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크
데이비드 핀처의 '맹크'를 넷플릭스에서 보다. 시나리오 작가 허먼 J 맹키위츠가 '시민 케인'을 써 내려가는 과정을 그린다. 흥미롭게도 흑백으로 촬영됐다. 단지 흑백영화라서 흥미로운 것이 아니라, 1930~40년대 흑백영화의 질감을 '흉내'내서 흥미롭다. 디지털로 촬영됐으면서 과거 필름 영화에서 보이는 오른쪽 상단의 하얀 구멍까지 나온다. 조명, 촬영, 편집도 '시민 케인'이 제작되던 할리우드 황금기의 양식을 닮았다. 맹키위츠 역을 맡은 게리 올드만의 연기는 고전영화스럽지 않은 메소드 액팅이지만, 정말 1930년대 연기를 따라 했다면 그때부턴 영화가 전혀 진지하지 않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진입장벽이 좀 있다. 영화를 몇 차례 끊어가면서 봤다. 단지 러닝타임이 길다거나, 지속적 관람이 어려운 사정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의 역사에서 '시민 케인'이 가지는 의미나 오손 웰즈, 맹키위츠, MGM, 워너브라더스를 몰라서가 아니다. 내가 '맹크' 초중반부 느낀 진입장벽이란 '스튜디오 시스템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예술가'라는 주제였다. 한때 이러한 주제의 '영화감독 영화'가 흥미롭게 받아들여진 적도 있었으나, 요즘은 딱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모든 영화감독들이 스튜디오 시스템에 굴복했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다. 수천억 원의 돈이 들어가는 휘황한 볼거리의 책임자인 감독이 '예술혼' 타령하는 것이 좀 유치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할까. 예술혼을 발휘하지 말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많은 돈과 인력이 투입되는 콘텐츠라면 한 개인의 기발한 창의력에 전적으로 의지해 제작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미에서다. 극단적으로 말해, 영화가 망해도 감독은 자기 돈 한 푼 잃지 않으며, 오히려 계약서대로의 연출료를 받아갈 수 있지 않은가. 교통사고를 당한 맹키위츠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시골 저택에 틀어박혀 속기사, 간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미래 걸작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고, 영화사에선 계속 그를 닦달하고, 맹키위츠는 몰래 술을 마시고 곯아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이어지는데서는 '괴팍한 예술가 vs 돈만 밝히는 세상'의 오랜 구도가 이어지는 것 같아, 영화는 형식적으로 참신하지만 서사적으로는 참신하지 않다는 느낌이 지속됐다.
'맹크'에 긴장감이 도는 건 맹키위츠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대결이 본격화되면서부터다. 허스트는 '시민 케인'의 모델이 된 인물이다. 당대 최고의 언론재벌로, 정치권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사람이다. 맹키위츠의 적이 스튜디오가 아니라 현실의 권력자로 이동하는 것이다. 허스트가 맹키위츠의 작업을 방해하라고 지시하는 장면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맹키위츠와 친분이 있던 이들이 여러 가지 논리로 작업을 멈춰달라고 호소한다. 단지 시나리오 작가와 그의 작업을 막으려는 거물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 거물이 오랜 시간 작가를 후원하고 아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이제 맹키위츠는 인간적인 갈등에까지 빠진다. 물론 맹키위츠에 대한 허스트의 후원은 진정한 우정이나 연대의 발로가 아니라,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에 가까운 것이었겠지만, 아무튼 맹키위츠가 허스트의 돈에 기대 살아왔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시민 케인'을 영화 교과서로 여겨왔던 후대 관객들은 맹키위츠가 이런저런 인간적인 갈등을 뒤로하고 그냥 '질러'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왜 맹키위츠가 은인의 등에 칼을 꽂는 작품을 썼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기도 무엇인가 찔렸는지, 맹키위츠는 꽤 친분이 있던 허스트의 젊은 아내에게 '당신을 모델로 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주변 사람의 캐릭터를 착취하는 예술가들이 흔히 하는, 그러나 설득력 없는 변명이다. 아무튼 맹키위츠는 그대로 밀고 나갔다. 심지어 오손 웰즈에게 자신의 이름을 크레디트에 꼭 넣어달라고 해 웰즈와 크게 싸우기도 한다. 허스트의 삶에서 찾은 영감이 인간적인 정을 모두 잊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영화제작의 관성 때문에 멈출 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고, 그냥 '똘끼' 때문일 수도 있다. 맹키위츠는 파국을 알면서도 직진한다. 싸우려면 스튜디오가 아니라 세상과 싸워야지.
맹키위츠는 '시민 케인'으로 웰즈와 함께 아카데미 각본상을 공동 수상한다. '맹크'가 암시한대로, 둘은 크게 다퉈 이후 함께 작업하지 않았다고 한다. 맹키위츠는 '시민 케인' 개봉 이후 12년 뒤인 1953년 알코올 중독에 따른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만 55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