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안녕이라 그랬어'
'안녕이라 그랬어'(2025)는 '바깥은 여름'(2017) 이후 8년 만에 나온 김애란의 단편집이다. 나는 두 작품집 사이의 거리가 8년 이상이라고 느낀다. '바깥은 여름'만 해도 어딘지 '청년 작가'의 흔적이 있었다면, '안녕이라 그랬어'에는 '청년' 대신 '중년'이 등장한다. 등장인물의 나이가 '중년'이라 할 만큼 많지 않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완연히 '어른'의 것이다. 정의와 불의의 구분선이 생각만큼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선의와 위선을 적당히 오가는 능력을 가졌고, 자존심을 세울 때와 생존감각을 발휘할 때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엇보다 돈 때문에 자신이 아주 오래전에 기대했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을 알아차린 사람들.
김애란은 평론가 신형철에게 '안녕이라 그랬어'의 주제가 '돈과 이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신형철의 해설은 7편의 수록작을 다 읽은 뒤 접했지만, 작가가 스스로 밝힌 주제는 명민한 평론가가 짚어낸 것처럼 핵심적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자기 작품 주제를 이렇게 뚜렷하게 미리 밝힌 작가가 있었던가.
수록작 '좋은 이웃'에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인용되기도 했지만, 김애란과 우리가 사는 시대는 조세희의 시대와 완연히 다르다. '안녕이라 그랬어'에는 간략히 말해 '돈 때문에 치사해지고, 그 때문에 스스로 당황하는 사람들'이 대거 등장하지만, 누구도 빈곤층 혹은 차상위계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들은 '비굴하다'거나 '비참하다'기보다는 '치사해진다'. 당장 생존이 위태롭지는 않지만, 돈 때문에 자존심 상하고 질투심이 생기고 가끔 어디서 나온 지 모를 우월감도 갖는 사람들의 모습을 김애란은 경험 많은 인류학자처럼 관찰한다.
신형철은 "김애란 정도 되면, 즉 한 작가가 자기만이 아니라 문학 자체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면, 그를 통해 문학의 본질을 곧장 말할 수도 있게 된다"고 극찬했다. 난 문학평론가가 아니니 김애란을 통해 '문학의 본질'을 알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애란이 세상의 미묘하고 모호한 질서를 정확히 포착하고 이를 세밀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동시대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사실만큼은 잘 알겠다.