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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Dec 15. 2018

킬링 디어

첫 번째 데이트 

1.

'잠만보 부부의 영화 데이트' 프로젝트 첫 번째 영화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킬링 디어>였다. 요즘 조금씩 읽고 있는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신형철, 한겨레 출판)에서 소개된 영화이기도 하고,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꼽은 2018년 외국영화 베스트에서 3위를 차지한 영화이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뭔가 대단한 영화인 것 같긴 하지만 평론가의 해설 없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난해함이 있고 무엇보다 무섭다. 공포 영화도 아닌데(스릴러 장르로 분류되긴 한다) 시종일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책을 통해 대강의 내용을 알고 봤음에도 영화적으로 끌고 가는 힘이 장난이 아니다.


2.

#줄거리 (스포일러 다량 포함) 


한 남자 의사가 있다. 

그는 음주 수술을 통해 한 청소년의 아버지를 죽였다. 

죄책감에서인지 그 소년에게 시간도 내주고, 시계도 사주고, 집에도 초대하는 등 잘해주지만 소년이 더 많은 애정을 요구했을 때 회피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의사의 아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하반신 마비를 겪는다. 

소년은 의사를 찾아와 이것은 자기 나름의 균형을 만드는 것이고, 정의라고 하며 부인, 아들, 딸 중 한 명을 죽이지 않으면 세 명 모두 1) 신체 마비 2) 섭식 거부 3) 피눈물 의 과정을 거쳐 4) 죽음 에 이를 거라고 경고한다.

물론 의사는 이런 개 풀 뜯어먹는 소리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 뒤 딸도 똑같은 증상을 겪는다.

그리고 아내한테 이 믿기 힘든 이야기를 말해준다.

아내는 남자보다 빨리 이 신의 장난 같은 게임의 규칙을 믿는다. 

의사는 화가 나서 소년을 납치 후 감금하기도 하고, 다리에 총을 쏘기도 한다.

하지만 소용이 없다. 

어느 시점을 지나면 가족들도 이 신의 놀이의 규칙을 알게 된다. 남자가 세 명의 가족 중 한 명을 죽이지 않으면 이 놀이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남자의 잘못으로 자신이 이 고통을 겪는 걸 알면서도, 누굴 죽일지 권한을 가진 건 여전히 남자이기 때문에 가족들은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남자는 결국 가족 중 한 명을 죽인다.


3.

남편 HG는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으로 아들이 그렇게 안 자르던 머리를 자르고 아빠한테 "나 머리 잘랐어요. 잘했죠? 아빠 말 진작 들을 걸..."식으로 말한 장면을 꼽았다. 나 역시 아들을 시작으로 부인, 딸 모두 남자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며 인간이 가진 삶에 대한 원초적 욕구의 끔찍함을 엿보았다. 


4.

주인공 남자는 가부장적이고, 상황 및 사람을 통제하는 것을 좋아하며, "외과의는 절대 사람을 죽이지 않아"라고 말할 만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그렇게 좋아했던 통제권이 나중에는 그를 생지옥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아들, 딸, 부인 중에 한 명을 죽여야 하는 권리 같은 건 없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그는 끝까지 선택을 하지 못한다. 


5.

잘못을 했으면 대가를 치르는 게 맞다-라고 누구나 머리로는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그 대가가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다면, 그때부터는 대가를 회피하려고 한다. 내 잘못만은 아니었어- 라든가, 실수였어-라든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는 이런 자세가 공감력의 부족에 기인한다고 나오기도 했다. 내 잘못으로 인해 상대가 입은 피해가 얼마나 끔찍할지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치러야 할 대가를 피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6.

남자의 아내는 소년을 찾아가 묻는다. 

왜 남자가 한 잘못에 대한 대가를 죄 없는 가족들이 치러야 하느냐고. 

소년은 스파게티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아빠가 죽고, 사람들이 자기가 스파게티 먹는 모습을 보면서 아빠가 먹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고 말해서 기분이 좋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모든 사람들이 스파게티를 똑같은 자세로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기분이 굉장히 나빴다고. 

이 대사의 의미를 명쾌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HG는 사람들이 거짓 위로를 한 것에 대해 비꼬는 게 아닐까-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나는... 잘 모르겠다. 나 역시 궁금하다. 왜 남자가 한 잘못에 대해 남자의 가족들이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걸까? 이 이야기가 오직 소년과 남자 사이의 이야기라면 둘이 치르는 대가는 비슷하다. 둘 다 가족을 잃었으니까. 하지만 잃음을 당하는 가족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한 일일까. 누군가의 관점에서는 복수가 정의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의 관점에서는 균형도 뭣도 아니고 그저 또 다른 복수심을 시작하는 씨앗일 뿐이다.


7.

잠만보 부부의 별점은 다음과 같다.


- 잠만보 아내 : ★★ / 뭔가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보는 내내 불편했다. 

- 잠만보 남편 : ★ / 왠지 4점을 줘야 있어 보일 것 같지만, 내가 이해한 만큼은 3점 정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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