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랙털 패턴 같은 중국 요리

퓨사 던롭 '웍과 칼'

by myungworry

'웍과 칼'(글항아리)은 아마도 내가 지금까지 읽은 음식 문화 관련 책 중엔 가장 흥미로운 책이었다. 매 챕터를 넘기며 저자가 소개하는 낯선 중국 요리를 스마트폰으로 찾아보고, 그중 일부는 먹고 싶고, 혹시 서울의 어느 중식당에 비슷한 것이 팔지 않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설사 서울에서 먹을 수 있는 중식이 '한국식 중식'이라 하더라도 그 재료, 식감, 요리법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영국 출신의 중식 셰프이자 작가인 퓨사 던롭은 지난 30년간 중국 요리를 탐구해 왔으며, 중국 전역을 직접 찾아가며 여러 요리를 맛보고 그 레시피와 유래를 탐구했다. 아울러 중국과 중국 요리에 대한 서양인들의 편견에 대항한다. 저자가 중식 셰프이기에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중국 음식 찬양과 서양 음식 폄하가 좀 심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럴듯한 요리가 없었는지 취재가 어렵기 때문인지 현재의 중국에서도 꽤 큰 영토인 신장, 티베트, 내몽골, 지린 등의 음식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


대체로 중국인이 된다는 것, 문명화되고 제대로 된 인간이 된다는 것은 곧 요리를 한다는 뜻이었다. 재료를 가열하고 양념을 더해 세상을 바꾸는 행위였다.

중화요리사가 던지는 질문은 '이걸 먹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이걸 어떻게 하면 먹을 수 있게 만들까'다. (...) 중국에서는 어떤 것도 본질적으로 먹을 수 있다거나 먹을 수 없다고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덴마크의 셰프 르네 레드제피가 자신의 식당 '노마'에서 개미나 순록 음경을 메뉴에 올리면, 그는 천재 요리사 취급을 받고 사람들이 그걸 맛보려고 전 세계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다. (...) 그러나 중국 셰프가 오리의 혀나 엘크의 얼굴로 놀라운 요리를 만든다면 그는 절박한 농민이나 잔인한 야만인일 뿐이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볶음 요리에 비해 찜 요리는 쉽고 편안하며 관대한 조리법이다. 찐 음식은 식단의 건조하고 기름진 요리와 멋진 대조를 이룬다.

프랑스 요리에서는 홀랜다이즈 소스의 간을 보고 맛을 다시 조정할 시간이 있다. 유화는 물감을 덧칠해 수정할 수 있다. 그러나 스터 프라이는 서예작품처럼 첫번째에 완벽하게 행해야 한다. 일단 웍에 음식이 들어가거나 종이 위에 먹을 묻히면 되돌릴 수없고 다음 기회도 없다. 완성된 요리, 혹은 글씨는 창작자가 몸을 놀리기 전에 마음과 손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어야 한다.

음식학자 왕즈후이는 쉽게 먹을 수 있는 어떤 것을 뜻하는 이 새로운 용어(딤섬 혹은 뎬신)의 등장이 중국 미식이 완전히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즉, 먹는 행위가 단순히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고 그에 다른 즐거움은 부차적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배를 채우는 것만큼이나 감각을 자극하고 즐거움을 주는 멋진 간식들처럼 재미가 주된 요소가 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중화요리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점점 더 복잡해지는 프랙털 패턴과 같아서 무한해 보이기도 한다. 더 많이 알아갈수록 내 무지의 크기를 깨닫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여전히 핵이 문제다...전염병, 좀비, AI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