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함과 별 것 없음 사이

미시마 유키오에 대해

by myungworry
9791194067078.jpg


소설가 양선형이 쓴 '미시마의 도쿄'를 우연히 접하고 얼마 후 구입했다. 일종의 '미시마 유키오 문학 기행'이다. 미시마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평론이자 미시마 삶에 얽힌 일본의 여러 장소들을 찾아간 여행기다. 출판사 소전서가에서는 '카프카의 프라하'와 '미시마의 도쿄'에 이어 '울프의 런던'도 낼 예정이라고 한다. '미시마의 도쿄'는 위 이미지에서 보듯 디자인이 간결하고 예쁘다. 대표작 '금각사'를 끝으로, 그리고 기이한 할복 사건 같은 생에 대한 짤막한 지식을 끝으로 잊고 지냈던 미시마의 세계에 다시 다가설 계기가 됐다. 양선형은 미시마가 태어난 도쿄 신주쿠 고급 주택가(건물과 건물 사이 미시마의 탄생지임 알리는 조그만 석등이 있다고), '오후의 예항'의 한 배경인 요코하마 외국인 묘지, 전공투 학생들과 토론했던 도쿄대 야스다 강당, 자위대의 봉기와 헌법 개정을 주장한 뒤 할복했던 방위성 이치가야 기념관 등을 방문하고 사이사이 미시마의 소설과 그의 삶, 생각에 대해 코멘트한다. 어딘지 소설가의 글이라기보단 평론가의 글처럼 느껴졌는데, 이 책으로 인해 미시마의 책 몇 권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빌린 것이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권 죽음의 미학'(살림출판사)과 '오후의 예항/짐승들의 유희'(문학과지성사)다. 단편 모음집인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권'에는 미시마의 '우국'이 첫머리에 수록됐다. 청년 장교들의 친위 쿠데타 사건인 2.26 사건 이후 동료들을 진압하러 나가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할복한 청년 장교와 그를 따라 자살한 젊은 아내 이야기다. 길지 않지만 잊히긴 어려운 작품이다. 내가 작가라도 무의식적으로 베끼고 싶은 문장들이 이어진다. 이 문장의 목적지가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기묘한 조합이라는 점은 문제적이다. 그 에로스와 타나토스 결합체가 굴러가는 곳이 '황군만세'라는 유언으로 종착된다는 점은 섬찟하거나 충격적이라기보다는 우스꽝스럽다. 건강한 데다 육체와 정신의 합이 잘 들어맞는 신혼부부의 성생활을 메이플 시럽처럼 끈적하게 그리다가, 이 둘이 본인들에게는 진지하지만 한 발짝만 떨어져 보면 터무니없는 이유로 죽음을 택하는 과정이 눈을 찌푸릴 만큼 끔찍하게 그려진다. 미시마가 이 작품을 발표한 것은 할복하기 9년 전인 1961년이고, 미시마는 이전에 죽어본 적도 할복을 연습해 본 적도 없을 텐데, '우국'에서 장교가 자신의 배를 가르는 순간은 심약한 독자에겐 뜨뜻미지근하고 비릿한 피 냄새가 올라오는 듯 묘사됐다. 읽고 난 뒤에는 'XX 같지만 잘 썼다'와 '잘 썼지만 XX 같다'는 느낌이 교차했는데 좀 더 정신을 차리고 나니 아무래도 '잘 썼지만 XX 같다'고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Yukio_Mishima.jpg


'오후의 예항'은 1963년 발표작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젊은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부유한 소년 노보루가 주인공이다. 그는 어머니 후사코의 방을 엿볼 수 있는 구멍을 우연히 발견하고 이에 탐닉한다. 이 구멍으로는 장차 새아빠가 되기로 한 선원 류지와 후사코가 함께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일종의 '배 덕후' 혹은 '항해 덕후'로 보이는 노보루에게 류지는 영웅과 같은 존재다. 다만 류지가 후사코와 결혼하기로 하면서 선원 일을 그만둔다고 하자, 노보루에게 류지는 영웅에서 배신자로 추락한다. 영웅의 변절 혹은 타락을 견딜 수 없던 류지는 촉법소년의 법적 지위를 잘 알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모종의 일을 꾸민다. 이 작품에서도 미시마 식의 미문과 오묘하고 세심한 생각의 흐름이 이어지지만, 그 탁월한 묘사력이 고양이 살해 같은 장면을 공들여 그리는데 소용된다는 점은 아연실색이다. 소년들의 고양이 살해는 훗날의 사건을 암시하는 목적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이를 전시하고 독자에게 읽게 하는 것은 악취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승들의 유희'(1961)는 부유하고 나이 많은 부부와 가난하고 젊은 남성의 삼각관계 이야기다. '삼각관계'라고 표현했지만, 여성이 결말에서 면회객에게 말하듯 "우리 세 사람 모두, 아주 친했어요. 이보다 친밀할 수가 없을 정도였지요."라고 말하기까지의 기묘한 과정이 그려진다. 통상적인 윤리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라 작가가 제목에도 '짐승'이라고 썼는지 모르겠지만, 이들의 관계를 중편 분량으로 상세하게 그려놓았다는 점에서 '짐승'이라는 표현은 풍자나 조롱이 아니라 역설일 수도 있겠다. 이 작품은 1964년 일본에서 영화로도 제작됐다. 아마 그 당시 일본, 혹은 그 이후의 프랑스 정도에서나 영화화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다만 미시마 스타일의 문장을 며칠간 읽으니 마라샹궈를 3일 연속 먹은 듯 미각이 피곤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럴 때 김지하의 "뭐가 대단해 너 몰랐더냐/비장처절하고 아암 처절하고말고 처절비장하고/처절한 신풍도 별것 아니여"(아주까리 신풍)라는 시구가 적어도 활명수 역할은 하는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혁명의 추억, 아빠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