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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Sep 19. 2017

D-40. 수영 땡땡이

조금씩만 더 노력하기

1.

우리 집 바로 앞에는 내가 다녔던 중학교가 있다.

어제 엄마랑 학교를 지나가는데 엄마가 어제 아침에 학교를 지나간 이야기를 해주셨다.

"예쁘장한 애들 두 명이 학교에 왔는데, 안 들어가고 그냥 새더라고"(엄마)

소위 말하는 '땡땡이'를 치는 현장을 목격하신 듯했다.

"우리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인데 말이지"(엄마)  


상상이라...

개근까지는 아니지만 학교는 꼬박꼬박 열심히 나갔다.

고등학교 때 야자는 땡땡이쳤어도 수업을 땡땡이친 기억은 없다.


2.

어젯밤에는 모기 때문에 잠을 설쳤다.

느지막이 일어나 점심을 먹고 오늘 할 일 리스트를 정리한 뒤 하나씩 시작했다.

책을 읽고, 심리학 강의를 보고...


집에서 혼자 이런저런 공부를 하는 게 그렇게 재밌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할만했었는데.

오늘은 유난히 재미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낮잠을 잤다.

중간중간 눈을 떴지만 다시 감았다.

여전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4시쯤 엄마가 돌아오셨고, 그때부터 눈은 뜨고 있었지만 여전히 별 일은 하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여느 때처럼 수영을 가려고 집을 나섰다.


3.

수영장까지는 집에서 걸어서 40분 정도 걸린다.

버스를 타는 게 맞는 거리이지만, 운동 삼아 걸어 다닌다.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여전히 몸이 축 늘어지고 우울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괜스레 눈물도 나고, 쌩쌩 달리는 차를 보는데 안 좋은 생각도 났다.


수영을 하기 싫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그래도 한번 도착은 해보자-하는 마음으로 걸어갔다.


4.

제시간에 수영장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들어가긴 싫었다.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자몽주스를 한잔 마시고,

남자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남친과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수영장에 올라가서 샤워만 했다.

온탕에 몸을 푹 담그니 좀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신혼집에 도착하니 남자 친구가 백종원식 떡볶이를 만들어 나를 맞이해주었다.

이 시간에 이렇게 먹었다가는 살찔게 뻔했지만 열심히 먹었고, 우울함은 나아졌다.


5.

우울증 때문에 (연차라는 이름의) 회사 땡땡이도 종종 쳤는데, 내 돈 내고 가는 수업 땡땡이야 별 일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이게 단순히 1회성 이벤트는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든다.

당분간은 이렇게 우울에 지배당해, 가까운 미래의 내 행동을 제어할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당장 내일도 리딩큐어 수업이 있는데, 무사히 갈 수 있을지 겁이 난다.


막상 수업을 못 가고 나면 나를 다독여서 남은 시간이라도 온전하게 보내는 게 최선이지만,

가능하면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을 해내고 싶다.


그래도 오늘의 나에게 칭찬해주고 싶은 일은, 수영장까지는 도착했다는 것이다.

끝까지 이겨내지는 못했지만, 반 정도는 버텼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났다.


이 정도면 최선을 다했다.

내일도 이만큼만 하자.

혹시나 수업을 10분만 듣더라도, 늦더라도 꼭 가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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