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티비플러스 '플루리부스'
'플루리부스'는 라틴어 'E pluribus unum'(여럿으로 이루어진 하나)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이는 미국의 모토 라고 한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함께 사는 미'합중국'을 뜻하는 말인 듯하다(요즘은 그런 것 같지도 않지만). '브레이킹 배드'와 '베터 콜 사울' 시리즈로 유명한 창작자 빈스 길리건이 기획했다. 전작들과 달리 악당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모두가 너무 친절하고 착하고 비폭력적이라 문제가 시작되는 드라마다.
외계로부터 특별한 수단으로 전해진 바이러스가 인류 전체에 퍼진다. 인류는 스스로 '우리'라고 부르는 하나가 된다. 모두의 경험이 모두에게 전수된다. TGI프라이데이 종업원이 비행기 조종을 하고, 시장이 청소를 한다. 따라서 저마다 모습이 다를 뿐 개성은 없다. 마치 일개미 집단 같다고 할까.
더 핵심적인 특징은 이 새 인류가 완벽한 평화주의자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살생을 전혀 하지 않는다. 동물원 문은 진작 열었다. 육식은 물론 채식도 하지 않는다. 이미 심어진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면 그걸 먹을 수는 있다. 이미 존재하는 젖소는 젖을 짜줘야 하기 때문에 우유도 마신다. 게다가 옛 인류의 관습으로는 끔찍하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새 인류의 입장에선 효율적인 영양 섭취 방법도 시리즈 후반부에 밝혀진다. 모두가 얼굴에 옅은 미소를 간직한 채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들은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생존에 불리한 이야기도 거의 그대로 전해준다.
전 지구에 12명의 비감염자가 있다. 베스트셀러 SF로맨스 작가지만 자신의 작품에 만족하지 않는 주인공 캐럴도 그중 하나다. 캐럴은 이 상황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행복에 가득 차 있고 언제나 자신에게 친절만 베푸는 새 인류가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진정한 인간은 아니라고 본다. 그는 상황을 되돌릴 방법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나머지 비감염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우면 된 거 아니냐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상황을 이용해 호화로운 생활을 만끽하는 사람도 있다. 캐럴은 전 지구에서 유일하게 불행한 사람이 된다.
'플루리부스'는 이 유일한 반대자가 어떻게 결의를 다지다가 어떻게 좌절하고 어떻게 타협했다가 어떻게 다시 생각을 바꾸는지를 관찰하는 시리즈다. 그 방법은 스스로 깨닫거나, 어느 순간 '현타'가 오거나,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다. 새 인류의 비밀이 조금씩 밝혀지는 등 미스터리한 구성도 있지만, 역시 시리즈 전체 전개는 캐럴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다.
캐럴은 영웅적인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캐럴은 함께 있기 불편한 사람이다. 독단적이고 신경질적이고 냉소적이다. 캐럴을 제외한 나머지 비감염자는 캐럴과 만난 이후 그를 따돌린다. 캐럴은 현재의 안락하고 평화로운 상태를 방해하거나 훼손하려는 사람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팀이나 학급 전체가 A를 하기로 했는데, 단 한 명이 '그것은 옳지 않다'며 B를 주장한다면 그 반대자가 받을 눈총은 뻔하다. 물론 캐럴이 이렇게 '삐뚤어진' 이유를 조금 붙여놓기도 했다. 캐럴은 감염 과정에서 자신의 연인이자 편집자가 사망했기 때문에 더욱 좌절한 것으로 그려진다. 만일 연인이 살아남아 새 인류가 돼 캐럴을 설득했다면, 캐럴은 조금 다르게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캐럴이 '개성이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신념에만 확고히 의지해 새 인류에 반대했다면, 어딘지 독립투사나 종교재판에 맞선 이단자처럼 보였을 것이고, 그렇다면 극이 조금 딱딱해졌을 거 같다.
9부로 이루어진 첫 시즌 말미, 캐럴은 선택을 내린다. 때로 단 한 명의 '위대한 반대자'가 세상을 바꾼다. 그렇다고 캐럴이 '위대한' 여정을 걸어갈 것이라는 암시도 없다. 평소처럼 투덜대며 어떤 일을 하기로 한다. 독립투사 이야기는 숭고하지만, '플루리부스'는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