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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Mar 30. 2017

생일에 대하여

특별할 것 없는 특별한 날

1.

생일이 되었다.

28살의 생일이고, 실제로는 27번째 생일이다.

지금이 2017년 3월 30일 오전 0시 21분이니까, 올해 내 생일은 23시간 39분 남았다.


2.

어릴 때 생일은 생일파티를 하는 날이었다.

생일이 3월인 것은 별로 좋지 않았는데, 새학년이 시작되는 달이기 때문에 아직 친한 애들 그룹이 형성되지 않았을 때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이들과 크게 친하지도, 안 친하지도 않았기에 대부분의 아이들을 초대했고 결과적으로는 엄마만 고생하는 파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반 친구들이 과자를 챙겨주거나 하는 식으로 생일을 축하해줬다.

대학교 때는 남자친구랑 보내거나, 친한 친구랑 보냈던 것 같다.

생일도 결국 무수한 날들 중 하나일 뿐인데, 특별하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 같은게 있었다.

사람들도 대부분 축하해주면서 오늘만큼은 우주의 기운을 모아서라도 행복하길 바란다는 식으로 얘기해주고는 했으니까.

생일에 불행하면 다른 날보다 두세배 더 불행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생일에 행복하기보다는 불행하지 않기를 바라기 시작했다.

그냥, 별 일 없이 잘 지나가기를 바랐다.


3.

또 언젠가부터 생일을 맞아 내가 챙기는 의식(ritual)같은 것은, 엄마한테 꽃을 사다드리는 것이다.

내 생일이지만, 결국 이 날 고생한 건 엄마이고, 사실은 미역국도 내가 아니라 엄마가 드시는게 맞다는 걸 어디서 봤는데 굉장히 인상깊게 다가왔다.

요리할 재주가 없다는 핑계로 미역국은 여전히 얻어먹고 있지만, 그래도 엄마가 좋아하는 꽃 한다발 사다드리는 걸로 엄마에 대한 감사함, 또는 마음의 빚을 표현하곤 했다.


4.

그렇지만 오늘처럼 생일 전날이 우울했던 날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펑펑 울었던 날은.

엄마에게 덮어놓고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기가 힘들다.


내가 선택한 생이 아닌데.

나는 이렇게 울고 있는데.

태어난 게 그렇게까지 좋은지 모르겠다고, 불효막심한 생각을 하고 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은 하루를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보내려 노력할 것이다.

회사도 가고 싶고,

사람들이 박수치는 가운데 케이크 촛불도 불고 싶고,

회사 복지 차원에서 주는 생일 반차 써서 가고 싶었던 전시회도 가고,

남자친구랑 맛있는 저녁도 먹고,

그렇게 보낼 거다.


내 전화번호 뒷자리 0330

내 메일 아이디 myungsun.kim0330

유치하지만 생일은 내 일상 속 아주 깊은 곳까지 들어와있다.


생일이 비슷하기만 해도 뭔가 돌아보게 되고, 무려 같은 날이면 진짜 신기하고.

3월만 되어도 뭔가 설레는.

생일은 결국 나한테 참 특별한 날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니 용감하게, 행복해지려 노력해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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