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그린블랫 '폭군'
셰익스피어(1564~1616)는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린 작가가 아니었다. 그때는 잉글랜드뿐 아니라 세계 어디든 마찬가지였다. 셰익스피어가 작품을 쓰기 시작한 1590년대 조선은 선조 대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임금의 정치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를 비판하는 글을 노골적으로 발행할 수는 없었다. 셰익스피어는 정치를 말하기 위해 당대 잉글랜드와 시대적, 지역적 거리가 있는 배경을 선택했다. 고대 로마의 카이사르, 셰익스피어로부터 100년쯤 전에 살다 죽은 리처드 3세, 11세기 스코틀랜드 국왕 막 베하드(맥베스) 등이다.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스티븐 그린블랫은 미국의 선거 결과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셰익스피어 희곡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다. 희곡에서 폭군을 찾아 그들이 어떻게 권력을 차지했고 어떤 악행을 저질렀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폭군의 출현을 막을 수 있는지 썼다.
'폭군'(까치)은 셰익스피어 전문가가 쓴 정치 서적이다. 물론 본격적인 정치서는 아니고, 셰익스피어 작품 속 폭군을 통해 그 특징을 살핀다. 아마 현대의 '폭군'이라 할만한 사람들과 셰익스피어 작품 속 사람들의 유사성을 지적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초기작 '헨리 6세'에선 당파적 격노가 미쳐 날뛰어, "상대방의 목소리는 물론이고 심지어 그의 생각 그 자체마저도 참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을 읽어낸다. "당신은 우리 편이거나 우리 적이다. 만일 우리 편이 아니라면 나는 당신을 증오한다." 이런 구절은 명백히 상대 정파를 타협의 상대가 아니라 절멸의 상대로 여기는 현대 정치의 상황을 암시한다.
폭군의 탄생 배경에는 개인의 성격 문제도 있다. 리처드 3세는 심각한 장애를 가졌고(2012년 영국의 한 주차장 공사 도중 발굴된 시신이 리처드 3세의 것으로 밝혀졌고, '비정상적인 척추 측만'을 확인), 셰익스피어는 "독재 권력에 대한 갈망과 좌절된 혹은 손상된 성 심리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는 확신을 중심에 놓고" 극을 끌어갔다. 게다가 리처드 3세에겐 '불가사의한 능력'이 있었다. 그건 "주변 사람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들의 마음속으로 밀고 들어가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겪은 고통을 보상하기라도 하듯이 그는 모든 곳, 모든 사람의 마음에 힘으로든 기만으로든, 폭력으로든 세뇌로든 버젓이 존재하는 법을 찾아낸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말년에 쓴 희곡 '겨울 이야기'는 시칠리아의 왕 레온테스가 갑자기 찾아온 망상에 폭군으로 돌변하는 이야기다. 그는 아내가 자신의 손님으로 머물고 있는 절친한 친구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믿는다. 이 의심에는 아무 근거가 없다. 레온테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폭군의 특징은 "사실을 다루거나 증거를 제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며 "자신이 죄를 적시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언급된 폭군의 여러 특징은 명백히 도널드 트럼프나 여러 나라의 포퓰리즘 지도자를 연상시킨다. 이 책이 현지에서 출간된 것은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한 이듬해다. 책 출간 시점만 해도 저자가 '트럼프 2기'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트럼프는 셰익스피어가 언급한 폭군의 특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오히려 더욱 강화한 채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