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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 '종의 기원담'

by myungw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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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 다윈의 책에 대한 패러디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이작 아지모프의 유명한 '로봇 3원칙'의 패러디다. 이 원칙은 이후 로봇, AI가 등장하는 수많은 SF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사실 로봇, AI가 등장하는 SF 중 이 원칙을 의식하지 않은 작품을 찾기 힘들 정도다. 그러니 아지모프의 3원칙을 직접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다. 김보영의 도전은 성공적이다.


3편의 중편을 연작 형태로 묶었다. 작가가 스물다섯이던 2000년쯤 쓰기 시작해 서른 살에 완성했다는 첫 작품은 사실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의지와 사유 능력을 가진 로봇이 지구에 번성해 생명의 정의를 무기물로 한정하던 어느 시대, 유기물을 생명으로 보고 연구하는 일군의 로봇들이 주인공이다. 이 세계관에서 유기생물학은 이단 혹은 사이비학문에 가깝지만, 주인공 케이는 차츰 그 학문에 빠져들고 '로봇을 닮은 유기생물'을 만들기 직전에 다가선다.


첫 번째 작품이 인상적이지 않았던 이유는 두 번째 작품에서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가 첫 작품을 완성한 해 곧바로 마무리했다는 두 번째 작품은 시간이 꽤 흐른 후 케이의 시점에서 다시 이어진다. 케이는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유기생물학을 떠났지만, 그 사이 유기생물학 연구실은 엄청나게 발전해 수많은 자본과 인재를 끌어들였다. 그 속도는 무서울 정도이며, 그 이유가 작품의 핵심이자 아지모프 3원칙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이다. 특히 1원칙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가해서는 안되며,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이 해를 입게 해도 안된다'와 2원칙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를 기발하게도 신학적, 미학적으로 해석했다. 두 번째 작품에서 인간을 창조한 로봇은 자신의 피조물에게 완전히 복종한다. 광신도 같기도 하고, 미친 팬 같기도 하다. 로봇들은 위대한 신인지 절대적 아름다움인지, 하여간 인간의 거역할 수 없는 매력에 사로잡혀 자신들에게 해로운 수분과 산소를 과감하게 접한다. 케이 역시 인간을 보는 순간 이렇게 매혹될 뻔했으나, 간신히 '이성'을 붙들어 어떤 행동을 한다. 이것은 인간에게는 파국, 로봇에게는 구원이다.


3편은 작가가 48세였던 2023년 완성됐다고 한다. 두 번째 작품과 시간 간격이 꽤 있다. 작가는 "세 편은 각기 다른 이야기다. 세 편을 쓴 사람 각각이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며 같은 주제에 대한 관점이 변해가는 과정으로 보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지만, 겸손이다. 세 편은 매우 유기적으로 얽혀 있으며, 케이라는 캐릭터 설정도 일관적이다. 옛 철학 용어를 빌려오면 정-반-합의 과정이 세 작품을 통해 펼쳐진다.


'종의 기원담'을 읽으며 만족스러웠던 점 중 하나는, 최근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쓴 SF를 읽을 때 느끼지 못했던 '장르적 쾌감'을 확연히 느꼈다는 사실이다. SF는 문학이되, 장르 문학이다. 김보영은 장르적 쾌감을 일으키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테크닉적으로 받쳐준다면, '종의 기원담'은 5~8부작의 근사한 SF 시리즈로 각색될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


물론 난점은 있다. 독자(혹은 시청자)가 누구에게 감정을 이입할지 헷갈린다는 점이다. 주인공이 기계이기에 기계에 이입해야 하나, 아니면 독자와 같은 종인 인간에게 이입해야 하나. 작가는 이 책이 "무기생명에 대한 내 개인적인 헌사며, 곧이곧대로 기계생명을 향한 찬가다. 사물에 깃든 생명에 바치는 경애다"라고 말했다. 곧이곧대로 믿고 싶지만, 정말 믿어도 되는지 아리송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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