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오줌과 시체의 선순환

조 로먼 '먹고, 싸고, 죽고'

by myungw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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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물리, 화학, 지구과학보단 생물학이 재미있었고, 과학과는 거리가 먼 전공과 직업을 가진 뒤에도 생물학에 대한 희미한 호기심은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가끔 의지를 갖고 과학책을 집는다면 대부분이 생물학책이다. 양자역학이나 수학에 대한 교양서를 몇 권 읽어 보았지만, 누구처럼 양자역학을 잠 안자며 공부할 마음은 나지 않았다. 생물학 이외의 과학 분야 정보는 하드 SF를 읽는 것으로 대체되곤 한다. 내게 물리학책은 오히려 철학책처럼 느껴진다.


그 와중에 괜찮은 생물학 책을 고르는 눈이 생긴 것인지, 저자도 모르고 제목도 처음 봤지만 서점에서 보자마자 산 '먹고, 싸고, 죽고'도 흥미진진한 생물학 서적이었다. 출판사는 '생태 교양서'라고 소개한다. 저자 조 로먼은 해양생태학자이자 보전생물학자라고 한다. 서구의 잘 쓰인 생물학 책이 자주 그렇듯, 이 책도 학자의 현장 체험을 생생하게 담아냈고 이런 묘사가 가독성을 배가한다.


제목 그대로 생물이 먹고, 싸고, 죽으면서 질소, 인, 탄소 같은 지구상의 물질을 순환시키는 이야기다. 아이슬란드 남동쪽 해안에 어느 날 불쑥 솟아오른 화산섬 쉬르트세이 이야기로 시작한다. 바다 혹은 공중으로 날아든 식물 씨앗은 용암이 식자 이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바닷새도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학자들에겐 육지로부터 완전히 떨어진 생물학적 진공 공간에서 동물과 식물이 어떻게 번성하는지 관찰할 최적의 기회였다. 심해의 영양분을 섭취해 수면 가까이 나와 똥을 싸는 바람에 바닷속 물질의 순환에 기여하는 고래, 역시 바다의 양분을 육지로 옮기는 연어 이야기가 이어진다. 모두 저자가 직접 바다, 숲, 강을 직접 찾아 관찰하고 자기보다 해당 분야를 더욱 세밀히 연구한 전문가의 조언을 들은 결과다. 요즘 생태학 서적이나 자연 다큐멘터리에 빠지지 않는 주제인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에 대한 지적도 잊지 않는다. 공장식 축산으로 인해 동물이 먹고 싸고 죽는 순환의 과정이 파괴됐다는 이야기, 대륙을 가로지르며 물질을 옮기던 버펄로의 동선이 제약된 이야기, 핵실험을 피해 인간에 의한 대규모 이동을 감행한 해달 이야기도 있다. 해달 이야기는 해피엔딩에 가깝다. 수소폭탄 실험이 시행된 알류샨 열도 앰치트카를 군 수송기를 타고 떠나 알래스카주, 워싱턴주, 오리건주로 이동한 해달은 그곳에 정착해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했다. 댐에 가로막힌 연어를 잡아 사람이 상류로 이송해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북미 선주민이 '문화 무리'(cultral herds)로 들소를 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다른 맥락에서 인간의 개입을 정당화한다. 더 이상의 개발을 막고 재야생화에 돌입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저자는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이런 타협안을 생각해도 좋다고 보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이념적이라기보다는 실용적이고 실천적이다.


수많은 식물과 동물이 절묘하게 인, 질소, 탄소 등을 주고받으며 순환하는 모습은 고등학교 때 호르몬의 작용을 배우며 감탄했던 시절 느꼈던 생명의 절묘한 균형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쉬트르세이 이야기를 하며 용암이 식지 않은 지역은 생물이 살 수 없고, 완전히 식은 지역은 우점종이 지배해 생물다양성이 떨어지며, 그 사이의 불안한 지대에 가장 다양한 생물이 산다는 이야기는 자연과학 바깥의 현상에 대해서도 인용하기 좋은 사례다. 생물 펌프(biological pump), 생물지구화학(biogeochemistry), 동반멸종(coextinction), 피사이클링(peecycling) 같은 용어를 알게 된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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