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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Aug 01. 2017

D-89. 개인 구성개념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니면 참을 수 없는 것

1.

브라이언 리틀의 <성격이란 무엇인가>(김영사)를 읽기 시작했다.

한 챕터만 읽었을 뿐인데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물론 첫 끗발이 개끗발인 경우도 있지만)


챕터 1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당신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흔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요즘의 나에게는 무척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질문이다.

스스로를 '파워 백수'라고 소개하는 요즘이지만, 진심으로 내가 백수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백수 목표 일자의 10%밖에 안 지났지만, 현재까지는 '백수는 나에게 맞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2.

챕터 1에서 리틀은 '개인 구성개념(personal construct)'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당신이 당신 스스로와 타인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방식(15p)"이라고 하는데, 내가 이해한 바로는 '자신을 포함해 사람을 바라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잣대나 기준'이다. 예를 들어 똑똑하다-멍청하다, 외향적이다-내향적이다, 와 같이 두 개의 대조되는 형용사로 이루어진다.


교수인 리틀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신의 개인 구성개념을 적어보라고 했는데, 대부분의 학생은 7개 정도의 전형적인(재미있다/지루하다, 멋지다/멋지지 않다 등) 개인 구성개념을 적었다고 한다.


그런데 '제럴드'라는 학생은 단 한 개의 개인 구성개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군인이다/군인이 아니다'였다. 그만큼 군인이라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자신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그는 징계를 받아 강제 전역을 당하게 되자, 며칠 만에 정신병동에 들어가게 될 만큼 급성 불안장애 판단을 받았다고 한다.


3.

이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이러한 '개인 구성개념'에서 내 우울증을 이해하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챕터 내에서는 이 개념을 자신보다 타인을 바라보는 수단으로 사용했는데, 나는 나를 바라보는 데 집중해서 사용해보았다.

- 나는 나 자신을 어떠한 면에서 멋진/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이러한 나의 속성이 갑자기 반대로 변해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주의 : 아래 속성은 제가 바라보는 저일 뿐, 실제의 저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3-1. 똑똑하다/능력 있다

- 나는 내가 사리분별을 잘하는 똑똑하고, 맡은 바를 제대로 해낼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비슷한 기본 능력(나이, 경력 등)을 가진 사람보다 잘한다고 생각한다.

-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멍청해진다면... 정말 괴로울 것 같다. 실제로 우울증이 심해지면 집중력이 저하되는 등 능력이 좀 낮아지는데, 이럴 때는 그 일 자체에서 도망치고 싶어 진다. 50점을 맞을 바에야 시험을 안 보겠다는 태도다.


3-2. 솔직하다

- 나는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고, 솔직하게 내가 느낀 바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솔직해지지 않는다면... 이것 역시 무척 괴로운 일일 것이나, 어떻게든 이 변화에 맞추어 살 수는 있을 것 같다. 좀 답답하긴 하겠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더 편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허무함이나 무의미함을 더 많이 느낄 것 같다.


3-3. 성실하다

- 나는 뭔가를 하면 열심히 노력해서 해낸다. 가능한 한 뭔가를 미루지 않고,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버리는 것을 아까워한다.

-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성실해지지 않는다면... 인생이 재밌어질 것 같다. 지금 나의 백수 생활이 괴로운 이유는 내가 지나치게 성실한 인간이라는 점 때문인 것 같다. 오늘 만난 친구가 '나는 시간을 낭비하는 게 너무 좋아'라고 하던데, 나로서는 참 동의가 안 되는 발언이었다. 흠... 근데 내 가치관 자체가 다 바뀌지 않고서야 성실성만 사라지면 스스로를 엄청 한심하게 생각할 것 같다.


4.

3가지 정도만 썼는데도 무척 힘든 작업이다.

이외에도 '사랑받는다' 정도를 생각해봤는데, 분명 머리로는 가족, 남자 친구, 친구들에게 사랑받는 존재라는 걸 알지만 확언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 같다.

흠, 이 점 역시 하나의 단서다.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우울증을 가지고 있다' 역시 나를 좋은/멋진 사람으로 만드는 특성으로 껴주기 힘들다. 나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이지만, 아직도 나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힘든가 보다.


처음에 질문을 만들면서 '나는 나 자신을 어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썼다가, '어떠한 면에서 멋진/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로 바꿨다. 안 좋은 점은 어느 날 일어나 변해있다면 당연히 너무 좋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우울증이 갑자기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시원섭섭하기도 하다.

완전히 받아들이진 못했어도, 우울증이 내 삶의 브레이크이자 지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주는 친구라고 여기긴 하나보다.


반면에 '통통하다'는 특성은 어느 날 일어났더니 '날씬하다'로 바꿔져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


5.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건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막상 이렇게 써놓고 보니, '똑똑하다/능력 있다'라는 특성이 내가 스스로를 멋지게 생각하는데 매우 중요한 특성이라는 건 알겠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나는 스스로 무가치하다고 느낄 거라는 것도.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면 나는 이 특성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환경에 가야 할 것이다.

스스로가 더 똑똑하고, 더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느낄수록 행복해질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나름 그렇게 살아왔다.

우울증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제는 겁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똑똑함과 능력은 안타깝게도 절대적인 게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 나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경쟁을 해야 한다.

그런데 경쟁은 무섭다.

질까 봐 무섭기도 하고,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무섭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변해야 한다.

나의 가장 중요한 특성을 똑똑함과 능력 있음에 두지 말고 다른 것에 두어야 한다.


그게 뭘까?

모르겠다!



글/김명선

- 에세이 <리지의 블루스> 독립출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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