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매큐언 '레슨'
이언 매큐언의 '레슨'을 읽고 AI에 매큐언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을 물어보았다. 퍼플렉시티는 노벨문학상 베팅 사이트에서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수상 가능성이 낮다고 점쳤다(그런데 한강도 베팅 사이트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챗GPT는 좀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문학적 완성도와 국제적 영향력, 도덕-윤리-정치 문제를 다루는 방식, 주요 문학상 수상 경력, 영어권 '거장급 생존 작가'라는 측면에서 후보로 거론되지만 최근 비영어권, 주변부 언어, 정치-사회적 의미가 강한 작가를 선호하는 노벨상 특성상 너무 중심부적, 너무 정전적인 매큐언이 받을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매큐언처럼 자주 언급되지만 결국 받기 힘든 작가로 줄리언 반스, 살만 루슈디, 그리고 결국 상을 못 받고 세상을 뜬 필립 로스 등도 들었다. '받아도 이상하지 않지만 끝내 못 받을 수도 있는' 작가 계열이라는 것이다.
'레슨'을 읽고 이런 걸 찾아본 이유는 나 같으면 매큐언에게 노벨문학상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근래 이렇게 감정적으로 동요되며 읽은 소설은 없었다. 80대를 바라보는 영국 백인 남성 소설가가 쓴 소설에 이런 감정을 갖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이건 오히려 동시대, 같은 나라에서 사는 한국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는 갖지 못했던 감정이다.
매큐언과 비슷한 나이의 남자가 나고 자라 늙어가는 이야기다. 기숙학교에서 10살쯤 많은 음악 교사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는 장면부터 대목부터 시작해 70대 중후반까지 이어지니 거의 반 세기에 걸친 생애를 다루는 셈이다. 존재를 몰랐던 형과 중년이 된 뒤 해후한다는 설정이나 아버지가 군인이라는 설정 같은 것이 매큐언의 실제 삶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레슨'은 자전적인 이야기로 꼽히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롤런드는 매큐언과 달리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자칭 시인이자 테니스 강사이자 호텔 로비의 피아노 연주자로 평생을 살았지만, 롤런드는 넉넉한 물질적 풍요를 누리지 못했고, 두 번의 결혼은 금세 끝났으며, 피아노 교사와는 일생에 큰 영향(트라우마에 가까운)을 받은 일을 경험했다. 롤런드의 그저 그런 삶은 첫 번째 부인 엘리사가 집을 떠난 후 독일어권을 대표하는 거장 소설가가 된다는 사실과도 비교된다. 롤런드가 홀로 키운 아들과 두 번째 부인이 첫 결혼에서 얻은 자녀들 등 가족들과 노년에도 친근한 관계를 누린다는 점만이 롤런드의 평범한, 어찌 보면 실패한 삶을 위로한다.
그런데 이 위로의 힘이 강력하다. 무엇 하나 진득하게 이뤄내지 못했고(심지어 두 번째 부인 대프니의 유골을 뿌리는 일마저도 대프니의 첫 번째 남편에게 어처구니없이 빼앗긴다), 자신의 실패를 종종 자책하거나 후회했고, 영국의 중산층으로서 노동당을 미적지근하게 지지하며 평생을 살았고,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현장에서 세계사적 희망을 찾았다고 판단했다가 그 판단이 허망하게 틀렸다는 것을 2020년대에는 확연히 깨달은 처지지만, 독일어를 쓰는 어린 손녀의 손을 잡고 일어서 저녁 식사를 향해 걸어가는 롤런드의 모습은 작지만 아름답고 심지어 위대하다. 어쩌면 노벨문학상에 근접한 그의 첫 번째 부인 엘리사보다도 더욱. 매큐언처럼 쓰지 못하더라도 훌륭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만한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