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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Jun 18. 2017

잘하는 것만 하고 싶은 마음에 대하여

인생에 실패란 없다

1.

팀장님이 누구보다 너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라며 링크를 하나 보내셨다.

요지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쉬운 포기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내가 그런가? 하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런 것 같다.

바꿔 말하면, 난 잘하는 것만 하고 싶다.


2.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참 잘했다.

수학, 과학을 상대적으로 잘 못하는 편이었지만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였을 뿐, 모든 과목을 참 고루 잘했다.


고3 때 담임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넌 공부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내 대답은 1등하는 게 좋아서요, 였던 것 같다.

다른 아이들보다 특별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던 이유같은 건 없었다.

공부하는게 쉬웠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는 만큼 보상이 따라왔다.

많은 경험을 한 지금에서야 느끼는 거지만, 노력한 만큼 보상이 주어져도 "잘한다"고 할 수 있다.

적당히 노력해서는 아무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 게 참 많다.


3.

졸업 후에 UX디자인 에이전시에 들어갔다.

업무 종류로 크게 2가지가 있었다.

선행 연구를 하는 전략/리서치 업무와 실질적인 양산을 하는 화면디자인 업무.

나는 디자인 전공이 아니어서 화면디자인을 잘 못했다. 잘 못하는 분야는 더 많은 노력을 해서 뛰어넘었어야 하는데, 나는 그냥 포기해버렸다.

회사에서도 많이 배려해줘서 전략/리서치 업무를 많이 했고, 그렇게 나는 반쪽짜리 디자이너가 되었다.


4.

새로운 회사에 다닌지 1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맡은 업무 역시 2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리서치 업무와 사업 기획/운영 업무이다. 나는 리서치를 할 때는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도 괜찮은 아웃풋을 내는데 사업 기획/운영을 할 때는 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기본적인 수준의 아웃풋을 낸다. 그리고 사업부에 있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다양한 방식으로 도피를 했다.

스트레스의 원인에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잘하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5.

나도 안다. 결과나 성과가 다는 아니라는 것을.

과정 중에서 느껴지는 즐거움도 분명 있다는 것을.

그런데 이런 과정의 즐거움을 느끼는 '감각'도 하나의 능력이다.

노력도 재능이듯, 과정을 즐기는 것도 '그래야지' 생각한 순간 바로 되는 것이 아니다.


6.

못하는 것이라도 그 과정을 즐기면서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모르겠다.

김연아는 전체 점프의 균형을 흔들 수 있는 트리플 악셀을 포기하고 나머지 트리플 점프들에 집중해 일관되게 높은 성적을 냈다.

반면 아사다 마오는 성공률이 낮은 트리플 악셀에 집착해 모 아니면 도의 성적을 냈다.


안 되는 걸 하려면 힘들고, 슬프다.

잘하는 것만 잘해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니까.


문제는 나의 관점이다.

어떤 일에 대해서 애초부터 내가 잘하는 것/못하는 것으로 분류를 하고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강하게 가진다.

잘하는 것 역시 항상 잘한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잘하는 분야에서도 어떻게 항상 좋은 아웃풋을 내나. 가끔은 좀 안좋은 아웃풋을 낼 수도 있지.

그런데 조금이라도 안좋은 아웃풋을 내면 '아 나는 이것조차도 못하는구나'하고 스스로를 한없이 깔아뭉갠다.

그러다보면 내 존재 자체가 똥멍청이라고,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해 버린다.

이런 나는 생각없이 할 수 있는 단순작업이나(그걸 지속해서 하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지만)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7.

누군가의 성공 뒤엔 누군가의 실패가 있고, 누군가의 웃음 뒤엔 다른 사람의 눈물이 있다. 하지만 인생에 실패란 없다. 그것에서 배우기만 한다면 정말 그렇다. 성공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이지만, 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성공인 실패도 있다.
-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아르떼, 278페이지


난 실패라는 말이 참 싫다.

실패를 인정하는 게 참 어렵다.

실패에서 배우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난 안될거야....가 아니라.


노력하려 한다.

잘하는 것/못하는 것으로 나누지 않고,

성공/실패로 나누지 않고,

어차피 모두 연속적인 내 이야기라고. 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이라고.

포기해야 할 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잘 못하는 걸 너무 힘들게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너무 앞만 보고 달려가기보다는,

가끔 앉아서 내가 왜 달리고 있나 생각도 좀 해보고.

지금 몇 등하는지만 신경쓰기보다는, 달리고 있는 자체의 상쾌함도 좀 느껴보고.


그렇게.

물론 잘 안 되겠지만!

인생에 실패는 없다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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