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케 쇼 '여행과 나날'
미야케 쇼의 전작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2022), '새벽의 모든'(2024)에서는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신작 '여행과 나날'에서는 홍상수의 영향력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이제 한국에서는 홍상수처럼 찍는 젊은 감독이 별로 없는 듯한데, 일본에서 홍상수의 세계가 새로운 방식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았다.
'여행과 나날'은 일본의 저명한 만화가 츠게 요시하루의 작품 2편을 원작으로 한다. 실제로 '여행과 나날'은 2편의 중편을 이어 붙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 출신 작가 이(심은경)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가 극중극 형식으로 초반부 상영되고, 이 영화를 두고 '이'와 감독이 학생들과 GV를 하는 장면이 잠시 이어진다. '이'의 스승과 같은 남자가 갑자기 별세한 사건을 계기로, 슬럼프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이'는 스승의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영화 속 영화의 시간 배경은 여름이고, '이'가 떠난 곳은 많은 눈이 쌓인 겨울이다. 영화 속 영화에서는 폭우가 내리는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두 청춘 남녀의 이야기가 그려지고, '이'는 숙소가 없어 우연히 찾은 숲 속 여관에서 무뚝뚝한 중노년의 주인 남성과 작은 모험을 한다. 이런 반복과 차이는 홍상수 영화의 주요 특징이기도 하다. 물론 미야케 쇼의 구성은 홍상수보다는 느슨한 편이어서, '여행과 나날'은 홍상수 영화를 볼 때처럼 미세한 구조 변화를 관찰하면서 재미를 느끼기보다는 순간의 정취에 집중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현대 상업 영화에서는 잘 보기 힘든 1.37:1 화면비를 사용하는 것이 요즘 전 세계 독립영화의 트렌드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행과 나날'도 현대 일본 도시의 빌딩숲을 보여주는 첫 장면부터 좌우로 펼쳐지는 스펙터클에는 관심이 없음을 명확히 한다. 영화 속 영화에는 바다가 자주 나오기에 좌우로 좀 더 넓게 보여주려는 욕망을 가질 법도 하지만, 미야케 쇼는 현재 비율로도 충분하다고 보는 듯하다. 오히려 바닷가로 난 좁은 길을 거센 바람 속에 걸어가는 여성의 모습, 막 해가 져서 어두워진 언덕에서 해안선 멀리 간간히 켜진 불빛을 배경 삼아 이야기를 나누는 여성과 남성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게 촬영됐다. 홍상수가 대사, 구조, 캐릭터로 영화를 지탱한다면, 미야케 쇼는 현장의 정취를 조금 더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쪽이다. 극에서 '이'가 말하는 것처럼 "어김없이 말에 붙들리"지 않기 위한 것일까.
그렇게 아무 일 없이 끝나는 것 같은 영화는 '이'가 여관 주인과 조금은 웃긴 에피소드를 경험하면서 마무리된다. 여관 주인은 '이'가 작가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웃긴 이야기가 좋다"면서도 곧 "웃기기만 하면 안 된다. 슬픔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마 여관 주인의 삶이 그런 것 같다. 여관 주인의 정확한 사연은 나오지 않지만, '이'는 그에게서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삶을 발견한 것 같다. 글을 쓰다가 눈 덮인 여관을 떠나 하루에 두 번 있다는 기차를 타러 가는 '이'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여행과 나날'은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