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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Sep 14. 2017

D-45. 짜증에 졌다

그나마 수영이라도 해서 다행이야

1.

오늘은 짜증나는 일이 몇가지 있었다.


1-1.

백화점에 신부예복(50만원 이상하는 원피스)을 사러 갔는데, 점원이 나를 보고 귀찮다는 티를 역력히 냈다.

맘에 드는 코트를 입어보려고 운을 띄웠더니, 대뜸 가격부터 알려주지 않나,

예복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자기네 브랜드에는 "슬림"한 옷밖에 없다고 하질 않나(난 누가봐도 슬림한 편이 아님),

돌아서서 매장을 나가는 내 뒤에서 한숨을 쉬질 않나.


이런게 갑질 마인드인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여전히 기분은 나쁘다.

노란색 티를 입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4만원짜리 가방을 들고 간게 잘못이었을까.


1-2.

혼자서 가게들을 둘러본 뒤 엄마를 만났다.

만나자마자 엄마가 하는 말, "너 그렇게 입으니까 부해보인다(=뚱뚱해보인다)"

내가 이틀 전에 야심차게 세트로 산 옷인데.

초장부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데, 같이 들어간 옷가게에서 대뜸 예복으로 "원피스 말고 코트를 사라"고 언성을 높이신다.

나도 지지 않고 언성을 높여서 말대꾸를 하는데, 종업원들의 표정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후 내가 봐둔 코트를 사는 자리에서도 "뒤에 그림 그려져 있는게 맘에 안든다"는둥 어깃장을 놓으셨다.

쇼핑을 마치고 나오면서는 대뜸 내 한복이 언제 나오는지 물어보시고는 저고리 색깔이 자기 마음에 안들면 바꿀거라고 하신다.

엄마 돈으로 바꾸라고 말씀드렸다.


1-3.

그 외의 일들은 매우 사소해서 썼다 지웠다.


2.

이렇게 사소하게 짜증나는 일들이 어쩌다 겹치고,

나의 컨디션도 이를 너그럽게 수용할만하지 않으면,

나는 세상의 둘도 없는 소인배로 전락한다.

궁시렁대장이 된다.

일어나지 않은 일도 막 상상해서 짜증에 짜증을 더한다.


처음에는 외부를 향하던 화가

나중에는 나를 향하게 된다.


좋지 않다.


3.

짜증이 차오를 때마다, 심호흡을 하고 '이너 피-스'를 외치지만 잘 찾아지지 않는다.

그나마 숨이 찰 때까지 수영을 하니까 머리가 맑아지긴 한다.

그나마 엄마에 대한 짜증은 진지하게 앞으로 나의 옷차림에 대한 간섭을 좀 그만두라는 말씀을 드리는 걸로 조금 풀어졌다.


4.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나는 왜 그렇게 짜증이 났을까.

결국 세상 일이 내가 생각한대로,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그런것 같다.


이런 컨트롤중독자(Control freak) 같으니라고.


세상에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기 때문에,

그 어떤 사람도 나에게 예상 밖의 변수를 만들 수 있다.


쓸데없는 망상을 해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기분 나빠하는 건 정말 나쁜 버릇이지만,

언제든지 내 컨트롤 밖의 짜증나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건 인지해야 한다.


내가 다룰 수 있는 영역에서만 최선을 다할 수 밖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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