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현 '굿뉴스'
영화 '굿뉴스'는 "진실은 간혹 달의 뒷면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라는 트루먼 셰이디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이 말은 영화 내내 여러 번 나온다. 솔직히 저런 명언이 있는 줄로 속았다. 사실 트루먼 셰이디라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저 말도 그냥 이 영화 시나리오를 쓴 작가(변성현, 이진성)가 지어낸 것이다. 예전에 보르헤스가 자신의 소설에서 천연덕스럽게 이런 가짜 인용문을 쓰거나, 존재하지 않는 책, 작가를 언급한 적이 있긴 하다. 변성현, 이진성이 보르헤스를 의식하며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알 수 없다.
진짜 인용이든 가짜 인용이든, 이 말은 '굿뉴스'가 전하는 진실의 복잡성, 거짓의 핍진성을 간략하게 설명해 준다. '굿뉴스'는 1970년 적군파 조직원에 의해 일어난 일본 요도호 납치사건을 다룬다. 이 사건에 대해 조금만 읽어보면 지금껏 영화화되지 않은 사실이 오히려 의아할 정도로 흥미진진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가짜 총과 칼을 든 좌파 테러리스트가 비행기를 납치해 쿠바로 가려다가 여의치 않자 북한으로 향하자고 했고, 이를 안 한국의 김포공항 관제사가 비행기를 김포공항에 착륙하도록 유도했으며, 마치 김포공항이 평양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인공기를 게양하고 인민군복을 입은 환영단을 준비시켰으나, 테러리스트들이 속은 걸 알고 버티다가, 결국 일본의 운수성 차관이 100여 명 인질 대신 잡혀가기로 하고, 인질들은 김포공항에 내려준 채 비행기는 평양으로 향했고, 테러리스트들은 평양에 남고, 비행기와 조종사, 인질 차관은 일본으로 귀국해 영웅이 됐으나, 한국 관제사와 정부 측 인사의 활약은 비공식적으로 묻혔다는 이야기. '영화 같은 이야기'라는 표현에 이만큼 어울리는 소재도 많지 않다.
거의 모든 장면이 테크니컬하게 찍혔다. 어떤 의미에선 매우 영화적이다. 배우들의 개성을 뚜렷이 살리는 방향으로 연출됐다. 간혹 개성이 지나치다고 느껴지기도 하는데, '블랙코미디'라는 장르 특성을 감안한 연기 스타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많은 배우들이 변성현 감독의 전작들에 출연했던 이들이다. 아직 '사단'이라 이름 붙이긴 어렵겠지만, 감독이 마음에 맞는 배우들과 여러 번 작업하는 건 좋은 전략으로 보인다.
특히 '굿뉴스'까지 변성현의 작품 4편 모두에서 주연을 맡은 설경구가 연기한 '아무개'가 인상적이다. 한국, 일본, 미국을 막론하고 무책임한 이들이 장악한 관료제, 윗사람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공무원과 정치인들, 몽상에 빠져 턱없는 행동을 하는 좌파 테러리스트들, 정의로워 보이나 사실 출세욕을 감추지 못하는 젊은 군인 등 풍자 대상이 명확하고 캐릭터도 뚜렷한데, '아무개'의 캐릭터는 뚜렷하지가 않다. 이 말이 아무개 캐릭터가 잘못 구축됐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캐릭터나 영화 구조가 삼각, 사각, 마름모 같은 모양으로 명쾌하게 자리한데 비해, 아무개는 경계가 불분명한 얼룩처럼 서사에 위치해 영화의 해석에 모호함을 더하고 관객의 호기심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굿뉴스'에서 그 정체가 가장 불투명하지만 그 불투명함으로 인해 사건이 진행되게 하는 것이 '아무개'다. 아무개의 정체에 대해선 약간의 힌트를 주긴 하는데, 조금 더 모호하게 남겨뒀어도 괜찮지 않겠나 싶었다.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도, 배우에게 믿고 맡기는 것도 쉽지 않았을텐데, 변성현-설경구 커플의 관계가 꽤 돈독한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