 하루에 10분도 안 걸림.
- 음악 듣기 : 음악 들으면서 가만히 있는 건 별로 안 좋아함
- 남편과의 대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할만한 일>

- 그림 그리기
- 운동하기 (유튜브 운동 영상 따라 하기 또는 춤 게임하기) 
- 공부...?


참고로 영화는 한 때 엄청 좋아했지만 요즘은 보고 싶은 영화도 별로 없고 크게 재미도 못 느낀다. 드라마의 경우 시작하기가 약간 두려운데, 너무 빠지면 밤을 새우면서 보게 될 것 같고 재미없으면 그 자체로 문제이기 때문이다. 


6.

위에 쓴 리스트를 보면 내가 할만한, 좋아하는 일들이 꽤 많다. 하지만 문제는 나의 에너지 또는 동기부여이다. 저 일을 낮 시간에 일하는 것처럼 하라고 하면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시간에 굳이 할만한 일이 많지는 않다. 밤 시간에 나는 수동적이 되는데, 난 수동적인 행동(쉬운 콘텐츠 소비하기)에서 큰 재미를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고 적극적인 행동(글쓰기, 그림 그리기, 운동하기 등)을 할 만큼 에너지가 많거나 동기부여가 잘 되지도 않는다. 사실 공부만큼 시간이 잘 가는 행동도 없다. 하지만... 무엇을 왜 굳이 공부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7.

내 고민은 내가 해야 할 일이 엄청 많아져서(서점이 무척 잘 된다거나, 아이가 생겨서 육아로 온 시간이 소모된다는 등) 잉여 시간에 완전한 수동 모드(겨우 tv를 보거나 핸드폰 하다가 잠들기)를 가동하거나 잉여 시간을 즐겁게 보낼 최적의 행동(그런 게 과연 있을까!)을 찾을 때까지는 계속될 것 같다. 


그나마 오늘 생각난 아이디어는 <1일 1구> 프로젝트다. 글 쓰는 행동은 재밌는데, 막상 쓰고 싶은 소재는 없어서 고민이었다. 그런데 문득 내가 그날 책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과 함께 짧은 글을 쓰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참고로 요즘 이런 류의 책이 엄청 많다) 심심풀이로 진행하기에 재밌을 것 같다.


8.

나라는 인간을 데리고 잘 노는 것도 참 어렵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패키지여행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