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이 된 러브크래프트

H. P. 러브크래프트 '러브크래프트 걸작선'

by myungw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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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은 오래전 조악한 표지의 판본으로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호러' 장르라고는 하지만 별로 무섭지도, 재미있지도 않게 읽은 기억만 남는다.


서점에서 '크툴루의 부름' '우주로부터의 색' 등 중단편 5편이 담긴 '러브크래프트 걸작선'(을유문화사)을 보고 왠지 사버렸다. 러브크래프트도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얼마 전 파주북페어에서 우연히 들른 작은 출판사에서 러브크래프트 작품을 기획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이번 구입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겠다.


잘 읽히지 않는 것은 여전했다. 책을 읽은 인상은 너무 '거칠다'는 것이다. 러브크래프트와 함께 현대 공포소설의 아버지로 꼽히는 에드거 앨런 포와 비교해 보면 단박에 드러나는 점이다. 포가 매우 세련된 문체, 구성으로 공포를 드러내는 반면, 러브크래프트의 방식은 투박하다. 일단 이 선집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다. 이는 작품의 형식이 대체로 어느 광인의 수기, 광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 기이한 현상을 목격한 사람의 보고서 같은 식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할 것이다. 전지적 작가가 사건의 맥락과 뜻을 능숙하게 알려주지 않고, 생각지 못한 경험에 당황한 사람의 전언을 옮겨 적은 형식이니 서사의 요철이 심하다.


오히려 러브크래프트 작품의 진가는 '분위기'가 아닌가 한다. 외계인인지 고대로부터 잠재해 온 미지의 존재인지 알 수 없는 것이 현대화된 세계에서 자신을 드러낼락 말락 하는데, 문명과 지성을 믿어온 사람들 입장에선 이게 미칠 지경으로 기분 나쁘다. 소설 끝에 실린 '해설'은 가끔 독해에 도움을 주는데, 번역자인 이동신 서울대 교수가 쓴 이 책의 해설도 힌트를 주었다. 그는 러브크래프트를 '위어드 픽션'의 맥락에서 해석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무언가 이상하면서 기괴한 일들이 일어나고, 그 결과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진다. 그렇다고 완전히 기이한 일들과 인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 경우 환상 문학에 가깝기 때문이다. 기이하면서도 여전히 현실성이 유지되기에, 오히려 더 기이한 느낌을 준다." E.T.A. 호프만, 포, 카프카, J.G. 발라드, 차이나 미에빌 등을 위어드 픽션의 전통에 위치시킨다고 한다. 이 작가들의 맥락에서 러브크래프트 작품을 생각하니 오히려 이해하기가 쉽다. 읽고 나서도 무얼 읽었는지 정확히 모르겠고, 대체 왜 이런 상상을 하는지 의아스럽고, 미친놈의 헛소리를 받아적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다시 읽고 싶어지지 않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또 궁금해지는 것이 위어드 픽션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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