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핵이 문제다...전염병, 좀비, AI가 아니라

캐서린 비글로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by myungw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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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음


캐서린 비글로는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제로 다크 서티'는 21세기 영화의 수작이다. 영화의 만듦새를 떠나, 영화 외적으로도 심각한 논쟁을 벌일 수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신작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분명 봤는데 잘 기억나지 않는 '디트로이트' 이후 8년 만의 영화다. 시놉시스를 거의 모르고 봤는데, 보는 내내 몸이 긴장하는 게 느껴질 정도로 무시무시한 영화였다.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라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를 극장 개봉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평화로운 미국 워싱턴 DC의 아침, 한국의 동해(영화에선 '일본해'라고 대사를 한다)에서 미사일이 발사됐다는 정보가 입수된다. 북한이 벌인 또 한 번의 도발 정도로 생각하고 앞으로 1주일치 서류 작업을 할 생각에 한숨 쉬던 사람들은 곧 사색이 된다. 미사일이 태평양 어디에 떨어지지 않고 미국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기권 밖 요격 시스템으로 미사일을 저지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예상 탄착지는 인구 1000만이 사는 시카고. 이곳에 핵미사일이 떨어지기까지 10분도 남지 않았다. 그 사이 대통령, 국방부 장관, 안보 보좌관, 분석가, 군인 등은 저마다 준비된 매뉴얼을 따르면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누가 미사일을 쐈는지, 왜 미사일이 날아오는지는 영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북한의 소행이라는 점이 암시되지만 확실하지 않다. 러시아나 중국일 수도 있다. 미사일 한 대로 미국을 멸망시킬 수 없지만, 미사일을 쏜 나라는 미국의 보복에 멸망할 수도 있기에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도 알 수 없다.


영화는 핵전쟁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이후의 참상을 설명하는 대신, 핵전쟁을 목전에 둔 미국 권력 핵심부의 패닉을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군 정보기관, 백악관, 국방부, 요격 시스템 관제소, 스텔스기 부대 등을 3부에 걸쳐 고루 보여준다. 시간적으로는 불과 20여 분의 상황을 다루며, 3부에 걸쳐 같은 상황의 다른 장소를 반복해 제시한다. 즉 1부에서 전화 너머로 들린 말이, 2부에선 그 말을 하는 맥락을 해당 인물과 함께 다시 보여주는 식이다. 사건의 결말은 1부에서 대체로 제시됐기에 2, 3부는 반복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각 지위에 있는 각기 다른 인물의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영화의 목적이며 그 목적은 달성됐다. 각 지위의 사람들은 적의 핵공격에 대비한 매뉴얼에 따라 행동하지만, 매뉴얼을 실행하고 변화를 주는 건 인간의 의지다. 중요한 결정은 대통령에게 집중된다. 누군지 모를 적에게 반격할 것이냐, 시카고의 희생을 일단 참고 차분히 대응할 것이냐. 여성 농구 행사에서 슛을 쏘며 청소년들에게 스포츠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대통령은 순식간에 경호팀에 의해 모처로 이동하며 10분 내에 세계의 운명을 바꿀 결정을 내려야 한다. 미국 대통령 한 사람에게 이런 결정권을 줘도 되는 것인가.


한동안 전염병, 좀비, AI 등에 의한 종말 시나리오 영화는 꽤 나왔지만, 핵전쟁 시나리오는 최근엔 거의 영화로 본 적이 없다. 사실 핵전쟁이야말로 앞선 다른 요인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가능성 있는데도 말이다. 이 영화가 미국의 핵대응 시스템을 얼마나 정확히 묘사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미국이 보이는 것만큼 전능한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도 명확하다.


이드리스 엘바, 레베카 퍼거슨 등 잘 알려진 배우가 나오고 이들의 등장이나 연기에 불만은 없지만, 영화의 사실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면 얼굴이 거의 알려지지 않는 배우가 나오는 모험을 하는 것은 어땠을까 싶다. 평범한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재난을 맞이한다는 설정을 위해서인지 몇몇 인물들에는 개인사(아내와의 불화를 겪는 남자, 밤새 뒤척이며 아팠던 아이를 두고 직장에 온 엄마, 저녁에 약혼반지를 고르러 가야 하는 남성, 딸과 소원해진 아빠)를 붙였지만, 다소 구색 맞추기처럼 보인다. '상황'을 보여주는데 집중하려 했다면, 조금 더 건조하게 가도 되지 않았을까. 물론 그랬다면 캐릭터들이 정말 핵전쟁 대비 매뉴얼의 의인화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영화적으로는 매우 뛰어나지만, 국제 정세적으로 맞는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멸망을 감수하고 미국에 도발하는 나라가 있긴 할까. 그것이 설령 벼랑 끝에 몰린 북한이라 하더라도. 하긴 비글로가 국제 정세를 분석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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