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을 사용하며 느낀 것들
1.
요즘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듯한 중고거래 서비스 '당근마켓'의 존재를 처음 알았던 건 1년 반 정도 전이었다. '직거래 중심의 중고거래 서비스'라는 컨셉 자체가 마음에 들어 바로 깔았다. 종종 중고나라를 이용해 물건을 팔곤 했지만, 택배를 보내는 건 무척 번거로운 일이었다. 물건에 맞는 박스를 구하고, 택배사에 연락하거나 우체국/편의점 방문을 하는 것이 익숙해지기까지는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대를 가지고 앱을 깔아봤지만, 내 지역(수원)은 매우 휑했다. 올라와있는 물건도 거의 없고, 딱 봐도 쓰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느낌이 들어서 금방 지웠다. 아직은 서울 쪽에서만 활성화된 서비스려니 했다.
2.
다시 당근마켓을 깔았던 건 올해 초에 끈질기게 유튜브에 광고가 노출되어서다. 광고가 지겹기도 하고, 그 사이에 뭐가 달라졌나 싶어 다시 앱을 깔아봤다. 오, 딱 봐도 물건도 많고 서비스 자체도 발전한 게 느껴졌다. 책장 같이 부피가 크고 무거운 물건을 클릭하면 근처 용달 서비스를 알려주는 버튼이 나오는 걸 보고는 세심함에 감동받았다. 네이버에서 내가 사는 지역의 용달 서비스를 찾으려면 온갖 광고의 늪을 지나야 한다는 게 예상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당근마켓에 등록된 용달 기사님들의 프로필에는 이용자들의 리뷰가 있어 신뢰가 갔다. 내친김에 집을 뒤져서 팔만한 물건을 올렸다. 의류 몇 개와 안 쓰던 컬러링북이었는데, 아쉽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판매는 어려웠지만 구매는 쉬웠다. 사고 싶었던 가습기를 정가의 1/7에 득템했다. '키워드 알림' 기능을 이용하면 굳이 매번 접속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물건이 등록되었을 때 알림을 받을 수 있었다. 중고로 써도 괜찮은 물건을 살 때 유용하겠구나- 싶은 정도였다.
3.
본격적으로 판매자 경험을 하기 시작한 건 4월이었다. 운영하던 작은 책방을 정리하게 되면서, 책방에서 쓰던 가구와 가전을 판매하고 싶었다. 판매가 될까... 싶었지만 일단 올려보자는 마음에 책방 종료 2주 전부터 한 두 개씩 올리기 시작했다. 예상외로 반응은 뜨거웠다. 만약 판매하지 못했으면 돈을 주고 폐기물 스티커를 사서 버렸어야 할 물건들이, 책방을 정리하는 마음을 조금은 홀가분하게 해 줄 만큼 쏠쏠한 부수입으로 바뀌었다. 당근마켓이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물건은 벽걸이 에어컨이었다. 딱 봐도 분리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여서 일단 전문 매입업체에 연락을 해봤다. 두 군데 견적을 의뢰했는데 각각 1.5만원과 4만원을 불렀다. 구식 모델이어서 그렇다고 했다. 당근마켓에 15만원에 올려볼까 생각했었는데, 소심해져서 11만원에 올렸다. 에누리를 요구하면 1만원을 깎아줄 것까지 고려한 가격이었다. 올리자마자 10분 만에 연락이 왔다. 거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입금부터 하겠다는 태도였다. 상태를 '예약중'으로 바꾼 뒤에도 '불발되면 연락달라'는 구매 대기자가 여러 명 생길 정도로 11만원짜리 벽걸이 에어컨은 인기가 많았다. 그때서야 내가 시중 가격보다 저렴한 가격에 올렸다는 게 느껴졌다.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매입업자에게 팔았으면 5만원도 못 건졌을 걸 생각하면 고맙게 느껴졌다.
4.
열 건이 넘는 판매를 진행하다 보니, 물건 판매를 지치게 하는 사람도 종종 만났다. 구매를 할 것처럼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갑자기 잠수를 타는 경우는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나중에는 하도 흔해 그러려니 했다. 나중에는 질문하는 것만 봐도 찔러보는 건지 구매의사가 있는 건지 분별이 될 정도였다. 일단 진짜 구매자는 대체로 질문이 별로 없다. 질문을 해도 가격 할인에 대한 것이나 객관적인 요소(특정 부품이 있는지 등)에 대한 것이었다. 찔러보는 사람은 주관적인 부분에 대해 물어봤다. 예를 들어 청소기에 대해서 '흡입력이 좋나요?'와 같이 묻는 경우였다. 음식점에 들어가서 주인한테 '여기 음식 맛있나요?'라고 물어보는 것과 비슷한 경우 같다. 내가 영업사원이었다면 흡입력의 지표를 생각하며 홍보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만원을 벌고 싶지는 않았다.
5.
'집에 있는 안 쓰던 물건을 팔아서 돈을 번다'는 결과적 가치만 놓고 보면 당근마켓은 누구나 환영할만한 서비스다. 하지만 물건을 판매하기까지의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을 고려하면 누구나 판매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바쁜 사람, 조금이라도 귀찮은 일을 싫어하는 사람, 모르는 타인과의 어색한 상호작용을 꺼리는 사람은 집에 아무리 물건이 많아도 판매자가 되지 않을 것 같다. '귀찮음'은 누구나 느끼는 요소이지만, 귀찮음을 감수하는 대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5만원은 받을 수 있어야 귀찮음을 감수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단돈 천원만 벌 수 있어도 귀찮음을 감수할 것이다. 돈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쓸만한 물건이 버려지는 게 안타깝다는 선한 마음이 물건 판매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당근마켓은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환경적 가치도 창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임팩트가 큰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6.
당근마켓은 지금도 훌륭한 서비스이지만, 모든 서비스가 그렇듯 발전의 여지는 있다. 유저로서 사용하면서 생기길 바라는 기능이 몇 가지 있다.
- 약속 장소 정하기 : 현재 약속 시간을 정하고 리마인드를 해주는 캘린더 기능은 있지만, 지도와 연동되는 장소 정하기 기능은 없다. 캘린더보다 장소 기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약간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차를 타고 오는 걸 고려하면 내비와 연동되면 제일 좋겠지만, 적어도 장소 설명을 저장해놓을 수 있어 매번 똑같은 설명을 반복하는 수고를 덜 수 있으면 좋겠다.
- 경매 : 물건을 판매할 때 가장 고심하게 되는 요소는 가격이다. 판매자의 입장에서 비싸게 팔수록 좋겠지만, 너무 높이 불렀다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판매 자체가 불가능하다. 1:1로 가격 흥정을 하는 것보다, 최저가와 경매 시간만 설정해놓고 최고 가격을 부르는 사람에게 판매할 수 있으면 유용할 것 같다. 구매자 입장에서도 할인을 요청했다가 면박을 당할 위험을 줄여주고, 의외의 득템을 가능하게 해 줄 수 있다. 당근마켓이 추구하는 '이웃 간의 신뢰'와는 상관없는 기능이라 구현될 가능성은 매우 적어 보이지만, 유저가 더 접속을 자주 하게 하는 효과는 있을 것 같다.
- 당근 스팟 :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문고리 거래'라고 하는 비대면 거래도 이뤄지기도 한다지만 아직 대부분의 거래는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서 이루어진다. 그러다보니 둘 다 가능한 시간을 맞추는 게 중요한데, 자주 이용하다 보니 은근 일상을 제약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거래 자체에 소요되는 시간은 적지만, 약속 시간에 30분~1시간 정도 변동이 자주 생겨서 대기가 필요하기도 하다. 올빼미형 인간과 아침형 인간처럼 생활 패턴이 정 반대면 시간을 맞추기 자체가 어렵다. 편의점 택배처럼 시간 제약을 받지 않고 물건을 맡기고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생기면 훨씬 편할 것 같다.
7.
당근마켓은 은근 중독성이 있는 서비스다. 24시간 내내 새로운 콘텐츠(물건)가 올라오고, 서비스 자체적으로 이용 행태에 따라 활동 배지를 주는 게이미피케이션 요소가 있기도 하다. 여러 가지 배지 중 '당근홀릭'은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당근마켓에 접속하면 받을 수 있다. 며칠 전 나의 당근홀릭 배지가 활성화된 걸 확인하고 많이 접속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기분은 뭔가 묘하다. 자랑스럽다기보다는, 이렇게까지 많이 접속할 필요가 있나? 내가 당근마켓 중독인가?라는 생각도 해봤다.
남편이 종종 회사 동료에게 들은 당근마켓의 부작용 사례를 알려준다. 대체로 아내의 당근마켓 거래에 이용되는 남편들의 푸념이다. 앱 상에서의 거래는 아내들이 하지만, 실제로 물건을 주거나 받는 사람은 남편인 경우가 있다. 물건이 무거워서, 자동차가 필요한 먼 거리여서, 아내가 집 밖으로 나오기 힘든 상황이어서 등 이유는 다양하다. 물론 그냥 시키는 경우도 있겠지만. 당근마켓의 잘못은 아니지만, 부부싸움의 소재가 될 수 있다.
또 당근마켓의 신뢰를 지탱하는 요소 중 하나인 이용자 간의 평가를 하다 보면 드라마 <블랙 미러> 시즌 3의 '추락' 에피소드가 떠오르기도 한다. 드라마처럼 누군가에게 받은 별점이 인생 전반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지만, 거래를 하고 돌아서자마자 타인의 태도를 평가하는 행동이 때로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을 남긴다. 부디 나의 과한 걱정이길 바랄 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