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승리호'
**약간의 스포일러
조성희 감독의 신작 '승리호'에 대해 언론과 평단은 대체로 호평하는 것 같다. 기술적으로나 서사적으로 허술한 구석이 별로 없고(다만 나노봇이나 악당 설리반에 대한 설명은 조금 부족한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도 준수하며, 정치적 올바름의 측면에서도 안전하다. 대체로 맞는 얘기다. 몇몇 평자들은 200억대 중반으로 알려진 이 영화의 제작비를 고려하면, '한국 최초의 우주SF'의 때깔로는 꽤 훌륭하다고도 말한다. '가성비'가 좋다는 뜻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이 영화의 때깔이 안좋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영화의 제작비나 기술수준을 전제한 평가가 온당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국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야 그런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관객은 외화나 한국영화나 같은 입장료(넷플릭스의 경우는 같은 구독료)를 내고 보니, "한국영화 기술수준에서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말할 이유가 없다. 극장에서든 OTT에서든, 한국영화와 외화는 모두 동등한 조건에서 선택을 기다린다.
다만 영화를 보고 기억에 남는 것은 승리호 구성원들의 '케미'다. 이들의 케미가 좋지 않다거나, 배우들이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화에는 이들이 진짜 '한 팀'이라고 여겨지게 하는 감정의 접착제 같은 것이 빠져있다. 승리호는 우주의 쓰레기를 수거해 수익으로 삼는다. 여러 우주선 사이에 쓰레기 수거 경쟁이 있어서 도입부의 비행 장면만 봐도 꽤 위험하다. 장선장(김태리), 태호(송중기), 타이거박(진선규), 로봇 업동이(유해진)는 꽤 오랫동안 승리호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감정적으로는 3개월 전에 만나 프로젝트성 작업을 하고 곧 헤어질 사람처럼 보인다. 인간으로서는 홍일점인 장선장과 두 명의 인간남성 사이에 로맨스가 없어서가 아니다. 단지 이들이 정말 친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 중 '승리호'의 출연진 구성과 가장 유사한 것을 꼽으라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될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엔 스타로드와 가모라 사이의 밀당이 있지만, 그것이 없다 해도 이들은 정말 친해 보인다. 수시로 다투고 심지어 서로 죽일 듯이 싸운다 해도, 궁극으로는 목숨을 나눌 수 있는 친구다. 옛 팝음악을 좋아하는 지구인 남성, 살벌한 외계인 암살자 여성, 그만큼 살벌한 레슬러 출신의 전사, 유전자 조작 너구리, 움직이는 나무처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구성원이 진정한 친구가 되는 과정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매력이기도 하다.
고니와 고광렬, 이자성과 정청이 소울메이트로 보이는 이유 역시 이들이 함께하기 시작한 사연과 그렇게 생긴 감정의 그물들이 제시됐기 때문이다. '승리호'는 그렇지 않다. 영화는 이들이 어떤 사연으로 함께 일하게 됐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목표한 돈을 벌면 금방이라도 헤어질 사람들처럼 보이며, 그래서 종반부 태호가 자기 몫의 돈을 챙겨 승리호를 떠나려 할 때도 감정적 울림이 덜하다. 오히려 왜 우주 쓰레기를 수집하는 탁월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돈을 벌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일을 목숨 걸고 같이 하는지가 조금 의아스러워질 정도다. 장선장, 태호, 타이거박, 업동이가 함께 승리호에 있는 이유는 꽃님이를 지키기 위해서인 것 같은데, 앞뒤가 뒤바뀐 일이다. 어찌 보면 승리호가 있었는데 후에 꽃님이 사건에 연루된 것이 아니라, 꽃님이 사건에 연루되기 위해 승리호가 급조된 것처럼 느껴진다.
난 제작진이 이런 결과를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승리호'의 이상한 케미에는 조직 내 관계를 바라보는 지금 세대들의 한 태도가 담겨있다고 여긴다. 당신이 누구인지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일만 잘해주세요. 딱딱하고 삭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환영하는 흐름이다. 다만 영화에서 그대도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승리호'에 한국식 멜로드라마, 이른바 신파적 요소가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부성애' 영화는 할리우드에도 차고 넘친다. 난 오히려 승리호 대원들의 업무지향적 관계는 승리호'를 매우 한국적이지 않은 영화로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