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의 통찰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

by myungworry

우치다 다쓰루의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유유)을 읽다. 처음 읽은 우치다 다쓰루의 책이다. 이 책은 우치다의 본격적인 저작이라기보단, 블로그에 올린 서평이나 가벼운 글을 묶은 책이다. 그래서 잘 읽힌다. 내용이 만만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통찰력 있고 의미심장한 지점들이 많아서 감탄하면서 읽었다. 전혀 배경을 모르는 일본의 책 이야기조차 꽤 흥미로웠다. 이 공간에도 우치다처럼 글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역시 쉬운 일은 아니겠지.


코넌 도일의 '주홍색 연구'부터 조지 밀러의 '매드맥스2'까지,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부터 후쿠자와 유키치의 자서전까지, 종횡무진한다. 읽고 쓰고 읽고 쓰는 생활이 우치다의 글 속에 드러난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책을 다 읽어버릴 것 같아 두려워 한 권을 더 챙긴다든지, 화장실에 가기 급할 때도 어떻게든 한 권이라도 골라 가져 가려고 애쓰는 모습도 적었다. 그걸 혼자 읽고 혼자 새기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게 블로그에 쓰고 또 책으로 낸다. 엄청난 다독가라는 점에서 다치바나 다카시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내게는 우치다의 생각들이 더 인상적이었다.


우치다는 책을 읽고 그 고갱이를 잘 설명해준다. '뇌는 나를 정말로 이해하는가'를 읽고는 "학습은 뇌에 입력하는 것이다. 테스트는 뇌의 출력이다. 뇌의 기능은 출력을 기준으로 퍼포먼스가 달라진다. 풀어서 말하자면 '머리에 담기만 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사용한 사람이 이긴다'는 뜻이다"라고 요약해준다.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를 두고는 '비인정'이란 키워드를 뽑는다. 서양의 예술은 자연을 노래하면서도 인간사를 근본으로 삼는데, 동양은 세상을 잊어버린 듯 초탈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으면서는 "모든 텍스트는 그것이 쓰인 시대에 몸을 두었다고 상상하며 읽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12~15세 소년이 금요일 아침 6시부터 다음날인 토요일 오후 4시까지 식사 시간, 심야의 수면 시간 1시간 빼고는 계속 일하게 했던 영국의 노동 현실을 배경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도 흥미로운 구절을 뽑는다. 칸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간 이성의 공적 이용은 늘 자유로워야 한다. 이성의 공적 이용만이 인간에게 계몽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이성의 사적 이용은 아주 엄격하게 제한되지만, 이것을 제약해도 계몽의 진전이 특별히 방해받지는 않는다. 그러면 이성의 공적 이용이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이 독자인 대중 앞에서 학자로서 스스로의 이성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성의 사적 이용이란 어떤 사람이 시민으로서 또는 관직에 있는 자로서 이성을 행사하는 것이다.


관료와 공무원의 생각은 사적이고, 학자의 논문은 공적이라니, 통상적인 용법과는 반대다. 우치다는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말을 빌려 '공적'이란 프레임 없이 생각하는 것, '사적'이란 프레임 안에서 생각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예를 들어 영토 문제, 민족주의의 문제 등에서 세간의 통념대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사적'이다. 반면 타인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공적'이다.


러일전쟁 당시의 연합함대 사령장관 도고 헤이하치로는 '운이 좋은 남자'였기 때문에 발탁됐다고 한다. 용맹하거나 지략이 좋아서가 아니라 '운이 좋다'는 건 최상급의 찬사라고 해석된다. 약한 군대를 이끌 때는 강적을 만나지 않고, 강한 군대를 이끌 때만 약한 적을 만나는 것은 '수를 읽을 줄 아는' 능력 때문이다. 위험을 감지하고 미리 피할 줄 아는 능력은 결과적으로 '운'으로 보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야말로 최고의 '군공'이라고 우치다는 말한다.


현대의 미디어에 대한 통찰도 좋다. 대중 언론이란 '자신이 아는 정보'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메타 정보 역할을 한다. 이런 정보가 언론에 나오지 않으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중요성이 낮다'거나, '너무나 중대해 그것이 알려지면 사회질서에 파괴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매체에 나오지 않으면 첫번째로 해석해왔지만, 요즘엔 두번째로 해석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이다. 트위터에 대한 비판도 꽤 통렬하다. "일도양단하는 코멘트는 글쓴이를 실제보다 150퍼센트 정도 똑똑하게 보이게 한다."


이 글들이 대체로 2000년대 초반부터 10년 사이에 쓰였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운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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